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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욕 먹을까 봐 두렵지도 않은 건가?

  • 김시우가 김서윤 대신 캐리어에서 신발을 꺼내 직접 그녀에게 신겨주자 아니나 다를까 댓글창이 천사 같은 오빠라고 칭찬하며 난리가 났다.
  • 심지어 다른 게스트들의 팬들과 네티즌들도 이 남매 사이가 남다를 정도로 돈독하다고 엄지손가락을 내둘렀다.
  • 특히 집에 오빠가 있는 팬들은 맨날 자신들의 오빠에게 욕을 먹고 심지어 주먹다짐까지 한다고 하면서 김서윤에 대한 부러움을 드러냈다.
  • 김서윤이 신발을 갈아 신은 뒤, 다들 계속하여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을 곳은 없었기에 김서윤의 긴 원피스는 산길 바닥을 질질 끌고 다녔으며 이를 본 김시우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잡아 주기도 했다.
  • 이게 연회장이나 시상식 현장이었다면 그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테지만 좁고 가파른 산길에서는 참 아이러니한 장면이 아닐 수가 없었다.
  • 송예연은 그나마 편한 신발을 신고 있긴 했지만 긴 치마가 불편한 탓에 계속 손으로 치맛자락을 잡고 있었기에 이 또한 보기 거북했다.
  • 댓글창에는 보기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분명히 농촌에서 촬영하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아이러니하게 차려 입은 김서윤과 송예연에 대해 어이가 없었다.
  • 이와 반대로 윤혜성과 임미현의 차림새는 산길을 걷거나 일을 하기에는 매우 편해 보였다.
  • 30분 정도 걷자 송예연이 더 이상 가기 힘들다며 쉬고 싶다고 했다.
  • 솔직히 김서윤도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그녀는 편한 신발로 갈아 신기는 했지만 원피스가 너무 걸리적거렸던 것이다.
  • 그뿐만 아니라 집에서 애지중지 곱게 자란 그녀는 이렇게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미움을 살까 봐 티를 낼 수도 없었으며 특히 힘든 내색 없이 잘만 걸어가는 윤혜성을 보며 더욱 이를 악물고 버텼다.
  • 쉬고 싶다고 얘기하는 송예연 덕분에 김서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이렇게 되면 과하게 차려 입은 데다가 칭얼대기까지 하는 송예연은 시청자들의 눈 밖에 날 것이 분명했다.
  • 피디가 십 분만 쉬다가 다시 출발하자고 얘기했고 잠깐 쉬는 시간을 지나 30분 정도 더 걸으니 그제야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 마을에 들어서서 조금 더 걸은 뒤, 스텝들이 한 농가 정원 앞에 멈춰 섰다.
  • 어렸을 때부터 거의 매일 태권도를 배우며 운동을 유지한 윤혜성은 한 시간 정도의 산길을 걸어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 그녀 외에 평소에 복싱을 즐기는 한구운만 멀쩡한 모습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의 쓰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 처음엔 꽤 잘 버티는 듯했던 임미현도 힘든 기색이 역력했으며 남은 30분 동안 윤혜성의 부축하에 마을까지 걸어온 것이다.
  • 김서윤은 다리가 심각하게 떨렸으며 감각을 잃은 듯했다. 이게 집에 있는 상황이거나 라이브 방송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작 김시우에게 안겨 서러움을 토로했을 것이다.
  • 하지만 라이브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그녀는 김시우의 몸에 살짝 기대어 힘들지만 그래도 끝까지 버틸 수 있다는 표정을 지었고 김시우는 마음 아픈 듯 김서윤의 어깨를 감쌌다.
  • “서윤아, 많이 힘들지? 이따가 들어가서 발 주물러 줄게.”
  • 김서윤은 가까이에 서있던 윤혜성을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혀 짧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그래, 고마워, 오빠!”
  • ‘윤혜성이 시우 오빠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안 좋고 질투가 나겠지? 그러다가 화가 나서 말실수라도 하면 더 좋고.’
  • 김시우는 다른 한 손으로 김서윤의 머리를 살짝 마사지해주며 대꾸했다.
  • “고맙긴, 넌 내 동생이잖아.”
  • 말을 마친 김시우는 그제야 다른 한 여동생도 생각난 듯 뜨끔한 마음을 안고 윤혜성을 힐끗 쳐다보았다.
  • 하지만 윤혜성은 그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임미현과 수다를 떨고 있었고 김시우는 그런 윤혜성의 모습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왠지 실망스럽기도 했다.
  • 윤혜성이 집안사람들과 틀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에게 다가와 발은 괜찮은 지 물었을 것이다.
  • 이내 김시우는 라이브 방송 때문에 윤혜성이 더욱 차가운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 나중에 쉬는 시간이 주어지고 라이브 방송이 잠시 멈추면 윤혜성은 그에게 찾아와 특수한 방법으로 그의 다리를 주물러줄 것이다.
  • 김시우는 심지어 나중에 윤혜성이 화해를 하자고 찾아오면 못 이기는 척 그녀를 용서해야 하는지 아니면 억지를 부린 결과가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 끝까지 그녀에게 싸늘하게 굴어야 할지 고민까지 했다.
  • 이때, 피디가 정원 문을 열고 들어가 게스트들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 “이 농가 정원은 저희 제작진이 특별히 여러분들을 위해 찾아서 마련한 숙소입니다. 마을에 있는 2층짜리 주택 건물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농가는 마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숙소입니다.”
  • 이번에 연기 대상 한 명에 탑급 연예인도 두 명이나 섭외했기에 제작진은 숙소에 신경을 조금 쓸 수밖에 없었다.
  • 피디의 말에 게스트들이 안도감이 들었다. 제작진이 양심도 없이 가장 열악한 숙소를 배치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다.
  •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했으니 꽤 훌륭할 것이라고 생각한 게스트들은 기대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작은 정원이 보였고 정원에는 야채를 심은 땅에 작은 벽돌집 몇 채가 보였다.
  • 그 벽돌집들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 “중간에 있는 집은 거실이기도 하고 식사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방은 주방과 다용도실이고요. 양측에는 방 네 개가 있는데 여러분들이 취침하는 곳입니다. 방 구조는 똑같으니까 다들 들어가 보세요.”
  • 피디의 말에 게스트들이 가장 가까운 방으로 발을 들였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 방은 깨끗하게 청소되었고 평수도 꽤 넓었지만 방에는 1인용 침대와 원목 의자 두 개가 전부였고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
  • “안에 침대랑 의자밖에 없는데요?”
  • 김시우가 묻자 피디가 웃으며 대답했다.
  • “그럼 뭐가 더 필요하죠?”
  • “옷장도 필요하고 테이블도 필요하죠. 안 그러면 저희 옷은 어디에 걸어 놔야 하나요? 그리고 챙겨온 물건들은 어디에 놓죠?”
  • 김시우가 계속하여 물었다. 방안이 너무도 초라할 뿐만 아니라 특히 벽돌로 만든 벽을 보며 김시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그건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셔야죠. 저희가 제공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원하시는 옷장이나 테이블은 알아서 구해 오시면 돼요.”
  • 피디가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 이 순간, 김시우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너무도 후회됐다.
  •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 “이렇게 누추한 환경에 저희 남자 네 명은 괜찮은데 여자분들에게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 피디가 대꾸를 하기도 전에 한구운이 김시우를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
  • “언제부터 저희 남자 세 명 대신 입장을 발표하기로 한 거예요? 그리고 여자 게스트 네 명 대신 결정도 마음대로 하시네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일단 제 의견을 대신하진 말아주세요.”
  • 한구운이 다시 한번 강조했다. 남자 네 명은 괜찮다니? 한구운은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 그는 연예계에 들어온 뒤에도 전혀 성격을 고칠 생각이 없었으며 특히 눈에 거슬리는 김시우에게는 더더욱 예의를 갖출 생각이 없었다.
  • “전 단지 여자 게스트분들이 너무 고생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한 말입니다.”
  • 김시우가 난감한 듯 대답하자 김서윤도 미안한 표정으로 한구운을 보며 말을 보탰다.
  • “우리 오빠는 저희를 위해서 한 말이에요. 다른 뜻은 없어요. 하지만 남자 게스트분들이 괜찮다면 저희도 충분히 이곳에서 지낼 수 있습니다.”
  • 김서윤은 김시우의 편을 서는 듯하면서도 그녀가 온실 속 화초가 아니란 걸 강조하고 싶어했다. 김서윤의 연구에 의하면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부잣집 아가씨처럼 행동하지만 않으면 시청자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었다.
  • 김서윤은 마음속으로 초라한 저 방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3주 동안 이런 곳에서 지낼 걸 생각하면 끔찍했지만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 더군다나 윤혜성과 선명한 비교가 되어 그녀를 발 아래에 짓밟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참아야 했다.
  • 이때 윤혜성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 “내 입장도 대신하지 말아줘.”
  • 앞으로의 촬영에서도 윤혜성은 김 씨 가문 남매 그리고 이세준과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었기에 애초부터 태도를 확실하게 보이기로 했다.
  • 그리고 그녀가 방송에서 저 세 사람과 멀리하게 되면 보는 시청자들의 궁금증도 끌어낼 것이다.
  • 그들이 대체 현실속에서 어떤 개인 원한 관계로 엮였기에 방송에서 저런 모습을 보일까 궁금증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폭로하려고 뒤를 파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 그뿐만 아니라 윤혜성이 방송에서 가식을 떨면서 세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그녀 본인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신분과 사실들이 들통났을 때 시청자들은 그녀에게 못 났다고 욕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 또한 윤혜성이 김서윤에게 시비를 걸어야 김시우가 나서서 가짜 여동생을 감싸며 친동생인 윤혜성을 나무랄 것이다.
  • 한편, 윤혜성의 말에 피디와 몇몇 게스트들이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 윤혜성과 한구운이 저렇게 직접적으로 도발을 하다니. 욕 먹을까 봐 두렵지도 않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