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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체면을 위해

  • “하지만... 언니가 곧 돌아오게 되면 가문은 저를 버릴 거예요.”
  • “은서야.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집은 영원히 네 거야. 넌 가면 안 돼!”
  • 정서아가 그녀를 안았다. 서아는 속이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천은서에게 18년간 감정을 쏟아부었는데 어찌 단칼에 끊어내듯 끊을 수 있을까?
  • 게다가 자기가 낳은 친딸은 아예 천씨 가문의 큰 아씨라는 타이틀에 미치지도 못했다..
  • 정서아는 머릿속에 천가연의 배경에 대한 자료가 스쳐 지나갔다: 이름 천가연, 중졸, 18세, 학교 성적은 평범하며 자주 수업을 빼먹었고 나중에 3년간 실종되다.
  • 이 삼 년간 아무도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심지어 소문에 의하면 과거에 나이 많은 남자와 도망갔다는 얘기도 있었다.
  • 그녀는 이런 사람이 그녀의 친딸이라는 것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 마침 이때 천가연이 돌아왔는데 그녀는 눈앞의 광경을 마주하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 제자리에 꽤 오래 서 있었는데 결국 천교진이 먼저 그녀를 발견했다.
  • “가연아?”
  • 천교진은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
  • 중년 남자의 눈빛이 천가연을 향하며 천은서를 잡았던 팔을 뺐는데 표정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 천은서도 울음을 잠시 멈추고 천가연을 바라봤다.
  • 그녀는 하얀 피부에 여리여리 했으며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은 정교한 도자기 인형 같았다. 외모로 보나 기질로 보나 모두 정서아를 퍽 닮아 있었는데 역시나 유전자의 힘은 강했다.
  • 천은서의 눈가에 질투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천가연이 사구려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또 약간 혐오스러웠다.
  • ‘역시 촌에서 온 사람다워. 촌스러워. 나와 같이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과는 비할 수 없어.’
  • 지금 보면 천은서가 훨씬 많이 천씨 가문의 아씨처럼 보였다.
  • “가연아, 너니? 얼른 들어와.”
  • 천가연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교진의 옆에 가서 앉았다.
  • 정서아는 자신을 신기하리만치 닮은 소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약간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 “가연아, 여긴 네 동생 천은서야.”
  • “언니, 안녕하세요. 저는 은서예요.”
  • 천은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는데 그런 그녀의 조심스러움을 눈치챈 정서아는 마음 한편이 욱신거리며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 천가연은 핑크빛 입술을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짓더니 역시 어색한 말투로 대답했다.
  • “안녕하세요.”
  • 천교진은 천가연을 아래위로 쭉 훑어보더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 “방금 집에 돌아와서 좀 적응이 안 되지?”
  • 그는 몸을 일으켜 차를 한 잔 따라 천가연에게 건넸다.
  • 천가연은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 “그럭저럭 괜찮아요.”
  • 천교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됐어. 우리가 부모로서 네게 빚을 졌어. 앞으로 천씨 가문에 머물 거라. 엄마 아빠가 너를 돌봐줄게.”
  • 그들은 천가연에게 빚진 것이 너무 많았다. 앞으로 천천히 그 빚을 갚아나가야 했다.
  • “참, 가연아. 너 학교 성적에 대해 내가 좀 알아봤어. 아직 중학교 학력이니까 아빠가 너에게 성문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두었어. 네 동생과 같은 학교야! 월요일부터 입학하는 건 어때?”
  • “성문 고등학교는 S 시에서 가장 좋은 귀족 학교예요. 언니, 천씨 가문의 큰아씨에게 중학교 학력은 한참 부족하죠.”
  • 천은서가 한마디 보탰는데 그녀의 말속엔 천가연의 학력이 너무 낮아서 내놓기 부끄럽다는 뜻이 선명하게 깔려있었다.
  • ‘성문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해도 뼛속 깊이 새겨진 궁상맞은 모습은 고쳐지지 않을걸?’
  • 그러자 천가연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고마워요.”
  • 천가연이 이렇게 기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천은서는 속으로 눈을 흘겼다.
  • ‘귀족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니 이렇게 기뻐하네? 과연 촌사람이야. 유치해.’
  • “참.”
  • 천교진이 뭔가 생각난 듯 침실로 들어가더니 궤짝에서 정교한 선물함을 꺼내 들었다.
  • 그는 그 선물을 천가연의 앞으로 내밀며 담담하게 말했다.
  • “가연아, 이건 우리 부녀가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것을 기념하는 선물이야. 열어 봐.”
  • 천가연은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며 아름다운 선물함을 훑어보더니 천천히 겉에 있는 쇼핑백을 풀었다. 그리고 안을 보니 LV 명품 박스가 들어있었다.
  • 박스를 열자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LV 목걸이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천은서는 속으로 질투를 느꼈다. 이 목걸이는 한눈에 봐도 진귀했는데 천교진은 오늘 천가연을 처음 만나는 날에 이렇게 큰돈을 들인 선물을 한 것이었다.
  •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큰일이야. 그럼 앞으로 천씨 가문에 내가 발 디딜 틈이 없을 거야.’
  • 그 생각을 하자 그녀의 질투심은 더더욱 증가했다.
  • 천교진이 부드럽게 물었다.
  • “어때?”
  • 천가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담담하면서도 약간 거리를 두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 “감사합니다.”
  • “한집 식구끼리 인사치레는 넣어둬.”
  • 천교진이 자애로운 미소를 띠며 계속하여 천가연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으려는 찰나 그의 시선이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목을 향했다.
  • 이때 천가연의 목에 루비 목걸이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한눈에 그는 그것이 M 국의 본 시즌 최신 경매품임을 보아낼 수 있었다. 가격은 어마어마했는데 몇천 억대였다.
  • 목걸이는 핏빛의 보석이 박혀있었는데 굉장히 고급스럽고 우아했다.
  • 당시 이 목걸이의 경매 값은 3000억에 낙찰되었는데 낙찰받은 사람의 신분은 지금껏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 소문에 의하면 M 국의 한 큰손이 낙찰받았다고 했다.
  • 하지만 어떻게 그 목걸이를 천가연이 가진 걸까?
  • 천교진의 총명한 두 눈엔 의문으로 가득했다.
  •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니 어쩌면 천가연은 내세울 만한 액세서리가 없어서 짝퉁으로 체면을 살리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 천교진은 만약 천가연이 어릴 때부터 그들과 함께 생활했더라면 지금처럼 권력이나 재력을 따지는 성격으로 변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 곧이어 그는 약간 자책하듯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는데 정서아 역시 마땅한 화제를 찾지 못했다.
  • 한 가족은 마치 낯선 사람처럼 서로를 어색해했다.
  • 시간은 일분일초 흘러갔고 천가연이 물건 정리를 마치고 계단을 올랐다.
  • 천가연이 떠나자 정서아는 마치 큰 짐을 벗어버리듯 소파에 몸을 맡겼다.
  • 천은서은 소파 앞으로 다가와 앉더니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 “엄마, 왜 언니한테 그런 태도로 대했어요?”
  • 정서아는 짜증나는 듯 미간을 어루만지더니 어쩔 수 없다는 투로 얘기했다.
  • “은서야. 어떤 말은 너무 직설적으로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거 알아? 가연이가 오늘 밤 하고 온 목걸이는 M 국에서 이번 시즌에 나온 최신 경매품이야. 그 가격은 자그마치 천억대지.”
  • 사실 정서아도 처음부터 그 목걸이가 가짜라는 것을 발견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천가연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는 자신의 체면을 깎고 싶지 않았다.
  • 천은서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 “천억대요?”
  • “언니가 어떻게 천억대의 액세서리를 갖고 있을 수 있죠?”
  • 그녀는 일부러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 “설마 언니가 스폰을 받고 사는 건 아니겠죠?”
  • 정서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 “그건 말도 안 돼. 그녀는 이렇게 손이 큰 남자를 알게 될 가능성이 없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능력이 없으면서도 체면을 위해 모조품을 걸고 왔다는 거야. 만약 밖에서 사람들이 우리 천씨 가문의 딸이 가짜 목걸이를 걸고 과시한다는 것을 알면 나는 조롱거리가 될 게 뻔해.”
  • 그렇구나. 천은서는 그제야 정서아가 조금 전 보인 반응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몰래 비웃었다.
  • ‘촌년이 헤세 부리긴!’
  • “그럼 왜 바로 언니한테 얘기하지 않았어요?”
  • 천은서가 의아한 듯 물었다.
  • 정서아가 짧게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
  • “내가 어떻게 말하겠니. 엄마로서 체면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