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억을 떠올린 유이는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되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가 자신과의 아이를 원할 리가 없다. 그녀는 계획이 성공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만약 아이가 생겨도 완전한 가족이 없으니 말이다.
“너 부족할까 봐 4억 적었어.”
성동남은 수표를 꺼내 유이에게 주었다.
유이도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확인을 한 후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차용증을 적어 성동남에게 주었다.
“선배, 제가 되도록 1년 안에 모두 갚을게요.”
“이건 나한테 있어서 별거 아니야.”
성동남은 차용증을 돌려주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일이니까. 빌린 돈은 갚을 수 있으면 갚고, 급해 하지 마.”
“아뇨, 차용증을 받지 않으시면 이 돈 저도 빌리지 않을 거예요.”
성동남이 이렇게 나오자 유이도 수표를 돌려주며 입장을 굳혔다.
성동남은 할 수 없이 차용증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받을게. 이자는 필요 없어.”
유이는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성동남이 먼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말했다.
“만약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되면 시간 날 때 단단이 글 가르쳐주는 걸로 그 이자를 갚아. 딸이 유치원에 가는 거 싫어하거든.”
유이는 조금 생각해 보더니 동의했다.
“그래요. 저 이래봐도 예전에 공부 엄청 잘했어요.”
“당연하지, 전시 1등으로 서울대에 붙었잖아!”
성동남도 따라 웃었다.
성동남이 돈을 빌려준 것을 감사하게 여긴 유이는 그한테 맛있는 밥 한 끼 사주고 싶었지만 떠날 때 성동남은 회사에서 그더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번엔 일이 바빠서 다음번에 밥 먹자.”
“괜찮아요. 선배 일 있으면 먼저 가세요.”
유이는 이해할 수 있음을 표시했다.
성동남이 단단이를 안고 떠나는 것을 보고 난 뒤 유이도 떠났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데 뜻밖에도 소윤천의 차를 보았다. 차에 기대고 있는 그의 얼굴은 조금 어두웠다.
“당신 왜 왔어요?”
유이는 1미터 되는 곳에 서서 물었다. 묻는 동시에 그때 어머니한테 셋집을 구해드릴 때 소윤천에게 어머니의 주소를 알려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속으로 후회했다.
소윤천이 고개를 돌려 유이를 보았고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성큼성큼 걸어와 따지는 말투로 말했다.
“왜 옷들을 다 가져간 거야? 그곳에서 지내지 않으려고?”
“그곳은 당신의 집이니까 제가 지낼 필요가 없죠.”
유이는 최대한 큰일을 피하고 작은 일을 골라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불면증이 심하셔서 제가 와서 더 잘 챙겨드리려고요.”
“그럼 이건 뭔데?”
소윤천은 문서를 유이의 눈앞에 들어 올렸다. 앞표지에 눈에 거슬리는 ‘이혼 협의’이 몇 글자가 씌어 있었는데 그는 아주 짜증이 났다.
회사에 일이 많아 다 처리하고 나니 오후가 되었다.
그는 유이가 혼자 퇴원했으리라 생각하고 장을 보고 돌아갔지만 집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했다.
침실에 들어가서 텅 빈 탁자를 보고는 그는 유이가 자신의 물건들을 모두 가져갔다는 것을 발견했다. 옷장에는 코트 두 개밖에 없었고 침대 머리맡에는 유이가 사인을 한 이혼 합의서가 놓여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는 당황했고 유이가 왜 이렇게 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3년간의 결혼 생활 잘 지냈잖아?’
그는 재빨리 전화를 걸었지만 유이가 그를 차단했는지 몇 번이나 걸어도 받지 않았다. 화가 난 그는 옷장을 발로 찼고 점점 더 짜증이 났다.
조금 냉정해진 후 소윤천은 유이가 어머니에게 셋집을 찾아준다고 말하면서 주소를 준 것이 기억났다. 그는 바로 서랍을 뒤져 그 메모지를 찾은 뒤 운전을 하여 곧장 유이의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아파트 단지로 갔다. 하지만 유이의 어머니가 정확히 몇 층에 사시는지 몰랐던 그는 계속 밑에서 기다렸다.
“당신이 본 그대로에요.”
유이는 이혼 합의서를 힐끗 보더니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저 당신과 이혼할 거예요.”
“유이, 너!”
그녀의 평온한 얼굴에 소윤천은 더 짜증이 났다. 손을 내밀고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다. 유이의 손에 쥔 비닐봉지가 떨어져 채소들도 온 바닥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