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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배은망덕한 일가족

  • 유희는 귀신이라도 본 듯 꽁무니를 뺐다.
  • 반서준의 시야 범위를 벗어난 것을 확신한 뒤에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룸 입구에서 차가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엑스트라나 하는 주제에 진짜 무슨 톱스타 행세를 해? 선글라스까지 끼고 지랄이야.”
  • 유희는 목소리를 듣고 돌아섰다. 그리고 이복동생 유안영을 마주하게 되었다.
  • 유안영의 입술은 곡선을 그렸다.
  • “언니, 오랜만이야. 여전히 거지같이 입고 다니네.”
  • 유희는 웃음이 지어지지 않았다.
  • “평생 안 보는 게 제일 좋지.”
  • 유안영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 “그건 힘들 것 같은데. 진철 씨 오늘 식사하러 오라고 초대했거든. 앞으로 만날 기회가 그리 적지 않을 거야.”
  • 유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진철이랑 유안영이 어떻게 알지?
  • 그녀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 양정순과 이진철이 나란히 걸어왔고 유안영을 본 양정순의 웃음꽃은 더할 나위 없이 활짝 피어있었다.
  • 유희는 그런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유안영은 두 사람을 보자 미소마저 나긋나긋해졌고 목소리도 유난히 나른해졌다.
  • “진철 씨, 방금 언니랑 대화를 했는데 내가 온 게 반갑지 않나 봐. 나 들어가 봐야 되는 거 아니야? 혹시 방해된 건 아니고?”
  • 유안영을 바라보는 이진철의 눈에는 마치 꿀이 발린 것 같았다.
  • “그럴 리가. 오늘 이 식사 자리는 안영 씨랑 우리 가족들 서로 소개해 주려고 만든 건데. 다들 좋아할 거야……”
  • 유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질문했다.
  • “이진철,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해? 두 사람 언제부터 이렇게 친했던 거야? 나는 왜 모르고 있었던 건데.”
  • 이진철은 유 가의 사람은 그녀가 기피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제일 언급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었다.
  • 그는 덤덤하게 설명했다.
  • “네 동생이면 내 동생이나 다름없는 거지. 무슨 문제라도 있어? 오늘 친척들 다 와있으니까 유희 너 소란 피우지 마.”
  • 유희는 분노하며 이진철의 이름을 외쳤다.
  • 이진철은 짜증 섞인 눈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 “일단 밥부터 먹자. 나 몸도 안 좋은데 만약 화병이라도 생기면 결국 네가 손해인 거야.”
  • 이진철은 룸 문을 밀고 사람들을 들여보냈다.
  • 뒤에 있던 유안영은 불쑥 보일 듯 말 듯 한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
  • 사람들이 전부 들어간 뒤 그녀는 유희의 귓가에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
  • “미안해, 내가 또 네 물건을 뺏었네! 유희야, 너 진짜 사는 게 너무 비참하다 그치? 평생 내 그림자 밑에서 살고 있잖아. 네 남자친구한테는 관심 없어. 그냥 갖고 노는 거지.”
  • 유희는 울화가 치밀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분노에 찬 눈으로 유안영을 노려보았다.
  • 그녀는 머리가 새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유안영은 입을 삐죽거렸다.
  • “쓰레기를 애지중지하다니. 네 팔자가 그렇지 뭐. 네 남자친구가 내 앞에서 쩔쩔 매는 거 봤어? 내가 다 난감하다 야.”
  • “너……”
  • 유희는 울화가 치밀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 룸으로 들어간 뒤 유안영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 가의 사람들로 둘러싸여 정중앙에 앉게 되었다.
  • 그들은 유안영이 갑부 유천웅이 애지중지하는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유안영은 얌전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이 가의 사람들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 유희가 입구에 서있는데도 아무도 그녀에게 앉으라고 하지조차 않았다.
  • “언니, 왜 앉지도 않고 그러고 있어?”
  • 유안영이 불쑥 유희에게 손짓을 하며 옆자리를 가리켰다.
  • 이진철은 짜증 섞인 얼굴로 유희를 쳐다보았다.
  •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 이렇게 고급스러운 호텔에서 처음 식사하는 걸 거야. 들어오기 부끄러운가 보지.”
  • 유희는 이진철의 몰골을 보며 아직까지도 현실을 믿지 못했다.
  • 그녀는 애써 부서진 멘탈을 부여잡았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초라하게 울부짖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유안영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안영 씨 정말 예쁘게 생겼네.”
  • 양정순은 유안영을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 속으로 재벌집 아가씨답구나 싶었다.
  • 유희 좀 봐봐. 생긴 것만 봐도 재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진철이가 아프지, 다 쟤 탓인 거야.
  • 이 가의 친척들도 당연히 유안영을 열정적으로 맞이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아부하고 있었다.
  • 그들은 아예 유희의 존재를 잊어버렸고 마치 그녀는 이 일에서 벗어난 남이 되어버린 듯했다.
  • 이진철의 여동생은 유안영의 팔찌를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 “언니, 팔찌 엄청 예쁘네요. 엄청 비싼 거죠?”
  • 유안영은 팔찌를 풀어서 통 크게 이진철 여동생의 손목에 끼워주었다.
  • 그의 여동생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동시에 비아냥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유희 씨, 손목에 머리끈 거의 끊어지기 직전이네. 새 거 좀 사요.”
  • 유희는 겨우 표정을 감추고 그녀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 “그럴 여윳돈이 어딨어. 다 너희 오빠 병 치료하는데 들어갔어.”
  • 유희의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커다란 룸 안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 이진철의 얼굴은 후라이팬 바닥처럼 검게 변했다.
  • 양정순이 아들 대신 나섰다.
  • “머 속상하기라도 한 거야? 네 신분으로 우리 이 가가 아니면 누가 받아주겠어? 우리 아들은 네가 불쌍해서……우리가 너한테 돈 내놓으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다 네가 원해서 한 거잖아.”
  • 유안영은 대견해하는 눈빛으로 유희를 쳐다보며 간드러지게 웃었다.
  • 유희는 마음이 아팠다. 상처를 주는 말들이 그녀를 아프게 찔렀다.
  • 이 집 사람들은 가루를 다 빻고 나면 당나귀를 죽이는 사람들이다.
  •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저 눈가가 촉촉해졌을 뿐이었다.
  • 그녀는 감정을 가다듬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 “맞아요. 전 출신이 엉망이라 외롭고 쓸쓸해요. 그래서 이렇게 당신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거죠.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되려 저를 물어버리네요.”
  • 이진철은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유희에게 완전히 짓밟힌 듯했다.
  • 그녀는 시시각각 그에게 자신이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을 귀띔해 주고 있는 듯했다.
  • 이진철은 썩소를 지었다.
  • “유희야, 기어코 식욕을 다 떨궈야 성에 차는 거야? 밴댕이소갈딱지 같이 구는 거 정말 구역질 나.”
  • “맞아, 유희야 너 어떻게 그러니. 진철이 수술비를 네가 낸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뻔뻔하게 그런 말을 해.”
  • “진철이가 그만하면 잘해준 거지. 어쩜 만족할 줄을 몰라.”
  •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비교는 금물이라더니. 안영 씨 좀 봐봐. 자매가 왜 이렇게 딴판이야?”
  • 이 가의 친척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보태며 유희를 비난했다.
  • 유희는 상을 엎어버리고 싶었으나 상이 너무 커서 힘에 부쳤다.
  • 그녀는 이진철의 뺨을 때리려 손을 들었으나 찰나의 순간 이진철이 먼저 그녀에게 술을 뿌렸다.
  • “정신 차려, 그만 좀 갈구고.”
  • 유안영은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구경했다. 그러다 흥미가 식어버린 듯했다.
  • 그녀의 남자친구를 뺏어서 갖고 노는 일은 전혀 도전하는 재미가 없었다.
  • 종업원이 밖에서부터 룸 문을 밀고 들어왔다. 젊은 종업원은 손에 트레이를 받쳐 들고 있었다.
  • 이진철은 트레이에 놓인 비싼 술을 보더니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 “이 술은 저희가 시킨 거 아닌데요.”
  • 존향주, 이진철은 본 적이 있었다. 한 병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술이었으니 그의 주제에 맞는 것이 될 수 없었다.
  • 종업원은 깍듯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 “안녕하세요 손님. 이 술은 반서준 고객님께서 유희 고객님에게 공짜로 드리는 술입니다.”
  • 유희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반서준?
  • 종업원은 술을 내려놓으며 얘기했다.
  • “반서준 고객님께서 이미 결제하셨습니다. 유희 고객님, 맛있게 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