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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방해가 됐는데

  • 유희는 반서준이 주동적으로 그녀를 찾아오길 잠자코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에게 수표에 대해서 증명하라고 할 생각이었다.
  • 또 한 주가 흘렀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 그녀는 이 돈을 반드시 받아내야만 했다. 이진철을 살리기 위해 그녀는 목숨마저 내바칠 뻔했다.
  •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결과에 대해서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돈을 받아 내서 기부를 하는 한이 있어도 그녀는 이 씨 가문의 개 같은 인간들이 날로 먹는 걸 눈뜨고 볼 수 없었다.
  • 유희가 집에 돌아왔을 때 하민이 거실 소파에서 마스크팩을 하고 있었다.
  • 그녀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유희를 쳐다보았다.
  • “혼이 빠져나간 꼴 좀 봐. 아직도 반서준 생각을 하는 거야? 꿈 깨라 그랬잖아.”
  • 유희는 슬리퍼로 바꿔 신은 뒤 가방에서 편의점에서 사온 라면을 꺼냈다.
  • 그녀의 현재 경제 상황으로는 사발면도 먹기 힘들었다. 그녀는 봉지 라면을 살 수밖에 없는 데다가 핫바 하나를 사는 것도 반나절을 고민해야 되는 지경이 되었다.
  • “평소에 반서준을 자주 마주쳐?”
  • 유희는 하민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입에서 뭐라도 알아내려 했다.
  • 하민은 경멸하듯 비웃었다.
  • “회사 청사에 수만 명이 드나드는데 최종 보스를 내가 만나고 싶다고 하면 만날 수 있는 줄 알아?”
  • 유희는 입을 닫았다. 이게 반서준이 얘기했던 돈이 좀 있다고 한 건가?”
  • 회사 직원인 하민도 만날 수 없는 거라면 그녀는 아마 회사 대문도 들어가기 힘들 게 뻔했다.
  • 하민은 생각에 잠긴 유희를 힐끔 쳐다보았다.
  • “반서준을 만나려고 하기 전에 본인 꼴이 어떤지 먼저 보는 게 어때? 집주인이 또 월세 재촉하러 왔어. 월세 못 내면 바로 쫓겨날 거야.”
  • 하민은 듣기 거북하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유희는 그녀와 말다툼을 할 에너지가 없었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그녀는 내일 운을 한 번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 다음날 아침, 유희는 버스로 환승을 두 번 정도 해서야 핵심 CBD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웅장한 반 씨 그룹 건물 청사는 유희로 하여금 제 몸이 개미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 옆을 스치는 사람들 무리는 전부 반듯한 옷차림새였고 여자들은 너무 예쁘고 우아한 아우라를 뽐냈다. 남자들도 전부 엘리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유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곳에는 이렇게나 많은 여자들이 오가고 있는데 반서준은 왜 밖에서 그런 짓을 벌이고 다니는 걸까 싶었다.
  • 이건 둥지 주변의 풀은 먹지 않는 토끼 행세를 하는 게 아닌가?
  • 유희는 차에 휩쓸려 화단 옆으로 자빠지게 되었다. 그녀는 놀란 가슴으로 바닥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멍하니 검은색의 마셰라티를 바라보았다.
  • 기사가 차창을 내리고 욕설을 퍼부었다.
  • “죽으려고 환장했나. 길 좀 똑바로 보고 다녀.”
  • 유희는 팔로 지탱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아파서 이빨 틈 사이로 냉기를 들이마시며 말했다.
  • “분명 그쪽이 운전을 똑바로 안 한 거잖아요. 지금 태도가 왜 그래요.”
  • 그녀는 차 앞을 가로막고 기사가 운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 뒷좌석 차창이 천천히 내려졌고 한다은이 길고 예쁜 눈을 게슴츠레 뜨고 차 앞을 가린 여자를 쳐다보았다.
  • “아저씨, 그냥 가요.”
  • 기사는 엑셀을 밟아버렸고 유희는 빠르게 오른쪽으로 물러섰다.
  • 그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질주해가는 마셰라티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만약 조금이라도 늦게 피했더라면 차가 정말로 그녀의 몸을 깔고 지나갔을 지도 모른다.
  • 한다은은 고개를 돌렸고 차가운 그녀의 눈동자는 야유를 띠고 있었다.
  • “아저씨, 요즘 서준이는 뭐 하고 지내요? 전화를 해도 안 받던데요.”
  • 안영훈은 반서준의 수행 기사였다. 한다은은 오랜 시간 동안 그에게 꽤나 많은 이익을 주는 것으로 반서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일을 맡겼다.
  • 안영훈이 답했다.
  • “도련님 요즘 많이 바빠요.”
  • 한다은이 미소를 지었다.
  • “여자들 데리고 노느라 바빠요?”
  • 안영훈이 답했다.
  • “아직까지는 도련님 옆에 여자가 있는 건 발견 못했습니다. 아가씨가 프랑스에서 돌아오신 뒤로 도련님이 처음 뵙게 되는 거니까 많이 기뻐하실 거 같아요.”
  • 한다은은 다소 차가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반서준이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 “이번엔 우연이라고 하지 못하겠네. 회사까지 찾아온 거야?”
  • 유희의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사람의 피를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목소리였다.
  • 유희는 손으로 다친 팔을 감싼 채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 그녀는 흠칫 놀랐다. 전혀 공을 들이지 않고 얻어낸 것이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그의 잘생긴 얼굴은 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 그의 뒤에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호기심에 찬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 반서준은 그녀의 눈빛을 확인하고 있었다.
  • 마치 그녀가 다른 속내를 품은 걸 꿰뚫어보는 듯했다.
  • 유희는 일부러 침착한 척하며 물었다.
  • “혹시 방해된 건 아니죠?”
  • 반서준은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 “방해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