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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비서

  • 소윤천은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렸고 여윈 팔을 드러냈다.
  • “오늘 저녁은 내가 할게.”
  • “앞치마 해요.”
  • 유이는 까치발을 하고 선반에 걸린 앞치마를 꺼내 그에게 매주려고 했다.
  • “당신 셔츠는 흰색이니까 기름이 튀면 씻기 어려워요.”
  • 소윤천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뒤로 돌아섰고 유이는 신속하게 그에게 앞치마를 매 주었다.
  • 두 사람 모두 집안일을 해야 하기에 당시 그녀는 앞치마를 한 사이즈 큰 걸로 샀었다. 키가 큰 그가 이것을 매니 조금 우스워 보였다.
  • 유이도 나가지 않고 주방의 문에 기대 바삐 돌아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교양이 있는 남자는 이런 일을 해도 보는 사람들을 눈 호강시켰다.
  • “저, 오늘 당신 왜 온 거예요?”
  • 비록 결혼 당시 그들은 소윤천이 외지로 출장을 가지 않는 이상 일요일에는 반드시 집에 온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유이는 어제 그가 왔으니 오늘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 소윤천은 야채를 씻느라 머리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 “오늘 일요일이잖아.”
  • “아.”
  • 유이는 눈빛이 어두워졌다. 역시 계약서에 있는 내용이 아니면 그의 아파트여도 오지 않을 것이다.
  • “아침에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 소윤천이 물었고 이어서 한마디 해석했다.
  • “비서가 전화를 받았는데 누가 날 찾는다고 해서 핸드폰을 뒤지다가 네가 건 전화라는 걸 발견했어.”
  • ‘비서? 어느 비서가 자신의 보스를 윤천 오빠라는 친밀한 호칭으로 불러?’
  • “그냥 오는지 물어보려고 전화했어요.”
  • 유이는 결국 왜 자신의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지 못하였다. 그가 앞에 한 말만 들어도 그녀는 마음이 불편하였기에 그녀는 뒤돌아 거실로 갔다.
  • 유이는 심심해서 인스타그램을 보았지만 한참 보다 보니 짜증이 나서 저도 모르게 네이버로 들어갔다.
  •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땐 네이버에 온통 “남편이 왜 번호를 저장하지 않는 거죠”혹은 “남편의 비서가 남편한테 친밀한 호칭을 써요” 등에 관한 검색이었다.
  • 그녀는 참지 못하고 무수히 많은 대답들을 보았다. 남편이 바람피웠으니 조심해요, 남편 핸드폰을 검사해서 증거를 찾아 이혼할 준비하세요, 그래야 이혼할 때 돈을 더 많이 나눠 받을 수 있어요...... 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가슴은 아파났다.
  • 이때, 소윤천이 음식을 담은 접시를 들고 주방에서 나왔고 그녀를 불렀다.
  • “와서 밥 먹어.”
  • “네.”
  • 유이는 급히 화면을 껐다.
  • 그들은 밥을 먹을 때 항상 조용했다. 유이는 복잡한 눈길로 빈번히 소윤천을 보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다 먹은 후 소윤천은 그릇을 씻고 침실로 들어갔다.
  • 요즘 일이 아주 바쁜지 샤워를 한 후 바로 침대에 올라갔다. 유이가 팩을 하고 돌아왔을 때에 소윤천은 이미 잠들어있었는데 그녀를 등지고 누운 모습에 유이는 그와 산 하나를 사이 두고 있는 것 같았다.
  • 유이는 침대 머리맡에 놓은 그의 핸드폰을 보며 한참을 그곳에 서있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가만히 가져왔다.
  • 전에 사진을 찍을 때 소윤천의 핸드폰을 쓴 적이 있기에 그녀는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들어간 유이는 이것저것 뒤져보았지만 별거 없었다. 이메일은 대부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메시지를 확인 한 그녀는 숨을 죽이고 말았다.
  • 그것은 이미 읽은 메시지였는데 내용은 길지 않았다:【윤천 오빠, 오늘 고마워요. 시간 나면 제가 꼭 한 끼 맛있는 거 쏠게요.】
  • ‘배설주? 그 비서라는 여잔가? 아니면 다른 여자?’
  • 유이도 이 메시지를 보았을 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만약 중요하지 않는 메시지라면 소윤천은 진작에 삭제했을 것이다.
  • 그녀는 화면을 끄고 다시 침대 머리맡에 올려놓았다.
  • 그의 넓은 어깨를 보던 유이는 참지 못하고 손을 내밀고 그의 허리를 안았다.
  • 1초도 되지 않아 그녀의 두 손은 그의 손에 의하여 풀렸고 심지어 그는 옆으로 조금 더 움직였는데 마치 일부러 그녀한테서 조금 더 떨어지려고 하는 것 같았다.
  • 유이는 그의 행동에 마음이 아파졌다.
  • 어제저녁만 해도 그녀와 함께 쉬지 않고 계속 뜨겁게 사랑을 나눴는데 오늘은 그녀가 그저 안으려고 하는데도 거절을 하다니. 그들 사이에는 종이 한 장과 그의 성욕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건가라고 생각한 유이는 아버지에 관한 일을 다 해결하고 나서 이혼을 제기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4년은 너무 길었고 그녀도 힘들어서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