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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녀의 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가?

  • 아버지가 판결을 받기까지 아직 20일이 남았다. 만약 그녀가 이 20일 안에 돌려줄 돈을 다 모으지 못하면 감옥에서 나오는 날에 아버지는 아마 백발노인이 되어 나올 것이다.
  • ‘투자자?’
  • 방금 계 사장님이 한 말이 떠오른 유이는 조금 망설이다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주소록에 있는 익숙한 번호를 바라보았다.
  • 그녀는 처음에는 소윤천을 남편이라고 저장했고 열기만 하면 바로 한 눈에 보일 수 있도록 일부러 앞에 ㄱ을 붙여 그의 이름이 주소록의 맨 앞에 있게 했다.
  • 그러나 3년 동안 소윤천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낸 횟수는 손꼽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남편을 소윤천으로 바꿔놓았고 중요한 일이 없으면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 유이는 전화를 걸면서 담배를 변기에 버리고 나가서 물로 가글 했다.
  • 금방 담배를 피우고 나면 그녀의 목소리는 쉬었는데 그대로 두면 전화를 받은 소윤천이 알아챌 것이고 전화기 너머 그 사람의 안색이 나빠질 것이다.
  •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 전화는 곧 연결이 되었지만 유이의 몸을 서늘케 한 것은 전화를 받은 사람이 여자였다는 것이다. 물어보는 것이 아주 숙달되여 마치 이런 전화를 많이 받아본 것 같았다.
  • 전화기 너머의 유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또 물었다.
  • “계세요?”
  • 유이는 한참 지나서야 다시 마음을 추슬렸고 듣기 좋지 않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소윤천 씨를 찾는데 혹시 계시나요?”
  • “윤천 오빠는 회의 중이에요.”
  • 여가 부른 이 호칭은 자연스러웠는데 마치 주도권을 차지한 사람 같았다.
  • “성씨와 어떤 고객님인지 알려주세요. 윤천 오빠의 주소록에 저장되여있지 않는 번호라......”
  • 유이는 그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급히 전화를 끊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는데 그만 핸드폰이 떨어져 급히 주었다.
  • 부서진 핸드폰 화면을 통해 유이는 자신의 얼굴에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 눈물자국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집안이 망한 사람처럼 낭패하기 그지없었다.
  • 그녀와 소윤천이 결혼한 지 3년. 세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냈고 다른 사람들을 놓고 말하면 노부부였다. 하지만 그는 줄곧 자신의 번호를 저장해놓지 않았다.
  • ‘그녀의 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가? 그리고 그 여자......’
  • 3분 전의 그 전화 한 통이 떠오르자 유이는 온몸에 한기를 느꼈다.
  • 소윤천의 태도가 계속 쌀쌀했기 때문에 유이도 그가 밖에서 다른 여자가 있진 않을까 하고 의심한 적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계약을 맺었기에 그가 바람을 피운다고 하면 이혼할 때 자신의 모든 재산을 그녀한테 줘야 할 것이다.
  • 유이는 줄곧 그를 믿었지만 오늘 전화를 받은 상대방이 소윤천에 대한 애매한 호칭은 그녀로 하여금 생각을 바꾸게 하였다.
  • 심지어 그녀 마음속의 그다지 뚜렷하지 않았던 틈새가 갈수록 커져갔다.
  • 유이도 오늘 일요일인지 아닌지, 소윤천이 집에 돌아오는지 오지 않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 오후 5시 30분에 퇴근하여 차를 몰고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을 샀다.
  • 어머니한테서 배운 그녀의 요리 솜씨는 아주 좋았는데 결혼 후 소윤에게 다양한 요리들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소윤천은 계약서에 쓰인 대로 일주일에 한 번만 돌아왔기에 다른 시간에는 아무리 맛있는 요리도 그녀 혼자서 먹어야 했다.
  • 시간이 지나자 유이도 요리를 하기가 귀찮아졌고 주말에 소윤천이 돌아오는 날에만 요리를 했다. 그가 있지 않으면 배달을 시켜 해결하고 가끔 기분이 좋을 때만 요리를 했다.
  • 거실에 놓인 휴대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왔고 소리가 꽤 높았기에 주방에서 요리하느라 바쁜 유이는 문 여는 소리를 들지 못하고 도마 위의 조기와 신경전을 벌였다.
  • “아!”
  • 아가미를 손질하다가 조심하지 않고 긁힌 유이는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을 들었는데 모두 피였다.
  • 그녀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등 뒤에서 누군가 큰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가락을 수도꼭지 아래에 놓고 물로 헹궜다. 손바닥에서 전해져오는 뜨거운 열기에 유이는 멍해져 두 템포나 늦게 반응했다.
  • 입술를 제외하고 남자의 몸은 어디나 다 뜨거운 것 같다.
  • “생선을 살 때 왜 처리를 해달라고 하지 않는 거야?”
  • 말하면서 소윤천은 종이로 그녀의 손가락을 깨끗이 닦고는 일회용 밴드를 붙였는데 동작은 보기에는 부드러웠지만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 유이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 “급해서 까먹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