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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이 여자는 오늘 내가 데리고 간다

  • 룸 안의 사람들은 전부 어안이 벙벙했다. 미친 여자가 감히 반서준을 두고 술 주정을 부리다니.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나 보다 싶었다.
  • 반서준은 그대로 유희의 팔을 잡고 룸에서 나갔다.
  • 유희는 얼큰하게 취한 상태였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똑같은 말을 웅얼거렸다.
  • “사기꾼, 그거 목숨 살릴 돈이었단 말이야.”
  • 반서준은 여자가 형편없게 느껴졌다. 술 주정을 빌미로 공갈을 하다니.
  •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 밤 수술실에서 그녀는 임시로 값을 올려버렸고 6천만 원을 원했지만 그는 60억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런데도 만족을 하지 못하다니!
  • 쉴 새 없이 여기까지 또 찾아와 난리야! 정말 분주한 사람이다.
  • 복도에 있던 CC 언니는 약을 먹은 병아리처럼 축 늘어진 채 반서준에게 들려 나오는 유희를 발견하고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 알아야 할 게 있다면 반서준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 했을 땐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만큼 쉽게 이행이 되었다. 그의 눈에 사람 목숨은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 그녀가 황급히 뛰어갔다.
  • “반 대표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유희는 신입이고 나이도 어려서 철이 없어요.”
  • 반서준은 차가운 눈으로 마담인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얇은 입술을 움직였다.
  • “너랑은 상관없어. 이 여자는 오늘 내가 데리고 간다.”
  • CC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얘는 초이스 할 수 있는 아가씨가 아닙니다 반 대표님. 여기 예쁜 아가씨들 많으니까 원하시면 예쁜 애로 둘 소개해 드릴게요.”
  • 반서준은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지만 숨 막힐 정도의 압박감이 그녀를 엄습했다.
  • “나한테 안 되는 건 없어. 이곳으로 나왔다면 이런 날이 올 걸 예상했어야지.”
  • 유희는 바닥에 자빠져 있었고 속이 뒤집힌 상태였다.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입술에 들러붙어 있는 모습이었고 그녀는 반서준의 다리를 꽉 끌어안은 채 풀어주지 않았다.
  • “사기꾼 자식, 날 그렇게 비참하게 만든 걸로 부족해?”
  • CC 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 “유희 너 미쳤어?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 반서준은 침을 꼴깍 삼켰고 어떤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 그가 CC에게 얘기했다.
  • “이 여자 가방 갖고 와. 오늘 밤엔 내가 데리고 갈 거니까.”
  • 엠파이어의 규칙에서 가방을 가져간다는 것은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 CC는 반서준이 거칠게 유희를 잡아당겨 일으켜 세우는 것을 코앞에서 보게 되었다. 반서준은 유희의 턱을 들고 입가에 희롱을 담은 미소를 머금었다.
  • “시간 줄 테니까 디테일하게 한 번 얘기해 봐. 내가 널 어떻게 해쳤는데?”
  • 유희는 이미 통제불능의 상태였다. 그녀는 사납게 반서준을 노려보며 답했다.
  • “난 손님 따라 외출 안 해. 정 하고 싶다면 나가지 말고 여기서 하는 걸로 하든지.”
  • 번서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 “이번엔 얼마나 줄까? 조건 제시해 봐. 순결한 척하고 지랄이네.”
  • 유희는 반서준의 따가운 눈초리를 마주하며 술 냄새를 풍기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내가 네 걸 좋아한다면 돈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런데 이제 꿈 깨.”
  • CC 언니는 공포에 질려 제자리에 얼어버린 상태였다. 그녀는 더 이상 나서서 설득할 용기조차 없었다. 만약 반서준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면 엠파이어는 아마 무너지게 될지도 모른다.
  • 반서준은 눈동자 깊이 차가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소 귀찮은 기색을 보였다.
  • “내가 통제력이 엄청 좋은 줄 아나 봐?”
  • 유희는 그가 뱉은 말에 자극을 받아 취기가 반 정도 날아가 버렸다.
  • 반서준은 룸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유희는 그의 손아귀에 팔이 집힌 채 아파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 반서준은 손을 떼고 룸 안에 있던 남남여여에게 말했다.
  • “다들 나가.”
  • 그의 한마디 명령에 모든 사람들이 순식간에 자리를 피했다. 일 초라도 감히 더 머무르지 못했다.
  • 이어 반서준은 보디가드 선우에게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문 앞을 지키도록 지시했다.
  • 유희는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래. 정말로 하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 그녀는 방금 전 반서준의 화를 불러일으킨 말들을 뱉은 것을 후회했다. 그는 못할 짓이 없는 사람이었다. 수술실 사건이 있던 그날 밤을 회상하기만 해도 솜털이 거꾸로 솟는 듯했고 얼음조각들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반서준의 시선은 유희의 얼굴에 닿았다. 공포에 질린 그녀의 눈빛과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보아 지금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반서준의 모든 동작에서 위험한 신호가 드러나고 있었고 유희는 그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보게 되었다.
  •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었다. 그녀는 죽는 한이 있어도 지난번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었다.
  • 지난번 그녀는 이미 뼛속까지 더러워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 반서준은 그녀를 테이블로 밀어붙였고 유희의 등은 차디찬 대리석 판에 닿게 되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술병을 잡았고 머리 위로 내리치는 기술을 시전해 반서준을 상대로 다시금 재현했다.
  • 그러나 그녀는 반서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반서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고 술병은 그대로 반서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 유희는 동공 지진이 일었다. 그녀는 반서준이 술병을 든 모습에 비명을 질렀다.
  • 거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순간 그녀는 반서준이 그녀의 머리를 내리치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린 뒤에도 술병은 그녀의 머리를 내려치지 않았다. 그리고 술병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몸 옆에 놓였다. 그녀를 누르고 있던 무게도 갑자기 가벼워졌다.
  • “성깔이 좀 있네. 툭하면 목숨 걸고 덤벼. 걸 수 있는 목숨이 몇 개라도 돼?”
  • 유희는 놀란 가슴을 달랜 뒤 눈을 치켜뜨며 반서준을 직시했다.
  • “돈이 필요하면 앞으로 날 따르는 게 어때? 어쨌거나 난 유희 씨 첫 남자라고 할 수 있잖아.”
  • 반서준은 방금 전 사납고 난폭하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는 얼굴에 옅은 부드러움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입으로는 저런 말을 담고 있었다.
  •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잔인하고 싸늘한 냉혈한 사람이었다!
  • 유희의 낯빛은 무서울 만큼 창백해져 있었다.
  • “반서준 씨의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저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당신과는 눈곱만큼의 관계도 맺고 싶지 않네요.”
  • 그녀는 더 이상 돈을 바랄 수 없었다. 그저 목숨을 잃게 될까 봐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 반서준은 천천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미소는 가벼우면서도 풍자적이었다.
  • “좋아, 강요는 안 할게.”
  • 유희는 반서준이 떠난 뒤에야 룸에서 나올 용기가 생겼다. 그녀가 나오자 아직까지도 놀란 가슴을 미처 가라앉히지 못한 CC 언니가 흐느끼며 얘기했다.
  • “아이고 선생님, 너 하마터면 엠파이어 망하게 만들 뻔했어. 너 반서준이 누군지 알기나 해?”
  • 유희는 시든 꽃처럼 생기 없이 답했다.
  • “누구든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CC 언니 오늘 인센티브 입금해 주실래요? 내일 병원비 내야 돼서요.”
  • CC 언니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멍청이 유희를 쳐다보며 답했다.
  • “정말 이해가 안 되네. 아직 결혼을 한 것도 아닌데 어쩜 그렇게 남자친구를 살리겠다고 목숨을 내놔. 나중에 완치되고 나서 차이기라도 해봐. 어쩌나 볼 거야.”
  • 반서준에게 시달린 데다가 한껏 놀란 유희는 이미 깊이 초췌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응했다.
  • “그럴 리가. 저희 중학교 때부터 만났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을 만났는데 감정이 그리 쉽게 사라지겠어요? 남자친구가 퇴원하면 결혼하자고 얘기도 했어요.”
  • 이때 유희의 핸드폰이 울렸고 제일 친한 친구 진혜빈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녀는 CC 언니를 향해 핸드폰을 들며 전화받고 오겠다고 얘기했다.
  • 전화가 통하자마자 진혜빈은 거의 스피커 모드로 느껴질 정도로 흥분한 상태로 얘기했다.
  • “유희야, 내가 이진철이 여자랑 에르메스에서 가방 사는 걸 봤어! 언제부터 돈이 그렇게 많았던 거야?”
  • 유희가 답했다.
  • “네가 잘못 본 거 아니야? 아직 입원 중인 사람이 뭔 가방을 사러 가.”
  • 진혜빈은 확신하며 답했다.
  • “내가 잘못 봤을 리가 없어. 이진철이 어떻게 생겼는지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우터 안에 입원 복도 입고 있더라. 그런데 걔가 아니면 누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