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유인영은 5년 전의 유인영과 크게 달라져 있었다. 몸에 걸친 것들은 죄다 명품이었는데 특히 손에 들고 있는 GC 가방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명품 가방의 체인이 조금 전 부딪치면서 끊어지게 된 것이었다.
유인영의 얼굴 또한 5년 전과 달라져 있었다. 코, 눈, 윤곽 예전과 많이 달라졌는데 돈을 쓴 것만큼 예뻐져 있었다. 하지만 금방 주사를 맞아서 그런지 얼굴은 예쁘면서도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고 어딘가 어색했다.
‘유인영... 5 년 동안 아주 잘 지냈나 보네. 그 말인즉 조지훈도 아주 잘 지냈다는 소리겠지...’
소은정이 유인영을 훑어보고 있을 때, 유인영 역시 소은정을 아래위로 찬찬히 훑어보았다.
‘브랜드를 알 수 없는 검은색 티셔츠, 평범해 보이는 청바지 그리고 하얀색 신발에 유행 지난 가방까지. 몸에 걸친 액세서리라고는 시계가 전부야. 짠 내 나게 살았나 보네.’
유인영은 팔짱을 끼고 가련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쯧쯧. 은정아, 어떻게 지내나 했더니 이러고 사는 거야? 이 가방 이천만 원이 넘는 가방인데, 어휴. 됐다, 됐어. 딱 봐도 물어줄 형편도 안 되는 것 같으니까 그만 가 봐.”
유인영은 소은정이 백화점 1층에 즐비한 사치품들을 소비할 능력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애를 데리고 백화점을 부랴부랴 찾은 건 에어컨 바람이나 쐬려고 그런 거겠지. 쯧쯧.’
유인영의 비아냥에 소은정이 반박하기도 전에 소연준이 먼저 말했다.
“이봐요, 못생긴 아줌마! 아줌마가 먼저 우리 엄마한테 부딪친 거거든요? 우리 엄마도 아줌마한테 뭘 물어내라고 하지 않았는데 아줌마가 왜 먼저 그러시는 거예요? 설마 지금 사기 치는 거예요? 자해공갈 뭐 그런 거?”
자해공갈이라는 단어는 소연준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 구글에서 본 단어였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는 자해공갈로 다른 사람에게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엄마가 너무 착해 보이니까 저 아줌마가 이러는 거야. 나는 집안의 유일한 남자니까, 엄마를 반드시 잘 지켜야 해.’
유인영은 보잘것없어 보이던 소은정의 아들이 이처럼 똑 부러지게 자기 앞의 말을 하자 순간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금방 주사 맞아서 조금 부자연스럽기는 해도, 내가! 이 천하의 유인영이 못생겼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지 않아?’
유인영은 어린아이를 상대로 말싸움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신 소은정에게 시비를 걸었다.
“은정아, 애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애가 너무 교양 없이 말하잖아. 우리 둘 사이의 옛정을 생각해서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런 식이면 안 되겠어!”
소은정이 제일 싫어하는 얘기가 바로 아이 교양을 어떻게 시켰냐는 말이다. 그런데 제일 싫어하는 말을 자기 가정을 파탄 낸 내연녀에게서 들어야 한다니 더욱 납득이 되지 않았다.
소은정은 몸을 숙여 씩씩대고 있는 소연준의 볼에 뽀뽀해주고는 작게 속삭였다.
“연준아, 연준이가 엄마를 보호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엄마가 너무나도 잘 알겠어. 그런데 이 일은 엄마 혼자 해결할 수 있어. 그러니까 연준이는 엄마 곁에서 얌전하게 있어 줄래?”
소연준은 당장이라도 나서 못생긴 아줌마를 밀쳐버리고 싶었으나 엄마가 직접 얘기하니 엄마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소연준은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조용히 소은정의 뒤에 가서 휴대폰을 꺼내 들고 현란하게 손을 놀리며 프로그래밍하기 시작했다.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소은정은 유인영의 가방을 보며 비웃는 투로 말했다.
“유인영, 5년이나 지났는데 너는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멍청해? 네 그 가방, 진품 아니야. 딱 봐도 짝퉁이라고. 기껏 해봐야 몇십만 원 정도 할걸? 그런데 몇십만 원짜리 짝퉁 가방으로 나한테 이천만 원을 넘게 물어내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뜯어내려면 뭘 좀 알고서 행동해.”
사실 소은정도 첫눈에는 가방이 진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금 전, 끊어진 가방의 체인을 보며 소은정은 가방이 진품이 아닌 짝퉁이라고 확신했다.
끊어진 가방 체인의 색상이 진품의 색상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백화점 입구에서 두 사람이 옥신각신 다투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짝퉁, 이천만 원, 뜯어내다와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에 사람들은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사람들은 소은정의 쪽으로 기울어져 유인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 시작했다.
“어머, 이 사람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명품매장 쪽에 돈 많은 사람들이 온다는 거 알고 한 몫 제대로 뜯으려고 이러는 거야? 사지 멀쩡한 사람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생긴 건 멀쩡해서, 왜 이런 짓을 하나 몰라!”
또 어떤 사람들은 아예 소은정에게 다가와 그녀에게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저런 사람은 봐주지 말아요. 경찰에 신고하는 게 답이에요. 여기 CCTV 전부 깔려 있으니까 신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