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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내가 외간 남자라고?

  • 유희는 도망치듯 차에서 뛰어내렸다.
  • 반서준은 리얼 레더로 된 시트에 엉덩이 모양의 페인트가 남은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얇은 입술에 곡선을 그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 유희는 반서준이 차에서 따라내리는 것을 보며 그를 제지했다.
  • “룸메이트랑 같이 사는 집이에요. 낯선 사람이 집에 오는 걸 안 좋아하는 애에요.”
  • 유희는 룸메이트 하민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
  • 하민은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비록 평범한 사무직이었지만 그럼에도 늘 자부심을 내뿜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 유희는 하민이 그녀를 얕잡아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매번 그녀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늘 말끝에 경멸을 달곤 했다.
  • 그녀가 먹고 쓰는 것은 전부 하이엔드 뷰티 브랜드였고 두 사람은 같은 화장실을 쓰고 있었다.
  • 하민이 쓰는 스킨케어 제품은 SKII, 설화수나 샤넬……
  • 그녀가 쓰는 에뛰드 하우스가 싼 티 난다고 늘 무시하곤 했다.
  • “그 사람이 좋아하든 말든 나랑 뭔 상관이야?”
  • 반서준은 유희를 건너뛰고 앞장서서 걸었다.
  • 유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반서준의 말은 늘 의심할 여지없어지는 패기가 넘쳤다.
  • 그녀는 열쇠를 돌려 문을 연 뒤 반서준에게 경고를 날렸다.
  • “물만 마시고 가야 돼요.”
  • 그녀는 하민이 또 지랄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매번 그녀가 이진철을 집에 데리고 갈 때마다 하민은 문을 박차거나 뚱땅거리며 물건을 내려놓곤 했다.
  • 집안은 매우 난잡했고 여기저기 소녀감성을 풍기고 있었다. 현관 입구의 매트마저도 kitty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 “신발 안 갈아 신어도 돼요. 집에 남자 슬리퍼 없어.”
  • 유희는 한껏 기가 빨린 얼굴이었다. 오늘 그녀는 기분이 엉망진창이었다. 이진철이 아프다고 했을 때보다도 더 괴로웠다.
  • 그녀는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었고 반서준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하민은 유희가 남자와 거실에서 대화 나누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 그녀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 “유희 너 정신 나갔어? 또 외간 남자를 데리고 온 거야?”
  • 반서준은 눈빛이 어두워졌고 유희를 힐끗 쳐다보았다.
  • 유희는 나지막한 소리로 얘기했다.
  • “원래 저래요. 물만 마시고 얼른 가요. 당신한테 대접할 좋은 차도 없으니까.”
  •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한참 동안 뒤졌다. 그리고 보름이나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주스 한 병을 찾아냈다.
  • 유희는 주스를 반서준에게 던져주고 침실로 옷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 유희가 들어가자마자 하민은 버럭 하며 침실에서 걸어 나왔다.
  •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외간 남자 데리고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같이 살기 싫으면 꺼지든가.”
  • 검은 양복, 흰색 셔츠, 살짝 풀려있는 소매, 긴 다리와 신발 사이에 드러난 발목은 새하얗고 섹시했다.
  • 여자의 혼을 충분히 홀릴만한 얼굴.
  • 눈앞의 남자는 반서준이었다.
  • 하민은 제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최종 보스가 그녀의 집 거실에 나타난 것이었다.
  • 하민은 입을 틀어막은 채 30초 동안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리고 반서준이 다소 차가운 눈으로 그녀에게 시선을 보냈다.
  • “내가 외간 남자라고?”
  • 하민은 너무 무서워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회사의 모든 여자들이 대표님과 가까운 거리에서 접촉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었다.
  •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실현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 “반 대표님, 대표님이 왜 여기 계신 거예요? 절 찾으러 오신 거예요?’
  • 하민의 머릿속에는 이미 반서준이 회사 청사를 이용하는 수만 명의 사람들 속에서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 반서준은 계속해서 어두운 눈빛으로 김칫국을 마셔대는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 “그럴 리가.”
  • 이 집안에는 총 두 명의 여자가 사록 있었다. 그렇다면 유희와 반서준? 하민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럴 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 유희의 거지꼴을 마음에 들어 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병을 달고 사는 그딴 남자나 그녀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하민은 감히 질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반서준은 밋밋하고 냉랭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 반서준은 하민이 나온 방을 가리켰다.
  • “시간도 늦었는데 들어가서 쉬어야지.”
  • 하민은 흠칫 놀랐다.
  • “반 대표님, 저 안 졸려요. 차 마실래요? 제가 타 드릴게요.”
  • 반서준은 짜증스럽게 실눈을 떴다. 거실의 분위기는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 “내가 들어가라고 했을 텐데? 내 말 못 알아듣나?”
  • 반서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하민은 일 초도 더 남아있을 용기가 없었다. 그녀는 방에 숨어 문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반서준은 유희가 한참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자 다소 인내심을 잃어가는 상태였다.
  • 유희는 온몸에 페인트가 묻어있었지만 반서준이 와있었기에 샤워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옷만 갈아입을 수밖에 없었다,
  • 그녀는 버클을 풀고 속옷을 밖으로 꺼내고 있었고 반쯤 잡아당겼을 때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방문을 열었다.
  • 반서준은 여전히 문을 여는 자세를 유지하며 놀란 눈으로 방안의 장면을 보고 있었다.
  • 비록 유희의 몸매를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눈앞에 보인 그녀의 자세는 그에게 있어 꽤나 흥미로운 자세였다.
  • 유희는 요상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당기는 것도 이상하고 다시 집어넣는 것도 이상했다.
  • 제일 쪽팔렸던 일은 그녀가 오늘 딸기 무늬가 잔뜩 찍혀 있는 유치한 속옷을 입었다는 사실이었다.
  • 반서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다. 그는 유희가 침착한 척하며 속옷을 빼서 베개 밑으로 쑤셔 넣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 반서준은 침실 문을 닫아버렸고 유희는 뒤로 숨었지만 결국은 쉽게 품에 안겨버렸다.
  • 유희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고 팔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했지만 상대방은 한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 불을 켜지 않은 방 안은 불빛이 어스름했다. 침대 머리에 놓인 사이드 테이블 위에 있던 핸드폰은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끊임없이 진동음을 냈다.
  • 반서준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는 핸드폰에 시선을 보냈다.
  • 사랑하는 남편이라는 여섯 글자가 화면에 튕겨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