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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서프라이즈”

  • 소윤천은 꾸깃꾸깃해진 서류에 사인을 하고 볼펜을 내려놓은 후 냉정하게 외투를 챙겨 떠났는데 그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유이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그녀의 어머니 품에 안겨 통곡하였다. 그녀가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혼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윤천의 한마디에 아기를 지워야 할 수도 있기에 유이는 소윤천을 자극해 이혼하기 위해 성동남과 육모와 함께 지금 이 상황을 연기한 거였다.
  • 하지만 소윤천이 이혼서류에 사인을 하는 순간 유이는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소윤천은 어떻게 유이의 집에서 나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는 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이 보이자 가까이 다가가 돈을 쥐여주며 말했다.
  • “당신의 담배와 라이터를 저한테 파시죠.”
  • 상대방은 소윤천이 만 원을 내밀며 말하자 얼른 담뱃갑과 라이터를 소윤천에게 건넸다.
  • 소윤천은 그 자리에서 바로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피기 시작했다. 그는 평소 담배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고 사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개비씩 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너무 공허하여 뭐라도 대신 메꿔야 했고 그걸 만족할 수 있는 게 담배였다.
  • 소윤천은 담배를 피우다가 손가락에 있는 금반지를 보고는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그는 싱가포르로 출장 갔을 때 길옆의 주얼리 매장에서 이 반지를 보고 유이가 결혼식 때 사줬던 오백만 원짜리 다이아반지를 계속 끼고 한 번도 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유이에게 보상도 해줄 겸 소윤천은 가게로 들어가 매니저를 통해 커플 반지 한 쌍을 주문 제작하였고 다음날 받았다. 한 쌍의 백금 반지 중에서 그는 자신의 것은 미리 손가락에 끼고 유이의 것은 출장 중 잃어버릴까 봐 먼저 한국으로 택배를 보내두었다.
  • 원래는 한국으로 돌아오면 유이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줄 생각이었는데 선물도 하기 전에 유이의 손에 끼워져 있던 다이아 반지가 되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고 더욱 큰 ‘서프라이즈’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 몇 년간 소윤천은 일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는 비록 등 떠밀려 유이와 결혼했지만 그녀를 푸대접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 아까 유이의 어머니 집에서 유이가 담담하게 한 말들을 떠올린 소윤천은 왠지 모르게 반지를 보면 볼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반지를 빼서 반지 케이스와 함께 인공 호수에 던져버렸다. 그러면서 이혼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자신은 여전히 소윤천이라고 생각하였다.
  • 식습관이 불규칙적이었던 유이는 뱃속의 아기를 위해 음식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엽산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술 담배도 전혀 하지 않았으며 하이힐도 굽이 낮은 신발로 바꾸고 야근을 하더라도 너무 늦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 시간이 흐르면서 유이의 배는 점점 불러왔고 전에 입었던 정장들도 몸에 맞지 않아 매일 펑퍼짐하고 편한 옷만 입었다.
  • 유이는 옷 위로 점점 불러오는 배를 만지면서 고민에 빠졌다. 3개월째 들어서면 펑퍼짐한 옷으로도 가릴 수 없을 것이고 그때는 회사 사람들도 다 알게 될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사장은 그녀에게 강도 높은 일은 맡기지 않을 것이고 출산 후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자리는 다른 사람이 대체할 것이었다. 지금은 월급이 몇 백만 원은 되니 각종 대출도 갚을 수 있는데 만약 직장을 잃게 되면 그녀가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는 장난이 아니었다.
  • “유 팀장님.”
  • 동료가 걸어오자 유이는 다급히 손을 내려놓고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다.
  • “무슨 일이죠?”
  • “계 사장님께서 열시까지 회의실로 모이시라고 합니다.”
  • 동료는 서류를 유이의 책상에 올려놓으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소곤거렸다.
  • “계 사장님께서 용등 그룹 사람이 방문 온다고 아래층에 있는 레스토랑 전체를 빌렸대요.”
  • 용등 그룹이란 말을 들은 유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마 그녀가 소윤천과 이혼한 후 한 달 만에 보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