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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는 단 한 번도 신지수가 아픈 것을 본 적이 없었다

  • 강우현은 온몸으로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와 단 몇 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있던 신지수는 그 한기에 놀라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자신을 향한 남자의 음험한 눈빛에 그녀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 그 순간, 갑자기 마디마디가 분명한 손 하나가 그녀의 턱을 움켜잡았다. 그 손에 의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린 신지수는 당황한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 “우현 씨, 왜 돌아온 거야?”
  • “내가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오는 거지, 너한테 보고까지 해야 하는 거야?”
  • 강우현은 침대 위에 무릎을 꿇은 채 신지수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그녀의 몸을 내리눌렀다.
  • 그의 동작은 굉장히 과격했고 신지수의 손목을 움켜잡고 있는 손에는 한치의 자비도 없었다.
  • 품 안에 있는 여자가 힘을 풀고 있던 상태에서 서서히 굳어가다 결국에는 저항하며 몸부림치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는 온 힘을 다해 반항하는 그녀의 두 다리를 짓눌렀다.
  • 이에 신지수는 깜짝 놀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이렇듯 한 마리의 흉포한 늑대처럼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릴 듯한 강우현의 모습은 이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그녀는 그런 그가 너무 두려웠다. 기억 속의 그 다정하고 듬직하던 강우현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 “우현 씨, 아파…”
  • “신지수, 넌 정말이지 날 역겹게 해. 네 얼굴이든, 네 몸이든, 전부 다 날 구역질 나게 한다고.”
  • 그는 신지수 같은 여자는 다정하게 대해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인내심을 갖고 그녀를 대하는 것마저도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 신지수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마치 빛바랜 종이처럼 조금의 핏기도 없었다.
  • 강우현의 모욕적인 말에 이미 오래전에 적응이 되었을 텐데도 그녀의 심장은 왜인지 모르게 여전히 그렇듯 아파왔다. 그녀는 심장이 마치 누군가의 손안에 쥐어진 채 조금씩 부서져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 강우현은 드물기는 하지만 가끔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는 그녀를 술집 여자 취급하며 별일 없을 때면 돌아와 몸을 섞고는 곧바로 떠나갔다. 마치 ‘부부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처럼 말이다.
  • 하지만 오늘은 한예은이 다쳤으니, 원칙대로라면 그는 지금쯤 병원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지키고 있었어야 했다.
  • 하지만 한밤중에 그녀의 침실에 나타났다는 건… 신지수는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개는 한예은과 다툰 것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를 찾아왔을 리가 없었다.
  • 하지만 그녀는 오늘밤만큼은 도저히 그를 상대해 줄 여력이 없었다.
  • 이에 신지수는 남자의 단단한 가슴팍을 연신 밀어내다 조금의 틈이 보이자 곧바로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몸을 일으켜 세우기가 무섭게 그가 뒤에서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 “아악…”
  • 신지수는 고통에 신음하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 “우현 씨, 오늘은 이미 시간이 많이 늦었어. 난 당신과 하고 싶지 않아…”
  • 그 한마디에서 어느 부분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건지는 몰라도, 강우현의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은 조명 아래에서 유달리도 공포스러웠다.
  • 그는 신지수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힘껏 그녀의 얼굴을 억지로 베게 위에 내리눌렀다.
  • “신지수, 어디서 순진한 척이야? 네가 하고 싶은지 아닌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날 협박해서 결혼할 때는 언제고, 창녀 같은 게 이젠 고상한 척까지 하려고?”
  • 너무도 듣기 거북한 말이었다.
  • 신지수는 호흡마저도 떨리고 있었다. 천장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의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이 끝내는 참지 못하고 베개를 적셨다.
  • 이 사람이 바로 그녀가 그토록 자신의 남자로 만들려 했던 사람이었다. 가장 독한 말로 그녀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어버린 이 남자가 말이다.
  • 젖어있는 그녀의 두 눈을 본 강우현은 순간 흠칫했다. 그는 짜증스럽게 목에 두르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 신지수의 손을 침대 머리에 묶었다.
  • 신지수는 위암이 가져다준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새어 나오려는 소리를 억누르며 필사적으로 목에서 느껴지는 피 맛을 삼켰다.
  • 그녀는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었다. 강우현은 고양이처럼 이불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가늘게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보고 있자니 꽤나 불쌍했다.
  • 하지만 강우현에게 그녀는 안중에도 없었기에 당연히 신경도 쓰지 않았다.
  • 신지수는 줄곧 건강했었고 밤을 새워 야근하고도 다음날 여전히 제때 출근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 그녀와 함께해온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그녀가 아픈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 헝클어진 긴 머리를 부스스하게 침대 위에 늘어뜨리고 있는 그녀의 등은 굉장히 가냘팠고, 몸을 구부리고 있을 때는 양쪽 날개뼈가 마치 곧 날아오를 나비의 그것 같았다.
  • 그 모습에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등에 가져다 댔다. 그의 손끝이 닿기가 무섭게,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순간 옆으로 몸을 피했다.
  • 이에 강우현의 두 눈에 강한 분노가 스쳤다. 그는 마음이 극도로 불쾌했다.
  • “평소에는 목석처럼 굴더니, 오늘은 또 튕기고 싶어? 그래봤자 소용없어!”
  • 강우현은 공연히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뜬금없이 솟구쳐 오른 그 분노에 그 자신조차도 어떻게 삭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그렇다고 그 감정이 신지수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는 그 원인을 한예은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한예은이 병원에서 자신에게 했던 그 말, 신지수와 언제 이혼할 건지 묻던 그 말이 생각난 그는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 강우현은 이를 악물었다. 신지수의 어떤 부분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그와 한예은이 그녀를 두고 다툰단 말인가?
  • 신지수는 자신의 몸을 감싸안은 채 움츠리고 숨어버린 거북이처럼 스스로를 보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 그녀는 엄청난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분명 보일러도 틀고 이불까지 뒤집어쓰고 있음에도 여전히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 마치 가슴 어딘가에 난 상처가 감염이 되어 오장육부 전체가 다 썩어 문드러져 버린 것만 같았다.
  • 그녀는 원래 고통을 잘 참는 편이라 이를 악물고 고통을 삼켜내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이지 참기가 어려웠다.
  • 이혼에 대한 생각이 일단 마음속을 파고들어 오자 미친 듯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힘이 좀 생기면 강우현과 이혼에 관해 얘기해 봐야겠어.’
  •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쓸 시간이 없었다.
  • 그렇게 신지수가 고통에 정신을 잃어가던 순간, 강우현의 마지막 한마디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