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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무너진 사랑과 믿음

  • ‘마님과 나리는 정이 바다처럼 깊어. 다만 세 도련님이 훌륭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지.’
  • 허씨는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 영설은 은하를 노려보았다.
  • ‘마님이 온종일 앉아 나리가 오시기를 기다리시는 게 안 보이나? 마님은 지금 몹시 괴로워.’
  • 그녀가 막 영설을 꾸짖으려고 할 때 문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마님, 동희가 돌아왔어요.”
  • 허씨는 똑바로 앉았다.
  • 동희는 잔뜩 흐린 표정으로 들어왔다.
  • “너희는 나가서 문밖을 지켜.”
  • 영설과 은하는 물러갔다.
  • 허씨도 문이 닫히자마자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 동희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 이미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 “마님의 예상이 맞았어요. 저 청우 골목에서…”
  • 동희는 아까 그 장면을 보고 미칠 것만 같았다.
  • “쇤네가 갔을 때 나리는 마침 온몸을 꽁꽁 싼 여인을 부축해 마차에 타고 있었어요. 품에는 갓난아기를 안고요.”
  • 동희는 곧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 [아, 아마도 내가 목 졸려 죽지 않은 데다가 두 할망구까지 잡힌 거 알고 들통날까 봐 자리를 옮겼나 봐…]
  • 허씨는 이 말을 똑똑히 들었다.
  • 그녀는 숨을 길게 들이쉬며 울컥 솟구치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았다.
  • “똑똑히 봤느냐? 정말… 나리였느냐?”
  • 허씨는 창백한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 동희는 눈물을 훔쳤다.
  • “쇤네는 그 여인이 나리를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요. 쇤네는 셋집을 구하는 척하며 옆집에 사는 사람의 얘기를 들었는데 나리가 그 여인이랑 벌써 몇 년째 부부처럼 살았대요. 두 사람은…”
  • 동희는 또 눈물을 훔쳤다.
  • “두 사람은 지극히 사랑하는 사이래요. 나리는 그 여인이 억울함을 당할까 봐 직접 선물을 사 들고 이웃들을 찾아가 잘 돌봐 달라고 부탁했대요.”
  • 그들에 대한 모든 사람의 인상이 아주 좋았다.
  • 허씨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 “마님…”
  • 동희는 허씨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날벼락을 맞은 느낌인데 하물며 허씨는 더더욱 어떻겠는가?
  • [예쁜 어머니, 울지 마세요. 그런 인간쓰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어요. 어머니가 울면 소녀가 가슴이 아파요…]
  • 아기는 입술을 실룩거렸다.
  • ‘이렇게 예쁜 어머니를 두고 쓰레기 같은 남자가 눈이 멀었어.’
  • “그 여인이 누군지 알아봤느냐?”
  • 허씨는 한참 뒤에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 그 말투는 약간 절망적이었다.
  • “쇤네는 그냥 그 여인의 성이 배씨라는 것만 들었어요. 나리께서 평소에 그 여인을 금실이라고 부르셨다니 아마도 이건 그 여인의 아명인 것 같아요.”
  • 허씨는 마음속의 마지막 희망마저 무너져 내렸다.
  • ‘금실이?’
  • 몇 년 전의 추석 가족 모임 때 유원택은 술을 많이 마시고 꿈속에서 배금실이라는 이름을 불렀다.
  • 허씨는 가슴이 답답했다. 그녀의 오랜 사랑, 오랜 믿음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 그녀는 침대 머리에 기대어 눈물을 줄줄 흘렸다.
  • 그러나 그녀가 미처 슬픔에 빠지기도 전에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머니, 울지 마세요. 어머니 친정의 그 비뚤어진 나무 밑에 지금 전하의 팔자가 숨겨져 있어요…]
  • 유신단은 아직 말 못 하는 자기가 원망스러웠다. 관가에서 허씨 가문을 뒤질 때 바로 그 비뚤어진 나무 밑에서 역모의 증거가 되는 물건이 나왔고 그래서 그녀의 큰 외숙이 누명을 뒤집어쓰고 참수당했다.
  • 하지만 이것은 허씨 가문이 망하는 시작일 뿐이었다.
  • 허씨는 팔자라는 두 글자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 유원택이 허씨 가문으로 청혼하러 왔을 때 그녀의 부모와 오라버니들은 모두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가 한사코 그에게 시집가겠다고 버텨서 이 혼사가 이루어졌다.
  • 그리고 지금까지 유원택이 줄곧 처가를 싫어하는 바람에 그녀도 유원택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친정을 멀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