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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나쁜 소유욕

질나쁜 소유욕

시온

Last update: 2023-11-08

제1화 내 이름은 반서준이야

  • “6천만 원이면 충분하니까 제발……”
  • 유희는 고개를 낮게 숙인 채 남자 앞에 서서 전전긍긍했다.
  • 어스름한 불빛 속 유희의 주변은 어둠으로 휩싸였다.
  • 크고 훤칠한 실루엣이 그녀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
  • 유희의 턱은 남자의 손아귀에 잡혔고 남자의 매섭고 위압적인 눈빛을 바라보는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유희는 긴장감에 휩싸여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 “저 이 돈 진짜 많이 필요합니다. 6천만 원이 그리 작은 액수가 아니라는 건 알아요.”
  • 남자는 6천만 원이 작은 액수가 아니라는 말이 들리자 얇은 입술 사이로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 유희는 엉겁결에 넓은 품으로 끌려 들어가 안겼다.
  • 샌달우드의 짙은 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 이윽고 정수리 위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 “어떻게 믿어야 하는 거지? 근거 없이 말로만……”
  • 유희는 두려움을 힘껏 눌러가며 대답했다.
  • “해보면 알죠. 만약 안 될 것 같으면 돈을 전부 돌려 드릴게요.”
  • 유희는 목 부분이 썰렁하게 느껴졌다. 찬 기운이 끊임없이 안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결국은 허리춤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더 들어가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 그녀는 얌전히 안겨 움직이지 않는 것을 과감하게 선택했다.
  • 남자친구 이진철의 치료비를 위해서라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 남자의 차가운 손은 유희의 얼굴을 잡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허스키하면서도 동굴 같았다.
  • “직접 검증할 생각은 없어. 더러워지기 싫거든!”
  • 이때 누군가 방문을 밀고 들어왔다.
  • 어두운 방안에 눈부신 불빛이 치고 들어왔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몇몇 남자들이 일정한 보폭으로 걸어 들어왔다.
  • 유희는 놀란 눈으로 암흑 속에 가려진 남자에게 시선을 보냈다. 어스름한 불빛 아래 그는 웃을 듯 말 듯 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완벽한 용모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그녀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입술을 움직였다.
  • “전에 하나라고 약속했는데 이러시면 어떡해요? 저기요, 장사를 할 때 제일 중요한 게 신용을 지키는 건데. 이러면 거래 안 해요!”
  • 남자는 시끄러웠는지 살짝 차가워진 표정으로 손짓을 했다. 계속해서 발버둥을 치던 유희는 검은 옷차림의 몇몇 남자에게 강제적으로 끌려갔다.
  • 수술실 안, 유희는 수술대에 존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묶여 있었다. 차가운 수술실의 공기에 그녀는 냉동고에 버려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 그녀는 차디찬 수술대에 힘없이 몽롱한 상태로 누워있었다. 그녀는 의식만이 잠시 깨어있을 뿐이었다.
  • 공포가 덮친 유희는 숨결이 미약했다.
  • 그녀는 오열하며 얘기했다.
  • “신장이랑 간 중에 어떤 걸 원하는 거야! 난 신장도 안 좋고 간도 안 좋아. 건강검진 때 지방간으로 나왔어.”
  •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두 여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유희는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속으로 도대체 무슨 팔자를 타고났길래 돈 벌기 이렇게 힘들까 생각하고 있었다.
  • 수술실의 자동문이 밖에서부터 열렸고 흰색 가운을 입은 여자가 반서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 “이 분 문제없어요……”
  • “반 대표님.”
  • 목소리를 들은 유희는 발버둥을 치며 일어나려고 했다. 몸을 반쯤 일으키자마자 여자 의사가 다시 그녀를 수술대로 내리눌렀다.
  • 유희는 몸서리를 쳤다. 수술실의 강한 불빛은 그녀로 하여금 남자의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냉엄하고 각이 진 남자의 얼굴은 마치 얼음조각처럼 군더더기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에는 상위자로서의 위압감이 어려 있었다.
  • 너무나도 강한 침략성을 내뿜는 그의 눈빛에 그녀는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파르르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목소리는 상반되게 뼈에 사무칠 정도로 부드러웠다.
  • “준비됐나, 유희 씨?”
  • 유희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고 감정은 극도로 긴장된 상태였다. 근육마저도 뻣뻣해진 상태였다……
  • 유희는 운명을 받아들인 듯 눈을 감았다. 그녀의 뇌리 속에는 온통 사랑하는 예비남편이 초췌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 그녀는 절대 두려워하지 말자고 스스로 세뇌했다.
  • 그녀는 이진철에게 미안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 ……
  • 남자는 수술대에 반쯤 걸터 앉아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 “내 이름은 반서준이야, 기억해 둬!”
  • 유희는 두려움에 머리가 뒤죽박죽이었다. 그녀는 남자의 이름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 그녀는 오늘이 지나고 나면 평생 다시 그를 볼 일이 없길 바랐다!
  • “꼭 여기서 해야 돼요? 병실을 찾아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아님 좀 더 보태주던지……”
  • 유희의 이 말은 거의 이빨 틈 사이로 새어 나오듯 했다.
  • 그녀는 반서준의 팔을 잡고 덜덜 떨고 있었다.
  • “그래……”
  • 반서준의 한껏 낮은 톤의 목소리는 폭풍 전야의 바람 같았다.
  • 그는 여자가 꽤나 재밌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목적을 잊지 않았다.
  • 유희는 눈을 감았다……
  • 한참이 지나고 수술실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반서준의 차가운 눈빛은 수술대에 기절한 채 누워있는 여자를 향하고 있었다.
  • 그의 시야는 수술대 위의 순결에 닿았다.
  • 눈에 띄는 검붉은 색은 마치 새하얀 설원에 피어난 매화꽃처럼 요염하고 매혹적이었다.
  • 어젯밤, 여자는 남자를 위해 이곳에서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