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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강우현 씨랑 이혼해

  • 신지수는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10분 거리를 그녀는 20분에 걸쳐 걸어갔다.
  • 보일러를 틀지 않은 저택의 널찍한 방안은 죽을 것 같은 한기가 감돌고 있었다.
  • 신지수는 하이힐을 차버리고는 취한 사람처럼 비틀비틀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욕조가 반쯤 채워졌을 무렵, 조금 전까지도 버티고 있던 사람이 순간 죽은 사람처럼 욕조 안으로 쓰러졌다.
  • 그로 인해 뜨거운 물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지만,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 붉은색의 긴 원피스가 욕조 한가득 덮여 눈에 거슬리는 핏물처럼 보여 신지수의 얼굴이 더욱더 종잇장같이 하얗게 보였다.
  • 그녀는 눈을 감고 물속으로 얼굴을 가라앉혔다. 물이 서서히 정수리를 넘어 모든 감각들을 뒤덮었다.
  • 잠깐의 질식이 심장을 마비시켰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뜨거운 물이 입안으로 밀려 들어오자 메스꺼움이 위안에서부터 밀려 올라왔다.
  • 이에 핏발이 서있는 눈을 뜨고 물속에서 머리를 내민 신지수는 욕조 위에 엎드린 채 몸을 기댔다. 위 안에서 손 하나가 휘젓고 있는 듯한 느낌에 그녀는 무감각하게 입을 벌렸다.
  • 상체는 주체할 수 없이 움찔거리고 있었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터라 토해낸 것은 전부 다 누릿한 위산이었다.
  • 위산에 의해 목은 타는 듯 아파왔고 그 고통에 눈물마저 정처 없이 흘러내렸다. 끝까지 토해낸 신지수는 퉁퉁 부은 두 눈을 비비며 바닥에 한가득한 점액들 속에 섞여 있는 피를 바라보았다.
  • 그녀는 입꼬리를 미세하게 말아 올렸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적막함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 그녀는 입고 있던 붉은 원피스를 벗어 바닥 위의 핏자국을 닦아냈다. 강우현에게 피를 보일 수는 없었다.
  • 밖의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신지수는 맨발로 안방으로 돌아가 그대로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 그녀는 잠이 오지 않았다.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때만 해도 여전히 미래에 대한 환상을 가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저 아무 소용이 없는 발악일 뿐이었다.
  • 4년, 그녀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완전한 패배로 몰아넣었다.
  •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던 것으로부터 지금의 끝도 없는 절망 속으로 말이다. 그날 하루 동안 그녀는 자신이 평생 흘릴 눈물을 전부 소진해 버린 것만 같았다.
  • 신지수는 심장이 있는 위치에 손을 올리고는 씁쓸한 비웃음을 흘렸다.
  • ‘분명 망가져 버린 것은 위인데 네가 왜 아프고 난리야?’
  • 그러던 그때 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하자 신지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그녀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가방을 열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 하지만 화면에 떠있는 수신 전화를 확인한 그녀는 마치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 ‘그 사람이 아니잖아… 신지수, 너 도대체 무슨 헛꿈을 꾸고 있는 거야?’
  • 몇 초간 멍하니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신지수는 결국에는 굳어버린 손가락을 움직여 전화를 받았다.
  • “진호야.”
  • 신지수의 목소리는 엄청나게 갈라져 있었다. 마치 칼날이 숫돌 위를 쓸고 지나가는 듯한 그 소리는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
  • 진호는 그녀와 함께 자란 소꿉친구로, 두 사람은 가족이 아님에도 가족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였다.
  • 어릴 적 그녀는 꽤 오랫동안 진씨 가문에서 지냈었고 신지수에게 진호는 오빠와도 같은 존재였다.
  • 수화기 너머에서 진호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 “지수야, 너 목소리가 왜 그렇게 갈라졌어? 어디 아픈 거야?”
  • “감기기운이 좀 있어. 방금 자고 일어났더니 목소리가 갈라져서 너무…”
  • 신지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호가 수화기 너머에서 그녀의 말을 끊었다.
  • “지수야, 나한테까지 거짓말 할 거야? 내가 의사인 거 잊었어? 방금 일어난 목소리랑 감기에 걸린 상태에서 울었던 목소리 정도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어.”
  • 이에 그녀는 마치 날카로운 돌 하나가 목에 걸린 듯 목이 메어왔다. 그 돌에 쓸려 입안에서 피 맛이 느껴질 정도였지만 이를 다시 삼키지도, 뱉아내지도 못한 채 아무런 말도 못 하던 그녀는 결국에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진호가 물었다.
  • “지수야, 왜 울었는지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
  • 신지수는 휴대폰을 움켜쥔 채 나무 바닥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놓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 “말 못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