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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의심

  • 열시가 되자 용등 그룹 사람들이 영신 테크에 도착했다. 구석에 자리 잡은 유이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앞장서서 들어오는 소윤천을 바라보았다. 짙은 회색 정장은 분위기를 더해주었고 꼭 다문 얇은 입술과 차가운 표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겼다.
  • 소윤천은 계 사장님과 악수를 한 후 습관적으로 회의실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구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노트를 보고 있는 유이를 발견하였다. 측면에서 보니 그동안 살이 조금 찐듯했다. 소윤천은 그녀에게 시선을 일초 정도만 주고 손으로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았다.
  • 소윤천은 투자회사계의 거물인 용등 그룹의 리더로서 말 몇 마디로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그의 기세에 경험이 많고 노련한 계 사장님조차도 말할 때 긴장해 하는 것 같았다.
  • 얼마 후 비서가 커피와 간식을 가지고 들어왔고 유이는 비서 혼자서 너무 바삐 움직이자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용등 그룹 사람들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미지근하고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를 골라 소윤천의 앞에 놓았다.
  • 예전에 소윤천이 집에 일주일에 한 번씩 들어올 때에도 가끔 일을 처리해야 할 때 미지근하고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를 마시던 일을 유이는 몰래 기억해두고 있었기에 오늘 그녀는 습관적으로 소윤천의 취향대로 챙겨주었다.
  • 소윤천은 계 사장님과 대화하다가 유이가 미지근한 커피에 탁자에는 설탕을 준비해놓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마주 잡고 있던 두 손에 더 힘을 주었지만 말투는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 회의는 길지 않았고 40분 만에 끝났다. 용등 그룹과 함께 일하게 되자 계 사장님은 기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는 회의가 끝나고 소윤천을 직접 아래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안내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 뒤를 따라갔다.
  • 유이의 회사 아래층에 있는 레스토랑은 싼 편이 아니었고 점심에 전체를 대여하려면 적어도 몇 백만 원은 들어야 했다. 식사를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레스토랑은 뷔페식으로 음식을 준비해두었다.
  • “유 팀장님, 식사합시다!”
  • 유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담고 있는데 동료가 다가와 인사를 하자 그녀는 알았다고 하면서 대답했다.
  • “마침 배도 고프네요.”
  • 몇 마디 주고받던 동료가 갑자기 화제를 전환하더니 속닥거렸다.
  • “용등 그룹의 소 사장님 너무 젊지 않아요? 겉으로 봐서는 서른도 안 된 것 같은데 엄청 부자래요.”
  • 동료는 속닥거리면서 갈망 어린 눈빛을 한 채 계 사장님이 앉아있는 쪽을 계속 힐끔거렸고 유이는 그 모습에 같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 소윤천은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편한 자세로 앉아 대화하고 있었고 모든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 유이는 뭔가를 깨달은 듯 갑자기 피식 웃었다. 그가 이토록 훌륭하니 그를 따르는 여자들도 많을 것이고 심지어 이름 없는 애인이라도 좋다고 하는데 유이는 그의 마음을 돌려 한평생 같이 살 생각을 했으니 너무 우스웠다.
  • “저런 남자는 영리하고 자제할 줄 알기에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없어요.”
  • 유이는 고개를 숙이고 반찬을 집어먹으면서 말했다.
  • 동료는 호기심이 가득 찬 말투로 물었다.
  • “유 팀장님은 그걸 어떻게 알아요?”
  • 유이는 속으로 그녀와 소윤천이 한 침대에서 같이 잔 시간이 3년이 넘었는데 모를 리가 있겠냐고 생각하였다.
  • “유 팀장님, 손에 끼고 다니던 반지가 안 보이네요?”
  • 동료는 유이의 네 번째 손가락에 있던 반지는 없어지고 옅은 반지 자국만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
  • “설마 … 남편과 이혼했어요?”
  • 유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 결혼할 때 유이는 회사 동료들을 불러 결혼 턱을 내려고 했지만 소윤천은 자기를 부르지 말하고 했다. 마치 그들이 결혼한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기 바라지 않는 듯했기에 그녀도 회사 사람들에게 남편이 누군지 말하지 않았다.
  • “요즘 남자들은 예쁘고 완벽한 여자만 좋아한다니까요.”
  • 동료는 몇 마디 불평하다가 유이를 위로하며 말했다.
  • “유 팀장님은 어리고 애도 없으니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 그 말을 들은 유이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배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가 이혼을 한건 맞지만 그녀의 뱃속에는 있었으나 동료는 그걸 알 리 없었다.
  • 그때 누군가 해산물이 담긴 접시를 들고 유이의 곁으로 지나갔고 유이는 그 냄새를 맡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동료를 밀치고 입을 막은 채 황급히 화장실로 뛰쳐나갔고 동료는 유이가 왜 자신을 밀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했다.
  • 소윤천은 무심결에 유이가 얼굴이 창백해져서 입을 막고 화장실로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유이가 뛰어갈 때 달라붙은 치마 위로 배가 둥그스름하게 부른 모습을 본 소윤천의 눈빛은 점점 침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