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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서준 도련님을 만나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금요일이 되었다.
  • 천가연은 전처럼 자리에 앉아 게임을 하고 놀고 있었다. 이때 유건우가 다가오며 물었다.
  • “가연 누나, 오늘 무슨 날인지 잊었어? 게임 놀 기분도 있어?”
  • 천가연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 “왜?”
  • “오늘 금요일이야, 시험날! 가연 누나, 힘내! 소문에 의하면 불합격한 사람은 성적이 안 좋은 반으로 보내질 거래.”
  • 천가연은 상관없다는 듯 얘기했다.
  • “다른 반에 가도 나쁠 건 없을 것 같은데? 적어도 그 탐욕스러운 영어 선생님을 마주할 일은 없잖아!”
  • 유건우가 어이없어했다.
  • “가연 누나, 누나가 가면 난 어떡해?”
  • 그 말에 천가연은 피식 웃어버렸다.
  • 사실 어느 반에 있는지는 정말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녀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돌려주느냐였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반주임이 교실에 들어와 시험에 관해 얘기했다.
  • 몇 분 후, 책상 위의 물건은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텅 빈 책상만 남게 되었다.
  • 첫 번째 시험은 국어였다.
  • 천가연이 시험문제를 손에 쥐고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 그녀는 S 시의 중점 고등학교의 문제는 꽤 어려울 거로 예상했으나 뜻밖에도 교과서 안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은 문제들이었다. 눈을 감고도 풀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게 여겨졌다.
  • 천가연은 기분 좋은 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연필을 거두고 침대에 엎드려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을 감은지 채 2분도 지나지 않아 칠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시험감독 교사가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 “학생, 네 사정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지만 최소한 시험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지.”
  • 얼마 후, 천가연이 느긋하게 말했다.
  • “선생님, 저 시험 끝났어요.”
  • 말을 마치자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 시험시간은 두 시간이었는데 현재는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다 풀었다고?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전교 1등인 줄 알았을 것이다.
  • 아니, 전교 1등도 이렇게 빨리 문제를 풀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국어 선생님께서 이번에 평소보다 더 어렵게 문제를 냈다.
  • “하하하! 이렇게 빨리 끝냈다니. 그냥 백지 아냐?”
  • “아, 너무 웃겨. 신입생 바보 같아!”
  • “조용! 더 얘기하면 시험지 거둘 거야!”
  • 시험감독 교사가 호통쳤다.
  • 반 시간 정도 남았을 때, 천가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시험지를 바치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 첫 시험이 끝나자 모두 굉장히 고통스러운 듯했다.
  • 아이들은 교실을 나서며 울상이었다.
  • “세상에! 왜 이렇게 어려워? 나 무조건 불합격이야.”
  • “꼴찌만 아니길! 하느님! 제발요.”
  • “걱정하지 마. 어떻게 꼴찌를 해? 우리 반에 촌닭 신입생이 있는데!”
  • ...
  • 시험이 끝나자 유건우가 제일 먼저 천가연을 찾아왔다.
  • “가연 누나.”
  • 유건우가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천가연은 유건우를 보자 그를 향해 다가갔다.
  • 천가연은 걸으면서 대답했다.
  • “가연 누나, 시험 어땠어?”
  • “그럭저럭.”
  • 천은서는 마침 옆에서 들은 것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눈을 흘겼다.
  • “흥!”
  • 지난번 영어 문제도 천가연이 풀지 못해 그녀가 나가서 풀었다.
  • ‘유 도련님 곁에서 좀 작작 붙어 다녀. 이제 곧 성적 나오면 창피해서 얼굴도 못 들걸?’
  • 이번에 주로 세 과목의 시험이 있었는데 국어, 수학, 영어를 하루 안에 다 끝냈다.
  • 온종일 휴대폰을 보지 못했기에 천가연은 수많은 부재중 전화를 받게 되었고 메시지도 몇 통 있었다.
  • 그중 하나가 소우진의 전화였다. 그녀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물었다.
  • “무슨 일이야?”
  • “가연 누나, 드디어 전화를 받네요. 핸드폰은 왜 온종일 끄고 있었죠?”
  • 천가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 “시험.”
  • 소우진은 미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죄송해요. 가연 누나가 이젠 학생이라는 것을 자꾸 까먹네요.”
  • “무슨 일인지 말해.”
  • “지난번 UN에서 누나랑 마찰이 있었던 배 나온 대머리 아저씨 기억나요? 이번에 직접 누나랑 만나서 업무에 관해 얘기하고 싶다네요.”
  • 천가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 “내가 말했잖아, 비즈니스는 거절한다고!”
  • “가연 누나, 가격은 원하는 대로 불러라는데 정말 싫어요?”
  • “거절이야!”
  • 그녀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 “그럼 제가 대신 답장할게요.”
  • 소우진은 전화를 끊고 씩 웃었다.
  • ‘정말 어쩔 수 없다니깐...’
  • 천가연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것이 예정된 듯 교묘했다.
  • 경매 얘기가 나오면 그녀는 그 남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우리 안에 있는 모습에 꽤 놀랐었다. 그의 이름이 하서준이었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뭔가 느낀 듯 자신의 얼굴을 찰싹 때리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 천가연이 택시를 잡으려고 앱을 열자 10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대기 중이었다.
  • “재수가 없군!”
  • 그녀가 낮은 소리로 욕했다.
  • “멈춰!”
  • 어둠 속의 비를 뚫고 검은색 전 세계 한정판 롤스로이스 한대가 나타났다.
  • 차 안의 남자는 짙은 눈빛으로 빗속의 소녀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 ‘그녀가 왜 여기에 있지?’
  • 신 비서는 백미러로 남자를 흘끗 보며 말했다.
  • “서준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
  • 하서준은 말이 없었다. 그는 큰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그 소녀를 향해 걸어갔다.
  • 빗속에서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천가연은 누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순간 경계하기 시작했다.
  • 곧이어 누군가 그녀를 품에 안았고 남자의 향기가 풍겨오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멍해진 그녀를 보며 남자가 살짝 불쾌한 듯 얘기했다.
  • “비 맞는 것을 이렇게 좋아했어?”
  • 천가연은 하서준이 왜 갑자기 여기에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 ‘나를 품에 안는 건 또 무슨 뜻이지?’
  • “너와 무슨 상관인데?”
  • 두 번 정도 본 남자의 품에 안겨 있으니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버둥거렸다.
  • “움직이지 마!”
  • 그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 “이렇게 비를 맞으면 쉽게 병 걸리는 거 알아?”
  • “...”
  • 그녀는 전에 훈련할 때 적잖게 비를 맞고 상처를 입었었다. 그래도 아프지 않고 멀쩡했다.
  • “내려놔!”
  • 하서준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바로 안아서 차로 향했다. 그리고 거의 던지다시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 “너...”
  • 하서준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운전사를 향해 말했다.
  • “하씨 저택으로 돌아가.”
  • 천가연이 그를 흘끗 보며 말했다.
  • “누가 너랑 같이 돌아간대?”
  • “너 저택으로 돌아 안 갈 거야? 그럼 천씨 가문으로 돌아가 네 부모님께 UN 경매 회에서 우리가 서로 알게 되었다고 얘기할까?”
  • 남자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천가연은 입을 꾹 닫아버렸다.
  • 그녀는 정서아와 천교진이 그녀의 진짜 신분을 알게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크게 귀찮아진다!
  • 두 사람은 가는 길 내내 말이 없었는데 오히려 신 비서가 말이 많았다.
  • “가연씨, 왜 빗속에 서 있었어요? 아직 학생인 것 같은데 혹시 시험을 잘 못 쳐서 속상했나요? 아니면 선생님께 야단맞기라도 했나요?”
  • “...”
  •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밖의 비를 보며 말이 없었다. 신 비서는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계속해서 차를 몰았다.
  • 롤스로이스는 하씨 저택 아래에서 멈췄다.
  • 천가연은 억지로 차에서 내려 거실까지 오게 되었다.
  • 가정부들은 서준 도련님이 돌아오자 얼른 마중 나갔다. 하지만 그의 곁에 여자가 한 명 더 있을 줄은 아무도 예상 못 했다.
  • 눈앞의 앳된 여자는 서준 도련님이 처음으로 집에 데려온 여자였다.
  • 하서준은 불쾌한 듯 가정부를 흘끗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 “뭘 멍하니 서 있어?”
  • “...”
  • “제가 아씨를 위해 따듯한 생강차를 끓여 오겠습니다.”
  • “아씨를 위해 목욕물을 덥힐게요.”
  • “제가 가서 깨끗한 옷을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