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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청동 소머리 경매

  • 천은서는 잠시 침묵하더니 가식적으로 얘기했다.
  • “엄마, 다 저 때문이에요. 제가 없었다면 언니도 허영심을 가지지 않았을 거예요.”
  • “그런 거 아냐.”
  • 정서아는 천은서를 위로했다.
  • “넌 영원히 나의 귀한 딸인걸.”
  • 천가연은 2층의 울타리 옆에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조소가 섞인 웃음을 띠었다.
  • 다음날, 갑자기 누군가가 천씨 가문을 방문했다.
  • 이른 아침부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천은서가 얼른 달려가 문을 열었다.
  • 문을 열자 그곳엔 정은서의 친구 유 사모님이 서 있었다.
  • 유 사모님과 정서아는 모델 시절 알게 된 사이였는데 꽤 돈독했다. 어제 정서아가 친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급하게 보러왔다.
  • 천은서가 즐거운 듯 웃으며 인사했다.
  • “유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 정서아도 따라 나오더니 인사를 건넸다.
  • “유 사모님, 얼른 들어오세요!”
  • 유 사모님은 따듯하고 인자한 얼굴로 은서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 “은서야, 오랜만이구나. 못 본 사이 키도 크고 더 예뻐졌네.”
  • 천은서는 부끄러운 듯 입을 틀어막고 웃더니 답했다.
  • “감사합니다.”
  •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한참 지나서야 유 사모는 천가연을 발견했다.
  • “어머, 저 아이가 당신 친딸이에요?”
  • 정서아는 심장을 철렁 내려앉으며 두 주먹을 꽉 쥐었는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네...”
  • 이때 천가연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른하게 소파에 앉아있었는데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 유 사모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 “참 예쁘네요. 당신과 정말 닮았어요. 천 사모님은 이제 남부러울 것이 없겠어요. 예쁜 딸이 둘이나 있잖아요.”
  • 정서아의 손톱이 그녀의 살을 파고들었다. 옆에 있던 천은서도 마음이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 “유 사모님, 농담도 참. 가끔 더 많다고 해서 꼭 좋은 건 아니죠.”
  • 정서아가 그 말을 했을 때 천가연이 마침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보았다.
  • 유 사모님이 제의했다.
  • “서아 씨, 우리도 간만에 얼굴을 보네요. 듣기로 성문대 상가에 새로운 레스토랑이 오픈했다던데 그 가게에서는 외국산 뉴질랜드 스테이크를 사용한대요. 오늘 가서 맛 좀 볼까요?”
  • 천은서도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 “정말요? 저도 꽤 오래 외국산 스테이크를 먹지 못했어요.”
  • 스테이크 얘기가 나오자 천은서는 입맛을 다셨다.
  • 유 사모님이 웃으며 얘기했다.
  • “그래? 나도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어. 참, 천 사모님, 당신 딸도 불러서 함께 식사해요.”
  • 정서아는 안색이 대뜸 굳어졌다. 천가연은 농촌에서 자랐기에 아마 스테이크를 먹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이프와 포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를 텐데 그렇게 되면 망신당할 일만 남게 된다.
  • 하지만 유 사모님이 뭔가 낌새를 눈치챌까 봐 그녀는 얼른 평정심을 되찾았다.
  • “그래요. 그녀가 서울말을 잘 못 알아들어요. 제가 가서 부를게요.”
  • 정서아가 천가연의 곁에 다가와 거칠게 이어폰을 귀에서 뽑아냈다.
  • 천가연은 느릿느릿 눈을 뜨더니 정서아를 흘끗 바라봤다.
  • 정서아가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
  • “이따가 우린 유 사모님과 스테이크 먹으러 갈 거야. 가서 넌 스테이크를 좋아하지 않으니 한식을 먹겠다고 해. 알았어?”
  • 천가연은 정서아를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 “전 안 가요.”
  • 곧이어 조롱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전 서울말도 못 알아듣고 스테이크도 먹을 줄 모르거든요.”
  • “이...”
  • 천가연이 앉아있는 소파가 이렇게 멀리 있는데 어떻게 그녀와 유 사모님의 대화를 듣게 되었을까?
  • 정서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 천가연의 몸에서 느껴지는 반항기와 소원한 느낌은 마치 고슴도치같이 그녀를 아프게 찔렀다.
  • 정서아는 한참 침묵하더니 아무 말도 없었다.
  • 가지 않는 것도 좋다. 최소한 망신당할 일은 없을 테니까.
  • 천가연이 가지 않겠다고 하자 유 사모님도 이해해주었다. 그녀가 S 시에 금방 오게 되었으니 많은 일이 아직 익숙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 그들이 떠난 후 천가연은 메시지를 한 통 받게 되었다.
  • 소우진은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
  • “누나, 정말 안 와요? 오늘의 압권은 청동 소머리예요. 전국각지의 거물들이 모두 모여서 쟁탈할 거예요.”
  • 그녀의 담담한 눈빛에 언뜻 감정이 내비치더니 말했다.
  • “갈 거야.”
  • 그녀가 도착했을 때 경매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 천가연이 오자마자 소우진은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 “누나, 정말 왔네요?”
  • “청동기는 언제부터 경매 시작이지?”
  • “금방이요. 아마 반 시간 정도 남았을 거예요.”
  • 소우진이 턱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 천가연은 등받이에 기대더니 다리를 꼬고 느긋하게 주변의 모든 것을 둘러보았다.
  • 과연 큰 도시의 경매는 떠들썩했다.
  • 소우진은 두리번거리는 천가연을 보며 생각했다.
  • ‘그 누가 감히 눈앞의 이 소녀가 명실상부한 큰손이자 의술, 미술, 해킹, 레이싱에서 전부 내로라하는 실력을 갖췄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 “자, 이제 오늘 밤 경매의 특급 물건, 청동 소머리의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 경매사의 목소리가 경매장에 크게 울려 퍼졌다.
  • 천가연이 바라보니 조수가 한 청동 소머리를 들고 나왔는데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해 보이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 경매사가 말했다.
  • “다들, 이 국보급 보물에 대해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20억에서 호가 시작해주세요!”
  • “22억.”
  • “26억.”
  • “30억.”
  • 경매장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권위가 있는 큰 인물들이었다.
  • 청동 소머리 또한 국보급 물건이었기에 당연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 “40억.”
  • “100억.”
  • 2층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대단한 인물일 거란 생각에 모두가 그곳을 바라봤다.
  • 청동 소머리일 뿐인데 시작 가격 20억에서 바로 5배로 뛰어오른 가격을 불렀다.
  • UN 주최 측도 이 소머리의 경매가격이 40억까지 올라갈 수 있으면 높은 것이라 여겼다.
  • 하지만 뜻밖에 바로 100억까지 치솟아 올랐다!
  • 정말 부르는 게 값이었다!
  • “100억 나왔습니다. 더 부르실 분 계신가요?”
  • 경매사가 두 번째로 물었는데 세 번째로 망치를 내려치는 순간 낙찰이었다.
  • “160억!”
  • 소우진이 팻말을 들고 웃었는데 눈이 거의 없어질 지경이었다.
  • 당연히 이는 그가 가지려는 것이 아니었고 그저 천가연을 대신해 입을 열 뿐이었다.
  • “160억!”
  • 경매사는 거의 갈라지는 목소리로 외쳤는데 한참 지나서야 겨우 정상적인 목소리로 돌아왔다.
  • “160억, 더 높은 가격 있나요!”
  • “160억 한 번, 160억 두 번, 160억 세 번.”
  • 결국 아무도 값을 더 부르지 않았고 천가연과 소우진 두 사람은 160억의 가격으로 청동 소머리를 낙찰받았다.
  • 그녀도 이 청동 소머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종일 몸에 걸고 있을 수는 없는 물건이니 국가에 바칠 수밖에 없었다.
  • 천가연은 만족스러운 듯 몸을 일으켰는데 정교한 눈가에 담담한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끼더니 두 손으로 허리를 짚더니 밖으로 나갔다.
  • “다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방금 임시로 통보를 받았는데 맨 마지막 물건이 아직 뒤에 남아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경매사는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고 자리에 멈춰서서 사람들을 위로했다.
  • 천가연과 소우진도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보더니 씩 웃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 경매사는 예를 갖추며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 “오늘 UN 책임자인 진 회장님께서 특별히 선물을 준비하여 여러분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보고 가셔도 늦지 않지요.”
  • “호오? 진 회장이 우리를 위해 프로그램을 준비했어? 마음을 꽤 썼나 보네.”
  • 관중석에 앉아있던 사람이 말했다.
  • 책임자 진 회장이 사람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 “짝짝...”
  • 그가 박수를 두 번 치자 주위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홀의 바로 앞쪽에서 한 줄기 따듯한 불빛만 비친 높은 무대의 중심에 언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검은색 우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속에 사람이 한 명 갇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