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게 어떻게 가능해요? 천은서가 일 등일 리가 없잖아요? 게다가 영어가 만점이라고요? 이건 절대 불가능해요!”
천은서의 말을 듣자 교실의 아이들도 잇달아 야유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천가연이 어떻게 1등을 할 수 있어요?”
“저도 안 믿어요, 급제하면 다행인 아이가...”
“분명 커닝했을 거예요!”
“커닝한 사람은 성문 고등학교에 다닐 자격이 없어요!”
반의 아이들이 다 같이 천가연을 향해 깔보는 시선을 던졌고 주위에서 야유가 쏟아져 내렸다.
“가연아...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한선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한선미가 머리를 들어 천가연을 바라봤는데 그녀의 눈빛에서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다들 조용!”
유건우는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소리에 짜증 나서 외쳤다.
“선생님께서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데 무슨 야단이야?”
그러자 학생들은 단번에 조용해졌다. 유건우가 처음으로 반에서 화를 냈다.
멋있어!
반주임은 이런 상황에 직면하니 확실히 좀 난처했다.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천은서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자기 의견을 지지하자 더 확신에 차서 얘기했다.
“선생님, 전 천가연의 영어가 만점을 받을 수 있을 실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전에 영어 시간에도 제가 걔를 대신해서 문제를 풀었어요. 당연히 전 반장으로서 우리 반의 모든 친구를 믿어요. 그러니까 가연이가 꼭 커닝했다고 말할 수 없어요. ... 혹시 이름을 잘못 본 건 아닌가요?”
반주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충분한 증거 없이 천가연이 커닝을 했다고 할 수는 없었고 그는 교사로서의 도덕을 지켜야 했다. 그리하여 최대한 천가연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의도로 의미심장하게 얘기했다.
“얘들아, 농촌의 교육이 꼭 우리 S 시보다 나쁘다고 할 수 없어. 우리 모두가 농촌 출신의 친구에게 평등하게 대했으면 좋겠어.”
“선생님, 저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천가연이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갑자기 한마디 해서 다들 깜짝 놀랐다.
반주임이 그녀를 바라봤다.
“가연아, 무슨 일이야? 너 방금 사무실에서 네 실력으로 받은 점수라고 했잖아?”
천가연은 한참이나 참았다. 그녀는 드디어 입을 열 기회가 생긴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저 국어는 왜 고작 144점이고 수학은 146밖에 안 되죠? 분명 뭐가 잘못된 거예요!”
자신의 성적을 듣고 천가연은 꽤 놀랐다. 수학이 어떻게 146점밖에 안 되지?
그녀가 M 국에서 배운 수학으로 이 정도일 리가 없었다!
반 친구들은 모두 화가 났다. 천가연이 이토록 낯이 두꺼울 줄 누가 알았을까? 커닝하고도 만점을 맞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다니.
반주임도 어이가 없는 듯 손을 마주치며 말했다.
“됐어, 그만해! 그만 싸워. 오후에 시험지를 나눠주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되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천은서에게 성적표를 나눠주게 한 후 다들 순위에 따라 자리를 배치하게 했다.
일등인 천가연은 당연히 제일 먼저 자리를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리를 바꾸지 않고 원래 자리에 앉았다.
한선미는 그런 그녀를 향해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연아, 너 성적이 그렇게 좋은데도 나랑 함께 앉으려는 거야?”
천가연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그녀를 놀렸다.
“너만큼 대단하진 않지. 사실 나 성적 그냥 그래. 이번 시험엔 그냥 운이 좋았어.”
하지만 앉자마자 후회가 되었다. 왜 마지막 둘째 줄을 선택했을까? 충분히 유건우 자리를 빼앗을 수 있었는데...
마지막 줄이야말로 최고의 명당 아닌가? 풍경도 더 전체적으로 보이니까!
‘정말 아쉽네...’
수업은 빠르게 지나갔지만 다들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시험의 영향에 빠져있었는데 우울해하거나 놀라워하거나 기뻐했다. 하지만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천가연에 대한 의심이었다.
영어에서 어떻게 만점이 나오지???
이 사건은 빠르게 소문이 퍼졌다. A반의 영어 선생님 유영은 더더욱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천은서가 응당 일등일 것이라 믿기에 증거를 수집하여 천가연을 학교에서 퇴출하고 천은서가 제자리를 찾도록 만들 결심을 내렸다.
“듣기로 A반에 새로 온 촌닭이 전교 1등을 했다며? 너 천은서 그 굳은 표정 봤어? 정말 웃겨 죽는 줄 알았다니까!”
“아무튼 난 천은서 편이야.”
“걔 무조건 커닝했어!”
전체 학생들은 가십거리에 관해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나 사건의 중심에 있는 천가연은 오히려 낮잠을 쿨쿨 자고 있었다.
“가연아.”
유건우와 한선미는 멍하니 시험지를 보다가 둘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이 시험지는 정말 네가 답한 거야?”
시험지는 이미 내려왔다.
두 사람은 그 시험지 위에 쓰인 예쁜 글씨체를 바라봤다. 그리고 거의 만점에 가까운 작문은 그 짜임새와 생각의 깊이가 거의 작가 수준이었다.
한선미의 통통한 턱이 떨어질 것처럼 크게 떡 벌어졌다.
“와... 가연아, 너 글 진짜 잘 쓴다.”
“응?”
천가연이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관심 없다는 듯 대답했다.
“사실 나 전에 작문 엄청 못 썼어. 거의 0점이었어.”
“...”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시험지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럼 이번엔 어떻게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어?”
천가연이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방금 잠에서 깬 얼굴은 발그레하니 귀여웠다.
“시험 전날 꿈에서 답을 봤어. 우연의 일치야.”
“...”
두 사람은 다시금 말문이 막혔다.
이때 학교 회의실에 적지 않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영어 선생님 유영, 반주임, 교장 선생님과 학생 주임, 그리고 A반의 천은서.
“교장 선생님.”
천은서가 내키지 않는 듯 말했다.
“우리 학교에서 커닝한 사건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죠?”
교장은 단호하게 얘기했다.
“우리 성문 고등학교는 절대로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을 감싸지 않을 겁니다. 발견하게 되는 즉시 퇴학입니다!”
“교장 선생님, 우리 학교 신입생 천가연이 어떤 아이인지 아시잖아요. 이번엔 정말 너무 했어요.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러서 전교 일 등이 되다니. 수치스러운 줄 모르고!”
교장 선생님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반주임을 보더니 물었다.
“천가연의 이 성적은 진짜인가요?”
반주임은 안색이 대뜸 굳어졌다. 그는 천은서가 교장 선생님께까지 일러바칠 줄 몰랐고 그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영어 선생님 유영은 불난 곳에 부채질하듯 얘기했다.
“교장 선생님, 천가연은 제 학생이에요. 걔가 어떤 아이인지는 제가 잘 알아요. 평소 성적으로만 봐도 영어 만점이 나올 수가 없어요. 이건 제대로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교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부정행위는 작은 일이 아니었기에 증거를 위해 천가연의 시험감독 선생님을 불러왔다.
유영과 천은서가 서로 눈을 마주쳤는데 고소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반주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비록 천가연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이 일이 자기 반에서 벌어진다면 역시나 난처했기 때문이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시험감독 선생님이 내려왔고 상황을 파악한 후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 그때 저 학생에 대한 인상이 꽤 깊게 남아있어요. 하지만 부정행위를 저지른 모습은 본 적이 없어요.”
“그럴 리가요?”
유영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교장을 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고선 어떻게 농촌에서 온 학생이 전교 1등이 될 수가 있어요?”
교장은 유영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머릿속이 윙윙거렸다. 그는 약간 귀찮은 듯 말했다.
“유 선생님, 그렇게 호언장담하기 전에 증거부터 대시죠?”
천은서가 고고하게 입을 열었다.
“증거는 천가연의 손에 있어요. 바로 그 시험지죠! 그 시험지와 정답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