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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너무 억울해

  • 교장이 머뭇거리자 유영이 옆에서 함께 부추겼다.
  • “교장 선생님, 만약 우리 학교에서 누군가가 그녀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소문을 내게 되면 우리가 그녀를 적발하지 않았다는 것이 학교의 명성에 크게 타격을 입힐 겁니다!”
  • 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 여겨졌다.
  • 그는 방송부에 전화를 걸어 간단히 얘기한 후 다시 끊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라디오에서 엄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A반 천가연 학생은 방송을 듣게 된 후 3개 과목의 시험지를 들고 회의실로 오십시오!”
  • 그 말을 듣자 A반 친구들은 하나같이 시시덕거렸다.
  • “역시 내 추측이 맞았어. 천가연이 커닝한 증거를 찾은 거야.”
  • “우리 학교에서 커닝은 바로 퇴학이야. 이제 잘 됐어. 우린 촌닭이랑 같은 반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 “정말 얼굴도 두꺼워...”
  •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한선미와 유건우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 천가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 “괜찮아!”
  • 그 말을 하며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학생들을 훑어봤다.
  • 천가연이 교장실에 오게 되었다.
  • 유영은 그녀를 보자 피식 웃었는데 마치 ‘넌 이제 끝이야. 오늘부로 성문 고등학교에서 나가게 생겼네.’ 라고 말하는 듯했다.
  • 천가연은 그들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을 보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 아마도 천은서가 자신의 성적에 불만을 품고 일부러 교장 선생님 앞에서 난동을 부렸을 것이다.
  •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 ‘이제 누가 끝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 교장이 마른기침을 한번 하더니 물었다.
  • “천가연 학생, 시험지를 이리 가져오세요.”
  • 천가연이 입술을 달싹이며 유난히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 “뭐 하시려고요?”
  • 유영이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씩씩거리며 말했다.
  • “아직도 모르는 척할 거야? 커닝할 담력은 있으면서 인정은 못 해?”
  • 천가연은 담담한 눈빛으로 말했다.
  • “커닝한 적 없어요!”
  • “천가연, 발뺌할 생각 하지 마. 난 증거가 있어!”
  • 유영이 싸늘하게 웃었다.
  • “그래요? 증거?”
  • 유영은 천가연의 손에서 시험지를 뺏어가더니 그녀의 앞에서 펄럭이며 말했다.
  • “이게 바로 증거야. 봐봐, 국어의 주관식 문제는 전부 정답과 거의 다르지 않게 작성되었어! 만약 네가 정답을 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런 답을 할 수 있지?”
  • 천가연이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 “고작 이것 가지고 제가 커닝했다고 판단하신 건가요? 선생님, 견식이 너무 좁은 것 같은데요?”
  • 자신의 학생에게 한 소리 듣자 유영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 “그럼 이 성적은 어떻게 나온 거야?”
  • 천가연은 바로 그녀의 말에 답하지 않고 오히려 교장 선생님을 향해 돌아서더니 말했다.
  • “교장 선생님, 유 선생님께선 평소에 저를 힘들게 해왔어요. 그래도 꾹 참았는데 이젠 제가 커닝까지 했다네요. 만약 제가 저를 증명할 수 있다면 어떡하실 건가요?”
  • 유영이 싸늘하게 웃었다.
  • “네가 너를 증명할 수 있다면 내가 사흘 동안 너에게 사과하마!”
  • 교장 선생님은 헛기침하더니 말했다.
  • “그래, 그렇게 하자!”
  • 천가연이 유영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 “이번엔 선생님이 문제를 내세요. 제가 바로 이곳에서 시험을 다시 치겠습니다!”
  • “좋아. 그럼 유영 선생은 지금 바로 문제를 내도록 하세요.”
  • 30분 후.
  • 유영은 손에 들린 시험지를 천가연에게 건넸다.
  • “네 성적이 130점 이상이 되기만 하면 내가 사흘간 연속 네게 사과를 할게!”
  • 천가연이 받아들고 간단하게 훑어봤다. 그녀의 표정은 줄곧 담담했는데 가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듯했다.
  • 천은서가 유영을 흘끗 보며 소곤소곤 물었다.
  • “선생님, 쉽게 낸 건 아니죠?”
  • 유영이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 “쉽게 내? 내가 낸 문제는 전부 예전 수능에서 가장 어려웠던 문제들이야. 난 저 아이가 문제를 풀 수 있을 거라곤 믿지 않아!”
  • 천은서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 “전 선생님 믿어요.”
  • 시험시간은 한 시간이었는데 천가연은 고작 20분 만에 책상에 엎드려 곧 잠이라도 잘 기세로 졸기 시작했다.
  • 역시! 유영은 천가연이 곧 잠이 들 것 같은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교장 선생님. 보세요. 이게 전교 1등 한 착한 학생의 모습인가요? 엎드려 잠만 자도 일등이라고요? 만약 오늘 제가 그녀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성문 고등학교에서 활개 치며 다녔을 거잖아요!”
  • 유영의 말엔 비웃음이 가득했다. 천가연 같은 학생을 커닝하지 않았다고 보기가 훨씬 어려웠다!
  • 반주임은 난처한 얼굴로 가볍게 책상을 두드렸다.
  • “가연아, 문제 계속 풀어야지!”
  • 천가연은 방금 잠이 들었다가 퍼뜩 놀라며 몽롱한 눈빛으로 물었다.
  • “네?”
  • “시험! 문제 풀어야지!”
  • 천가연은 그제야 천천히 눈을 뜨며 담담하게 말했다.
  • “선생님, 죄송하지만 저 이미 끝냈어요!”
  •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영과 천은서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 “지금 누굴 속이려 들어? 연필을 들고 문제를 풀기 시작한 지 20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다 풀었다고? 내가 보기에 넌 풀 줄 모르는 거야.”
  • 천가연은 귀찮은 듯 귀를 막았다. 그녀는 손을 들어 시험지를 그녀 앞에 펼쳐 보이며 말했다.
  • “자! 보세요.”
  • 유영이 시험지를 들어보았는데 그녀의 기고만장한 웃음이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
  • 전부 답안이 적혀있다?
  • 하지만 전부 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녀는 자세히 검사하며 채점할 생각이었다.
  • 첫 번째 문제 정답, 두 번째 문제 정답, 세 번째 문제...
  • 답안을 확인하고 그녀는 억지로 붉은색 만년필을 움직여 체크했다. 또 한 문제를 맞혔다...
  • 뒤로 갈수록 유영의 안색이 흐려졌다.
  • 교장 선생님이 다가와서 물었다.
  • “어떤가요?”
  • 유영은 늦도록 대답이 없다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 “마침 131점이네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죠?”
  • 천은서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 ‘그럴 리가 없는데???”
  • 천가연은 여기서 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가려 했다. 그리고 유영을 스쳐 지나가는 찰나 귓가에서 나지막이 얘기했다.
  • “당신이 했던 말, 잊지 마세요!”
  • 유영은 주먹을 꽉 쥐었는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모욕감이 올라왔다.
  • A반
  • 유건우는 천가연이 돌아오자 얼른 물었다.
  • “가연 누나, 무슨 일이야?”
  • 천가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 “조금 있으면 알게 돼.”
  • 사건은 그녀가 말한 대로 발전했다. 역시나 2분도 지나지 않아 유영과 천은서가 시무룩한 얼굴로 A반에 돌아왔다.
  •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몹시 난처한 듯 겨우 입을 열었다.
  • “이번에 다들 영어 성적이 크게 진보했어. 이곳에서 난 우리 반의 한 학생에게 사과하려고 해.”
  • 유영의 말을 듣고 아래에 있던 학생들은 다들 귀를 쫑긋 세우며 자신이 환청을 들은 건 아닌지 의심했다.
  • 그 자만하고 권력에 아부하던 영어 선생님이 사과한다고?
  • 유영은 천가연을 흘끗 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 “가연 학생은 이번에 시험을 아주 잘 봤어. 하지만 내가 주관적으로 그녀가 커닝했다고 잘못 판단했어. 다들 천가연 학생을 따라 배워 수능에서 더 좋은 성적을 받길 바랄게.”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입을 떡 벌렸는데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 그러니까 선생님의 말씀은 천가연의 이번 성적은 그녀 자신의 실력이라는 뜻이었다!
  • 그녀야말로 숨겨진 공부의 신이었던 건가???
  • 하지만 이 말은 천가연이 보기엔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 말은 사과라고 했으나 한마디 미안하다는 말도 없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 “선생님, 사과는 이런 태도로 하는 건가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잖아요!”
  • 유건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 그 말에 유영은 얼굴이 퍼렇게 되었는데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 어디서 굴러온 건지 모를 학생을 향해 미안하다고 하라니?
  • 게다가 유영은 천가연의 이번 성적은 딱히 무엇을 의미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마침 그 문제들을 풀 줄 알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 “미안해! 천가연 학생, 다음에도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길 바랄게.”
  • 그녀는 줄곧 천가연을 A반에서 쫓아내고 싶었으나 이번에 완전히 당하게 되었다...
  • 이십여 년간 학생을 가르치며 이렇게 억울했던 적이 없었다.
  • ‘천가연, 너 딱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