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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소녀의 신분은 대체 몇 개?!

천재 소녀의 신분은 대체 몇 개?!

핑콩

Last update: 2024-03-28

제1화 친딸

  • 7월의 태양은 화염처럼 이글거리며 온 마을과 논밭의 농작물에 뜨겁게 내리쬈다.
  • “가연아, 누가 너를 찾는구나.”
  • 이웃집 오씨가 천가연을 찾았을 때 그녀는 수박씨를 심고 있었다.
  • 그녀는 고개를 들더니 크고 동그란 눈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 하얀 피부에 고결한 기품을 가진 그녀는 오랜 시간 집에서 밭일을 해왔으나 여전히 뭇사람의 시샘을 자아내는 좋은 피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 오씨가 말했다.
  • “그 사람은 네 집에 있어. 꽤 사는 집안 사람 같아. 차를 몰고 왔어.”
  • 천가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갔다.
  • 그 시각 황씨네 집에 사람들이 모여앉아 있었다.
  • 정 집사는 눈앞에 다가온 고결한 느낌의 여자를 바라봤다. 그녀는 리넨 재질의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온통 진흙과 모래로 뒤덮여 있었다. 비록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지는 않았으나 이런 모습을 보고도 우호적으로 인사하기는 꽤 어려웠다.
  • 정 집사는 혐오스러워하는 듯한 눈빛을 하고 물었다.
  • “당신이 천가연인가요?”
  • 천가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정 집사가 계속해서 말했다.
  • “제 이름은 정미소라고 해요. 천씨 가문의 집사죠. 천씨 가문의 모든 잡다한 일들은 제가 도맡아 처리한답니다.”
  • 이때 황씨 일가의 안주인 황하나가 싸늘하게 코웃음 쳤다.
  • 정 집사는 피식 웃었는데 그녀는 황하나의 코웃음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
  • 이윽고 그녀는 가방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무겁게 내려놓았다.
  • “카드에 10억이 들어 있어요. 당신들이 한평생 농사를 지어도 벌 수 없는 금액이죠.”
  • 두 시골 중년 부부는 다리를 꼬고 앉아 뚫어지라 그 카드를 바라봤다.
  • ‘흥, 이 망할 계집이 이렇게 큰 가치가 있었어?’
  • 황하나는 내키지 않는 듯 이어서 말했다.
  • “고작 10억으로 없는 것으로 하려는 거야? 우린 저 아이를 18년 동안 키웠어!”
  • “얼른 받아요. 너무 욕심부리지 마시고!”
  • 천가연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황하나는 그녀를 향해 힘껏 눈을 부라리더니 얘기했다.
  • “망할 계집애, 너랑 무슨 상관이야? 더러워 죽겠어. 얼른 방에 돌아가 찬물에 샤워나 해. 쓸데없는 참견 말고.”
  • 어려서 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이 딸을 좋아하지 않았다. 공부도 못했고 성격도 괴팍한 데다 눈 씻고 찾아봐도 좋아해 줄 수 있는 구석이 없었다.
  • 워낙 얼른 그녀를 시집보내서 결혼 예물이나 챙기려고 했는데 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 그때 마을의 입이 빠른 부인이 하는 말에 따르면 그녀가 외지의 남자를 따라 도망갔다는 것이다. 그 소문 적분에 황하나는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을 3년이나 받아야 했다.
  • 돈을 받는다고 쳐도 그녀가 오랫동안 마을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서러움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 무더운 날씨였지만 황씨네 집에는 에어컨조차 없었다. 정 집사는 이미 짜증 나다 못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카드를 ‘탁!’ 뿌리며 얘기했다.
  • “아니면 이 돈은 당신들이 알아서 결정해요. 사람은 오늘 꼭 데려가야겠으니까.”
  • 그 말을 마치고 그녀는 천가연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 “지금 입고 있는 그 옷 좀 갈아입어요. 너무 더럽잖아요!”
  • 천가연은 그녀를 향해 눈을 흘겼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정 집사는 약간 불쾌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천가연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작은 가방을 메더니 차 앞으로 걸어왔다. 정 집사가 그녀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차에 타요!”
  • 그녀도 별말 없이 바로 차에 탔는데 이곳에 조금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는 것 같았다.
  • 18년이나 살았던 곳이었지만 그녀의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집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 마을 사람들은 멀어져가는 고급 자동차를 보며 서로 수군덕거렸다.
  • “저것 봐, 미운 오리 새끼가 거위가 되었어!”
  • ...
  • 차 안. 천가연은 나른하게 의자 받침대에 기댄 채 손가락으로 차창을 톡톡 두드렸다.
  • 갑자기 벨 소리가 울리자 그녀는 천천히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운전석의 정 집사는 백미러를 통해 천가연의 손에 들린 벽돌처럼 두꺼운 핸드폰을 보고 또다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저렇게 아둔한 물건을 쓰지?’
  • 천가연이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무슨 일이야?”
  • 전형적인 소녀의 목소리에 약간 담담한 말투였으나 전화기 한편에 있는 남자의 흥분된 심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 “누나, 내일 UN 경매에 거물이 올라올 거라네요. 와보실래요?”
  • 남자의 목소리는 기대로 가득 찼으나 조심스러웠는데 마치 손윗사람에게 대하듯이 깍듯한 말투였다.
  •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천가연의 친한 친구 소우진이었는데 전국각지에 좋은 일이 생기면 그가 제일 먼저 천가연에게 알렸다.
  • 이번 경매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경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손이 크기로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 천가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 “안 가. 시간 없어.”
  • 말을 마치고 그녀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 “가연씨, 보이스피싱이라도 당했나요? 저희 S 시의 사기꾼들은 수법이 교묘한데 가연씨처럼 농촌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아마 마주친 적 없겠죠?”
  • 정집사가 입을 열고 물었다.
  • 천가연은 두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사기꾼이 많은가? 사기꾼의 수법이 교묘한 것이 자랑스러운 건가?’
  • 정소미는 천가연의 냉담한 태도에 화가 치밀어 약간 불쾌한 말투로 얘기했다.
  • “천 씨 가문은 명예와 위신이 높은 가문이죠. 만약 가연씨가 가문에 발을 들이면 이 핸드폰은 반드시 바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가문의 체면에 먹칠하는 것과 다름없으니깐요.”
  • 말을 마치고 정소미는 싸늘하게 천가연을 흘끗 바라봤는데 눈을 반쯤 감은 그녀는 잠든 것처럼 보였다.
  • 정소미는 자신이 한 말이 소귀의 경 읽기처럼 느껴지자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 “듣자 하니 가연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그만뒀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자연히 천씨 가문의 규칙도 모르겠죠.”
  • 워낙 잠들었던 가연의 눈꺼풀이 살짝 움직이며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 “엉?”
  • 정미소는 마치 규칙을 모르는 말괄량이를 교훈하듯이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 “엉? 나이가 더 많은 사람과 지금 무슨 태도로 얘기하는 거죠? 교양도 없이?”
  • 천가연은 가볍게 웃을 뿐 더는 말하지 않았다.
  • ‘한낱 집사가 천씨 가문의 아씨를 교육하려 든다?’
  • 천가연의 웃음에 그녀가 자신의 말을 가소롭게 여긴다고 느껴진 정미소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 그녀는 심호흡하며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확실히 선을 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입을 꾹 다물었다.
  • ...
  • 천씨 가문.
  • 두 층으로 된 별장 내부에서는 점심 식사가 한창이었다.
  • 아버지 천교진은 여태껏 천씨 가문의 기업을 완벽할 정도로 잘 관리해왔다.
  • 어머니 정서아는 은퇴한 유명 모델이었다.
  • 그리고 딸 천은서는 학교 성적이 우수하고 피아노면 피아노, 그림이면 그림, 모두 잘하여 선생님과 교장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 타인의 눈에 있어 천씨 가족은 완벽 그 자체였다.
  • 천은서는 요즘 학교 신체검사에서 혈액형이 O형으로 나왔는데 정서아와 천은서는 모두 AB형이었다. 그 말은 즉 그들 사이에 O형인 아이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이었는데 만약 이 일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천씨 가문의 모든 사람은 천은서가 그들 가문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 당시 조산하던 병원에 인턴 간호사가 있었는데 실수로 아이의 이름 라벨을 잘못 붙인 것이었다.
  • 이때 모든 사람의 얼굴에는 우울한 그늘이 졌는데 각자의 표정은 달랐고 생각도 달랐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지도 않았기에 테이블 위의 맛있는 요리에 젓가락을 대는 사람도 없었다.
  • 천은서는 젓가락을 잘근잘근 씹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식사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 “은서야, 어딜 가려고 그래?”
  • 정서아가 몸을 일으켜 그녀를 붙잡았다.
  • 천은서가 격하게 흐느끼자 숨이 턱에 닿았다.
  • “엄마, 아빠, 저 이제 곧 당신의 딸이 아니게 돼요.”
  • 아버지 천교진이 얼른 다가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
  • “은서야, 그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넌 영원히 엄마 아빠의 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