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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커닝했어요!

  • 천은서가 일어나 말을 가로챘다.
  • “선생님, 이게 어떻게 가능해요? 천은서가 일 등일 리가 없잖아요? 게다가 영어가 만점이라고요? 이건 절대 불가능해요!”
  • 천은서의 말을 듣자 교실의 아이들도 잇달아 야유하기 시작했다.
  • “맞아요, 천가연이 어떻게 1등을 할 수 있어요?”
  • “저도 안 믿어요, 급제하면 다행인 아이가...”
  • “분명 커닝했을 거예요!”
  • “커닝한 사람은 성문 고등학교에 다닐 자격이 없어요!”
  • 반의 아이들이 다 같이 천가연을 향해 깔보는 시선을 던졌고 주위에서 야유가 쏟아져 내렸다.
  • “가연아... 어떻게 이럴 수 있어?”
  • 한선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 한선미가 머리를 들어 천가연을 바라봤는데 그녀의 눈빛에서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 “다들 조용!”
  • 유건우는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소리에 짜증 나서 외쳤다.
  • “선생님께서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데 무슨 야단이야?”
  • 그러자 학생들은 단번에 조용해졌다. 유건우가 처음으로 반에서 화를 냈다.
  • 멋있어!
  • 반주임은 이런 상황에 직면하니 확실히 좀 난처했다.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 천은서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자기 의견을 지지하자 더 확신에 차서 얘기했다.
  • “선생님, 전 천가연의 영어가 만점을 받을 수 있을 실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전에 영어 시간에도 제가 걔를 대신해서 문제를 풀었어요. 당연히 전 반장으로서 우리 반의 모든 친구를 믿어요. 그러니까 가연이가 꼭 커닝했다고 말할 수 없어요. ... 혹시 이름을 잘못 본 건 아닌가요?”
  • 반주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충분한 증거 없이 천가연이 커닝을 했다고 할 수는 없었고 그는 교사로서의 도덕을 지켜야 했다. 그리하여 최대한 천가연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의도로 의미심장하게 얘기했다.
  • “얘들아, 농촌의 교육이 꼭 우리 S 시보다 나쁘다고 할 수 없어. 우리 모두가 농촌 출신의 친구에게 평등하게 대했으면 좋겠어.”
  • “선생님, 저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 천가연이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갑자기 한마디 해서 다들 깜짝 놀랐다.
  • 반주임이 그녀를 바라봤다.
  • “가연아, 무슨 일이야? 너 방금 사무실에서 네 실력으로 받은 점수라고 했잖아?”
  • 천가연은 한참이나 참았다. 그녀는 드디어 입을 열 기회가 생긴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 “선생님, 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저 국어는 왜 고작 144점이고 수학은 146밖에 안 되죠? 분명 뭐가 잘못된 거예요!”
  • 자신의 성적을 듣고 천가연은 꽤 놀랐다. 수학이 어떻게 146점밖에 안 되지?
  • 그녀가 M 국에서 배운 수학으로 이 정도일 리가 없었다!
  • 반 친구들은 모두 화가 났다. 천가연이 이토록 낯이 두꺼울 줄 누가 알았을까? 커닝하고도 만점을 맞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다니.
  • 반주임도 어이가 없는 듯 손을 마주치며 말했다.
  • “됐어, 그만해! 그만 싸워. 오후에 시험지를 나눠주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되겠지.”
  •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천은서에게 성적표를 나눠주게 한 후 다들 순위에 따라 자리를 배치하게 했다.
  • 일등인 천가연은 당연히 제일 먼저 자리를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리를 바꾸지 않고 원래 자리에 앉았다.
  • 한선미는 그런 그녀를 향해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 “가연아, 너 성적이 그렇게 좋은데도 나랑 함께 앉으려는 거야?”
  • 천가연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그녀를 놀렸다.
  • “너만큼 대단하진 않지. 사실 나 성적 그냥 그래. 이번 시험엔 그냥 운이 좋았어.”
  • 하지만 앉자마자 후회가 되었다. 왜 마지막 둘째 줄을 선택했을까? 충분히 유건우 자리를 빼앗을 수 있었는데...
  • 마지막 줄이야말로 최고의 명당 아닌가? 풍경도 더 전체적으로 보이니까!
  • ‘정말 아쉽네...’
  • 수업은 빠르게 지나갔지만 다들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 아이들은 여전히 시험의 영향에 빠져있었는데 우울해하거나 놀라워하거나 기뻐했다. 하지만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천가연에 대한 의심이었다.
  • 영어에서 어떻게 만점이 나오지???
  • 이 사건은 빠르게 소문이 퍼졌다. A반의 영어 선생님 유영은 더더욱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천은서가 응당 일등일 것이라 믿기에 증거를 수집하여 천가연을 학교에서 퇴출하고 천은서가 제자리를 찾도록 만들 결심을 내렸다.
  • “듣기로 A반에 새로 온 촌닭이 전교 1등을 했다며? 너 천은서 그 굳은 표정 봤어? 정말 웃겨 죽는 줄 알았다니까!”
  • “아무튼 난 천은서 편이야.”
  • “걔 무조건 커닝했어!”
  • 전체 학생들은 가십거리에 관해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나 사건의 중심에 있는 천가연은 오히려 낮잠을 쿨쿨 자고 있었다.
  • “가연아.”
  • 유건우와 한선미는 멍하니 시험지를 보다가 둘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 “이 시험지는 정말 네가 답한 거야?”
  • 시험지는 이미 내려왔다.
  • 두 사람은 그 시험지 위에 쓰인 예쁜 글씨체를 바라봤다. 그리고 거의 만점에 가까운 작문은 그 짜임새와 생각의 깊이가 거의 작가 수준이었다.
  • 한선미의 통통한 턱이 떨어질 것처럼 크게 떡 벌어졌다.
  • “와... 가연아, 너 글 진짜 잘 쓴다.”
  • “응?”
  • 천가연이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관심 없다는 듯 대답했다.
  • “사실 나 전에 작문 엄청 못 썼어. 거의 0점이었어.”
  • “...”
  •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시험지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 “그럼 이번엔 어떻게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어?”
  • 천가연이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방금 잠에서 깬 얼굴은 발그레하니 귀여웠다.
  • “시험 전날 꿈에서 답을 봤어. 우연의 일치야.”
  • “...”
  • 두 사람은 다시금 말문이 막혔다.
  • 이때 학교 회의실에 적지 않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 영어 선생님 유영, 반주임, 교장 선생님과 학생 주임, 그리고 A반의 천은서.
  • “교장 선생님.”
  • 천은서가 내키지 않는 듯 말했다.
  • “우리 학교에서 커닝한 사건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죠?”
  • 교장은 단호하게 얘기했다.
  • “우리 성문 고등학교는 절대로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을 감싸지 않을 겁니다. 발견하게 되는 즉시 퇴학입니다!”
  • “교장 선생님, 우리 학교 신입생 천가연이 어떤 아이인지 아시잖아요. 이번엔 정말 너무 했어요.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러서 전교 일 등이 되다니. 수치스러운 줄 모르고!”
  • 교장 선생님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반주임을 보더니 물었다.
  • “천가연의 이 성적은 진짜인가요?”
  • 반주임은 안색이 대뜸 굳어졌다. 그는 천은서가 교장 선생님께까지 일러바칠 줄 몰랐고 그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 “잘 모르겠습니다.”
  • 영어 선생님 유영은 불난 곳에 부채질하듯 얘기했다.
  • “교장 선생님, 천가연은 제 학생이에요. 걔가 어떤 아이인지는 제가 잘 알아요. 평소 성적으로만 봐도 영어 만점이 나올 수가 없어요. 이건 제대로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 교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부정행위는 작은 일이 아니었기에 증거를 위해 천가연의 시험감독 선생님을 불러왔다.
  • 유영과 천은서가 서로 눈을 마주쳤는데 고소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 반주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비록 천가연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이 일이 자기 반에서 벌어진다면 역시나 난처했기 때문이다.
  • 몇 분 지나지 않아 시험감독 선생님이 내려왔고 상황을 파악한 후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 “교장 선생님, 그때 저 학생에 대한 인상이 꽤 깊게 남아있어요. 하지만 부정행위를 저지른 모습은 본 적이 없어요.”
  • “그럴 리가요?”
  • 유영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교장을 보며 말했다.
  • ”그렇지 않고선 어떻게 농촌에서 온 학생이 전교 1등이 될 수가 있어요?”
  • 교장은 유영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머릿속이 윙윙거렸다. 그는 약간 귀찮은 듯 말했다.
  • “유 선생님, 그렇게 호언장담하기 전에 증거부터 대시죠?”
  • 천은서가 고고하게 입을 열었다.
  • “증거는 천가연의 손에 있어요. 바로 그 시험지죠! 그 시험지와 정답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