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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친정엄마

  • 소연준을 제외하고 소은정에게 남아있는 가족이라고는 엄마 홍진숙뿐이었다.
  • 소은정은 귀국한 후로 아들을 데리고 엄마 보러 가야겠다고 진작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 귀국한 두 번째 날, 소은영은 아침 일찍부터 소연준과 함께 엄마 집에 갈 때 들고 갈 물건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갈 채비를 하였다.
  • 아침 외출을 할 생각에 신이 나 있던 소연준은 할머니를 보러 갈 거라는 소은정의 말에 금세 시무룩해져 나가기를 거부했다.
  • “할머니는 연준이 싫어해요. 그래서 연준이도 가기 싫어요.”
  • 소연준은 기억력이 좋아 홍진숙이 소은정과 통화하며 자기를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 그리고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말하며 풍겼던 그 뉘앙스나 분위기 역시 우호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소연준은 프랑스에 있을 때부터 멀리 해운시에 살고 있다는 할머니를 좋아하지 않았다.
  • 소은정 역시 소연준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아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 하지만 한쪽은 자신을 낳아준 엄마였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소은정은 결국 엄마에게 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 ‘결국 따지고 보면 다 내 탓이야. 조지훈이 호텔에 엄마랑 친척들 데리고 찾아왔을 때, 엄마는 친척들 앞에서 많이 놀라고 충격받으셨을 거야. 조지훈이랑 유인영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는 것을 몰랐으니 당연히 그럴 만했어. 그리고 결국 나 때문에 병원입원까지 하셨잖아.’
  • 홍진숙은 소은정때문에 친척들 앞에서 망신당했다며 그 사건이 있고 나서 반년 넘게 소은정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 그 뒤로도 소은정이 계속 먼저 연락을 하자 홍진숙은 마지못해 연락받았다. 그리고 소은정이 프랑스에서 아빠도 모르는 아이를 낳았다고 하자 또다시 충격을 받아 입원하기도 했었다.
  • 홍진숙은 아빠도 모르는 아이를 덜컥 낳아버린 소은정이 미련하고 바보 같아 소연준을 애비 없는 자식이라 불렀다. 물론, 그런 소연준이 이뻐 보일 리도 만무했다.
  • 하지만 소은정에게 홍진숙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었다. 그래서 아들과 엄마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 소은정은 어린 아들을 잠시 제쳐두고 엄마를 선택했다. 아들에게는 시간이 많아 자신이 앞으로 두고두고 잘해줄 수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나이 들어가는 엄마에게는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소은정은 소연준을 달래며 말했다.
  • “연준아, 엄마랑 같이 할머니 보러 가자. 가서 딱 점심밥만 먹고 나오는 거야. 이러면 어때?”
  • 소연준은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 “연준아, 사랑하는 아들. 엄마 부탁 한 번만 들어주면 안 될까? 연준이 할머니가 나한테는 엄마잖아. 엄마도 엄마를 5년 동안이나 못 봤어. 그러니까 정말 보고 싶단 말이야. 연준이랑 엄마랑 같이 할머니 보러 딱 한 번만 가자. 엄마는 할머니가 연준이를 직접 보시면 분명히 좋아하고 반겨주실 거라고 믿어.”
  • 소연준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소은정을 보자 마음이 약해져 애늙은이처럼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 “좋아요. 엄마랑 같이 갈게요. 하지만 딱 점심만 먹고 나오겠다고 약속해요!”
  • 소은정은 활짝 웃으며 소연준의 볼에 뽀뽀했다.
  • “역시 우리 아들, 엄마 부탁 들어줄 줄 알았어. 그래, 약속대로 점심만 먹고 나오자~”
  • 소은정과 소연준은 마트에 가 제철 과일이며 보양식들을 잔뜩 사 들고 홍진숙의 집을 찾았다.
  • 소은정은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는 홍진숙을 바라보며 말했다.
  • “엄마, 잘 지내셨어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 옆에 있는 소연준은 무표정의 얼굴로 작게 말했다.
  • “할머니, 안녕하세요.”
  • 그러나 소은정의 기대와는 달리 홍진숙은 소은정과 소연준을 바라보더니 미소는커녕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 “들어와!”
  • 집안에 들어서자 거실에는 홍진숙의 나이대로 보이는 아줌마들이 여럿 있었다.
  • 소은정은 그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 “안녕하세요.”
  • 그러자 소연준도 따라서 말했다.
  • “안녕하세요!”
  • 소파에 앉아 있던 아줌마들은 웬 꼬마가 야무지게 인사를 하자 기특한 마음이 들어 홍진숙을 향해 물었다.
  • “아유, 언니. 이 꼬맹이는 누구야?”
  • “애가 참 똑부러지게도 인사하네. 아가야, 너 몇 살이니?”
  • 하지만 평소 같으면 신나서 손님들에게 소개하고 야단을 부렸을 홍진숙이 그날따라 대답하기 싫은 표정을 지으며 손님들에게 이만 먼저 돌아가라고 말했다.
  • “집에 손님이 왔으니 이만 먼저들 가봐. 내일 다시 놀러 와, 알겠지?”
  • 그 말을 듣자 소은정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고 안색도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 그녀는 자신과 아들을 반기지 않는 듯한 홍진숙의 모습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 ‘벌써 5년이나 지났는데 엄마는 아직도 나를 용서하지 않았어. 친구들에게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을, 그리고 손주를 소개해줄 생각이 아예 없나 봐. 내가 그렇게까지 부끄러운 자식인 거야?’
  • 아줌마들이 가고 나자 거실에는 소은정과 소연준 그리고 홍진숙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