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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제가 어떻게 서방님을 탓할 수 있겠어요?

  • “아기 이름을 생각해 두셨습니까?”
  • 허씨는 그를 쳐다보았다.
  • 유원택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 그가 멍해 있는 사이에 그의 뒤에 있던 사동이 입을 열었다.
  • “나리께서는 마님의 이 아가씨를 몹시 신경 쓰셨어요. 아가씨가 태어나기도 전에 밤새도록 서재에서 시경을 샅샅이 뒤지시며 이름을 생각하셨어요.”
  • “입 닥쳐!”
  • 유원택은 대뜸 표정을 찡그리며 사동을 꾸짖었다.
  • 사동은 고개를 들어 유원택을 쳐다보았다. 잔뜩 흐린 유원택의 얼굴에서 곧 비바람이 몰아칠 것만 같았다. 사동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 ‘나리께서는 분명히 사흘 동안이나 서재에만 있으며 이름을 생각하셨잖아요.’
  • 유원택은 놀란 허씨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놀라게 해 주고 싶었는데 이 멍청이 때문에 다 들켰구려. 이 아기는 우리 유씨 가문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딸이고 아침에 태어났으니 유신단이라고 부릅시다. 신단은 아침이라는 뜻이고 아침은 곧 희망이오.”
  • 허씨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시울을 붉혔다.
  • 그녀는 이 이름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손가락이 하얗게 될 때까지 침대 위의 비단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 그녀는 앞서 유원택의 서재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 그날 서재에는 많은 종이가 널려 있고 그 위에 이름이 가득 적혀 있었다.
  • 유경요, 듣기만 해도 어질고 너그러울 뿐만 아니라 용모가 뛰어나고 똑똑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이름이다.
  • 유지연, 학문이 깊고 예절에 밝아 세상 만물과 더불어 즐겁게 살 것이다.
  • 이름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선택하고 그 뒤에 모든 기대와 축복을 남겼다.
  • 하지만 그녀의 딸은…
  • 겨우 아침이라는 의미밖에 없었다.
  • 그녀는 앞서 세 아들의 이름도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딸까지 억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 “차라리 다시…”
  • 그러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즐겁게 옹알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잠깐만요. 소녀는 신단이라는 이름을 갖고 싶어요. 신단이 좋아요. 어머니, 어머니, 소녀는 유신단이라는 이름이 좋아요…]
  • 아기는 온몸의 힘을 다해 손을 내밀며 옹알옹알 소리쳤다.
  • 허씨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그 이름을 인정했다.
  • “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럼 이 아이는 신단이라고 부릅시다.”
  • 그녀는 아기의 코를 살짝 긁었다. 아기는 그녀의 식지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 작은 손가락 다섯 개가 그녀의 식지를 겨우 잡았다.
  • 아기는 그녀의 식지를 자기 볼에 갖다 댔다.
  • [어머니, 울지 마세요. 어머니, 무서워하지 마세요. 신단이 어머니를 지켜 드릴 거예요… 신단이는 대단해요. 정말 대단해요.]
  • 아기는 스스로 자기를 자랑했다.
  • 허씨는 눈시울이 약간 젖어 들었다.
  • 딸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진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부인, 앞으로 좀 더 수고하시오. 난 조정에 일이 많아서 이번 달에는 좀 바쁠 것 같구려.”
  • 유원택은 모처럼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허씨는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말고 나라의 큰일을 잘하라고 설득했다.
  • 그런데 그가 이 시간을 모두 밖에 있는 여인에게 썼을 줄이야.
  • 그녀의 어질고 바른 행실이 오히려 남 좋은 노릇만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 “우리는 부부입니다. 소첩이 어찌 서방님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 신단이가 좀 서운할 것 같습니다.”
  • 허씨는 약간 쓸쓸한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유원택은 보자기에 싸인 유신단을 힐끗 보았다.
  • 그는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유신단과 유경요는 바로 어제 같은 날에 태어났다.
  • 유경요는 태어날 때 온몸이 빨갰다.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인지 피부가 쭈글쭈글하고 울음소리도 고양이 울음소리 같았다.
  • 그러나 유신단은 피부가 눈처럼 하얗고 포동포동하며 눈썹은 물론 속눈썹까지 짙고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