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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그 사람들은 널 환영하지 않아

  • 이진철은 낯선 남자가 검은색의 마이바흐에서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그의 아우디는 순간 빛을 잃어버렸다.
  • 남자의 실루엣은 크고 건장했고 그의 얼굴은 마치 천신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매서운 눈빛을 한 그가 내뿜는 아우라는 숨 막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이진철은 그냥 우연히 지나가는 행인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남자는 유희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짐도 다 정리했겠다 나 따라와.”
  • 유희는 경악한 얼굴로 반서준을 쳐다보았다. 이 사람이 왜 여길 온 거지?
  • 이진철이 버럭 화를 냈다.
  • “이 여자는 내 여자친구인데 왜 당신을 따라가? 우린 7년을 만난 사이야.”
  • 반서준은 차가운 눈으로 이진철을 흘겨보았다. 그는 이진철을 아예 눈에 넣지도 않았다.
  • 앞뒤로 늑대와 호랑이가 그녀를 노리는 상황에서 유희는 반서준을 따라가면 그가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었다.
  • 그녀는 명치가 불타오르는 느낌이었다.
  • 이진철에게서 벗어난 그녀는 아예 반서준의 팔짱을 꼈고 분노를 분출하듯 힘을 주었다.
  • 유희는 차갑고 독한 표정으로 이진철을 쳐다보았다.
  • “우린 이제 헤어진 거야. 앞으로 돈을 갚으려고 찾아오는 것 외엔 내 앞에 나타나지도 마. 그 돈을 갚는 걸 물릴 수 없을 거야. 난 반드시 네가 토해내는 걸 똑똑히 지켜볼 거야.”
  • 이진철은 유희가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상대는 마이바흐를 끌고 다녔다.
  • 이런 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몸값이 어마어마할 게 분명했다.
  • 유희의 레벨로 어떻게 저런 사람과 알게 된 걸까?
  • 이진철은 어전히 유희의 캐리어를 꽉 잡고 놓지 않는 상태였다.
  • “유희 너 일부러 나 화나게 하려고 그러는 거 맞지? 나 몸도 안 좋은데 그러면 안 돼.”
  • 이진철은 명치를 틀어쥐며 말했다.
  • 유희는 반서준에게서 팔짱을 풀었다.
  • 반서준은 그녀가 이진철에게로 넘어갈 것 같은 분위기에 뼈를 에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 “계속 그렇게 천하게 굴래?”
  • 반서준의 말은 마치 칼날처럼 유희를 가르고 있었다.
  • 그녀는 반서준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 “내가 그 정도는 아니거든.”
  • 이진철은 유희가 마음이 약해진 줄 알고 기쁨을 드러냈다.
  • 그녀는 캐리어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 “캐리어 이리 줘.”
  • 유희는 캐리어를 가져오려는 것이었다. 이진철은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고 반서준은 독수리같이 매서운 눈으로 이진철을 응시하고 있었다.
  • 이진철은 저도 모르게 손을 풀었다.
  • 남자의 눈빛은 그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 반서준은 트렁크를 열었고 유희는 낑낑거리며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었다.
  • 전 과정 중에 반서준은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 반서준을 따라 차에 탄 유희는 이번에 눈치껏 바로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리고 빠르게 안전벨트를 끼웠다.
  • 이진철은 검은색의 마이바흐가 떠나는 것을 보며 길가의 돌계단을 발로 세게 찼다. 그리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중얼거렸다.
  • “망할 년, 내가 몸이 안 좋을 때를 틈타서 환승을 한 거야? 두고 봐.”
  • 차는 단지를 벗어났고 유희는 목적지를 얘기했다.
  • “천산대로 188번지로 가줘요. 만약 가는 길 아닌 거면 그냥 내려줘도 돼요.”
  • “삼촌 집에서 아마 널 환영하지 않을 건데.”
  • 익숙한 도로명이 들리자 반서준은 유희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 반서준은 한 번만 봐도 잊지 못할 도로명이었다. 오늘 그는 그 주소를 더 이상 상세할 수는 없는 유희의 자료에서 본 적이 있었다.
  • 천산대로는 유희가 외할머니와 지냈던 낡은 주택이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삼촌이 가족들과 살고 있었다.
  • 유희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깊은 밤에 나타난 악마를 응시했다. 그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 “당신이 어떻게 우리 삼촌 집을 알아요? 반서준 당신 내 뒷조사한 거야?”
  • 반서준이 답했다.
  • “우리 회사 밑까지 찾아왔는데 혹시 딴 맘이라도 품은 건지 알아야 될 거 아니야. 조사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 유희는 손으로 미간을 짓눌렀다. 그녀는 미친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 “한밤중에 우리 집 아래에 나타난 당신도 딴 맘을 품었는지 그럼 의심해야 되겠네?”
  • 반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계집애가 입은 살아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