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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맞지 않는 반지는 마치 그들의 결혼 같다

  • 신지수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실 안이었다. 텅 빈 병실 안에 그녀는 혼자였다.
  • 휴대폰은 배터리가 다 되어 신지수는 자신이 얼마 동안 잠들어 있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창밖을 보니 하늘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 신지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은 뒤 가방을 챙겨 병실을 나섰다.
  • 한예은의 병실을 지나치던 순간 살짝 열려있는 병실 문을 본 그녀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 이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한예은이었고 그런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명의상 자신의 남편인 강우현이었다.
  • 여러 남자의 첫사랑이었을 법한 생김새의 한예은은 흰 바탕에 파란 줄무늬만 가득한 환자복을 입고 있어도 그 깨끗하고 우아한 분위기는 전혀 가려지지 않았고, 새하얀 피부에 동글동글한 두 눈이 더욱더 초롱초롱해 보였다.
  • 어쩌면 강우현은 한예은의 그런 온몸에서 퍼져 나오는 순수함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신지수는 생각했다.
  • 그런 그녀에 비하면 자신은 다정한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심보 나쁜 악인이었다.
  • 그녀는 한예은을 대하는 강우현의 다정한 모습에 질투가 났다. 한참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 강우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차가운 성격인 줄 알 것이다.
  • 하지만 신지수는 잘 알고있었다. 사실 그의 모든 다정함은 전부 다 한예은에게 향해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이라도 나누어주기에 아까웠던 것임을.
  • 물론… 오래전에는 그녀에게도 다정하게 대해주었던 적이 있었었다. 지금은 그 다정함이 진즉에 조금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 그녀의 ‘엿보기’는 끝내는 안에 있던 두 사람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 한예은은 그녀를 발견한 순간 겁먹은 토끼처럼 강우현의 뒤로 숨어버렸다. 얼굴에 두려움을 내비친 채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극악무도한 나쁜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 이에 한예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며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강우현은 문가에 서있는 신지수의 모습을 발견하자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 그 짜증은 이내 혐오가 되어 여과 없이 그의 얼굴에 드러났다. 그가 나무랐다.
  • “거기 그렇게 숨어서 뭐 하는 거야?”
  • 문어구에 서서 서로 딱 달라붙어 있는 병실 안의 두 사람을 바라보던 신지수는 순간 눈꼴이 시려왔다.
  •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음에도 도저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이제껏 본 적이 없던 강우현의 모습이었고 그녀가 이제껏 바라왔던 강우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자니 그녀는 눈앞이 흐릿해져 왔다… 아팠다. 마음이 마치 타버린 재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 한예은을 자신의 등 뒤에 숨긴 채 그녀를 노려보던 강우현은 핏기 없이 창백한 신지수의 얼굴을 보자 순간 마음이 복잡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 “일어났으면 집으로 돌아가.”
  • 이에 잠시 망설이던 신지수는 갈라져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 “오늘 밤엔 돌아올 거야?”
  • 강우현의 두 눈에 가득한 경계심에 신지수는 그에게 뭐라 설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 그녀는 자신이 지난 몇 년간 도대체 무슨 큰 죄를 저질렀기에 강우현이 마치 도둑을 대하듯 자신을 경계하는 것인지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 사람이라면 다들 감정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비록 그녀가 그와 한예은의 사이를 갈라놓았지만 결혼하고 4년 동안 신지수는 식모처럼 그의 모든 일상생활을 수발들었었다.
  • 비록 화목한 가정이라든지 완벽한 결혼생활을 이루지 못했지만, 지난 몇 년간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와 한예은의 일에 관해 물은 적이 없었다.
  • 강우현은 예전에만 해도 조금은 마음에 걸리는 듯 몰래 만났었지만, 그 후 신씨 가문이 나날이 쇠퇴해져 재벌가 순위에서 밀려난 이후로는 더 이상 강우현에게 그녀는 그 어떤 위협도 되지 않았다.
  • 그런 그와 한예은의 공공연한 사이에 대해 그녀는 그 어떤 것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강우현과 함께하면서 신지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위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것은 고사하고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이어나가게 해줘야 했다.
  • 그녀 자신의 목숨은 다 닳아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숨을 이어나가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했다.
  • 이에 신지수는 순간 마음이 수천만 개의 바늘에 찔린 듯 아파졌다. 그 고통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져 손가락 끝까지 고통으로 인해 떨려왔다.
  • 신지수는 강우현의 명령에 대해 아무런 의견도 제기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기도 했다.
  • 맨 처음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했던 모든 것들이 오늘날 그녀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상태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 그렇게 돌아서려던 순간, 신지수는 병실 안에서 들려오는 한예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 “신지수 씨 말이야, 나한테 그렇게 많은 피를 수혈해 줬는데 괜찮은 거야?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던데…”
  • “괜찮아, 그 여잔 항상 건강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