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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뒷공간이 시전하기엔 더 좋다

  • 이 가의 사람들은 전부 유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 그들 인상 속에서 거지꼴을 한 유희는 돈 많은 사람과 친분이 있을 사람으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 유희는 반서준이 무슨 짓을 벌이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유안영은 극에 달하는 불쾌함을 느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 “반서준이 누구야? 왜 너한테 술을 사는데.”
  • 유희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웃어 보였다.
  • “누군 친구 없는 줄 아나? 뭐 문제 있어? 내가 네 질문에 답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 이진철은 유희의 손목을 잡고 으르렁거렸다.
  • “도대체 무슨 사람들과 아는 사이인 거야. 난 네 남자친구인데 왜 아무것도 몰라!”
  • 유희는 이진철의 손을 뿌리쳤다.
  • “네가 언제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은 적이 있기나 해? 뻔뻔하게 질문이나 하고 있어.”
  • “그건 다른 거야!”
  • 이진철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 유희는 이미 이진철에 너무나도 실망한 상태였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 당장 헤어지자고 할 용기도 없었다.
  • 그녀는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 유희는 가방을 들고 일어서며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얘기했다.
  • “다들 즐겁게 마시고 드세요. 전 눈엣가시처럼 여기 그만 앉아있을게요. 편하게들 즐겨요.”
  • 유희가 떠나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그녀를 잡는 사람이 없었다.
  • 이진철이 말했다.
  • “저녁에 다시 전화할게”
  • 유희는 “음”이라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녀는 보기 좋게 기세를 유지하려 했다.
  • 그러다 룸에서 나왔을 때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 유희는 바닥에 쪼크리고 앉아 오열했다.
  • 진혜빈의 말이 맞았다. 남자가 정직하려면 벽에 걸려있는 수밖에 없다.
  • 그녀는 이진철을 위해 수많은 희생을 해왔다.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 그런데 그는 그녀의 여동생을 데리고 와서 온 가족들 면전에서 그녀에게 모욕감을 안겨주고 싫증을 내고 있었다.
  • 유안영은 매번 그녀가 꿈에도 그리던 것을 너무나도 쉽게 손에 넣었다.
  • 유안영은 오늘 그녀를 너덜너덜해진 걸레를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 방금 전의 모든 상황은 마치 칼이 그녀의 가슴을 가르듯 아프고 괴로웠다.
  • “볼 때마다 울고 있네. 유희 씨 감정이 참 풍부한 사람이야!”
  • 낮은 톤의 남자 목소리가 정시리 위로부터 들려왔다.
  • 유희는 그의 목소리를 듣더니 겁에 질린 모습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반서준인 것을 확인하고 근육이 바짝 당겨졌다.
  • 유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방금 전 술도 그쪽이 자의로 보낸 거잖아요. 나는 줄 돈 없어.”
  • 반서준의 얇은 입술은 옅은 미소를 그렸다.
  • “줄 돈 없으면 하룻밤 자는 걸로 대신해도 되는데.”
  • 유희는 반서준의 말을 듣자 왠지 모를 공황이 밀려왔다.
  • 그녀는 마음을 조이다 무의식적으로 더 큰소리로 울게 되었다.
  • 냉랭한 반서준에게 여자의 눈물은 그 어떤 흔들림도 가져다줄 수 없었다.
  • “반서준 씨……”
  • 룸에서 걸어 나오던 유안영은 제 눈을 믿을 수 없었다.
  • 재산이 어마어마한 비즈니스계의 거물 반서준이었다.
  • 유안영은 파티에서 반서준을 한 번 밖에 본 적이 없었지만 반서준은 그녀의 인상에 깊이 박히게 되었다.
  • 반서준은 어딜 가든 순식간에 주위의 모든 것들을 무색하게 만들어 본인을 초점으로 만들 수 있었다.
  • 그녀의 아버지는 반서준과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족히 3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고 그렇게까지 하고 나서야 그날의 비즈니스 파티에 참가할 수 있었다.
  • 파티에서 반서준은 그녀의 아버지에 거들떠보지도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앞뒤 더해도 세마디도 채 되지 않는 대화였다.
  • 그런 반서준이 유희와 같은 프레임 속에 나타났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다.
  • “반서준 씨, 저 기억하시나요? 얼마 전 파티……”
  • 반서준의 표정에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유안영의 말을 끊어버리며 입을 열였다.
  • “기억 안 나요!”
  • 유희는 유안영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 그녀는 주먹을 쥐고 애써 마음의 파동을 억누르며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반서준 옆으로 걸어갔다.
  •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데 혹시 데려다줄 수 있어요?”
  • 유희의 팔은 자연스럽게 반서준에 팔짱을 끼고 있었다.
  • 유희는 겉으로 반서준과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속으로는 정상에 달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 반서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여자가 뭐 하자는 거지?
  • 처음에는 몸을 팔고 두 번째 만남에서는 엠파이에의 순결한 여자 행세를 하더니 지금은 또 갑자기 주동적으로 들러붙고 있네.
  • 유안영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하며 유희를 가리키고 있었다.
  • “언니 반서준 씨랑 아는 사이야?”
  • 유희는 고개를 들어 반서준을 쳐다보았다. 상대는 어두운 표정이었고 그다지 이 상황을 원치 않는 듯한 눈치였다.
  • 그녀는 무리하게 꼈던 팔짱을 풀고 유안영의 면전에서 반서준의 손을 잡았다.
  • “뭐 꽤 친한……”
  • 반서준은 이제야 유희의 목적이 무엇인지 눈치채게 되었다.
  • 그는 냉담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 “차 빼 올게.”
  • 유희는 동아줄을 잡듯 반서준과 함께 자리를 떴다.
  • 가기 전 울화가 치밀어 가지처럼 보라색이 되어버린 채 울분을 토해낼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유안영의 모습을 본 그녀는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 그녀는 간당간당하게 남은 그녀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유희는 곧바로 반서준의 손을 놓았다.
  • 그녀는 반서준에게 고맙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 있으니까 데려다줄 필요 없어요.”
  • 반서준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 “이용하고 나서 바로 버리는 건가?”
  • 그는 다소 경멸하는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 반서준은 팔을 뻗어 그녀의 갈 길을 막았다.
  • 유희는 눈을 감았다. 속으로 지옥으로 떨어지면 이 얼굴을 볼일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는 정말로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 “6억이나 줬는데 버스를 타? 돈 벌써 다 쓴 거야?”
  • 유희는 반서준의 떳떳함에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 그녀는 그 수표가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 “차는 어딨어요?”
  • 유희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다. 오늘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끝을 봐야겠다 싶었다.
  • 그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누가 그녀를 속이는 것인지 알아내야 했다.
  • 유희는 반서준의 뒤를 따라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 주차장 안 머지않은 곳에 젊은 남녀가 기둥에 기대어 키스를 하고 있었다.
  • 두 사람은 옆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뜨거운 키스를 퍼붓고 있었다. 거의 옷을 벗어던지고 주차장에서 사랑을 나누기 직전이었다.
  • 여자의 옷은 반쯤 벗겨진 상태였고 그로 인해 새하얀 속살이 겉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 유희와 반서준은 동시에 생중계되는 눈앞의 장면을 보게 되었다.
  • 유희는 민망함에 귀 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 그날 밤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녀와 반서준도 키스를 나눴고 심지어 눈앞의 남녀보다 더 자극적인 경지였다.
  • 그날 밤 그녀는 반서준의 손에 죽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남자가 물고 뜯고 난리를 부린 탓에 개과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 “하고 싶어?”
  • 남자의 목소리는 섹시하고 동굴 같았다.
  • 유희는 냉담한 그의 모습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있었다.
  • 이 남자는 양복을 입은 짐승이었다.
  • “변태!”
  • 유희가 버럭 화를 냈다.
  • 반서준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비록 눈가까지 웃음이 번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냉담함은 물러가고 부드러움이 대신한 미소였다.
  • 유희는 반서준의 검은색 마이바흐에 올라탔다.
  • 그녀는 조수석에 앉고 싶지 않아 뒷좌석에 앉았다.
  • 반서준은 비어있는 조수석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 “앞에 타.”
  • 유희는 그를 한껏 경계하며 거절했다.
  • “아니에요. 전 뒷좌석이 좋아요.”
  • 반서준은 백미러로 유희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 “넌 뒷좌석에 앉는 걸 좋아하고 난 뒷좌석에서 하는 걸 좋아해. 뒷좌석에 공간이 넓어서 움직이기 더 편하거든. 오든 말든 맘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