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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강우현 씨랑 이혼해

  • 그 대답에 진호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신지수의 성격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강인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그냥 고집불통이었다.
  • 그녀가 말하기 싫다고 한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녀에게서 단 한마디의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이에 진호는 하는 수 없이 화제를 전환했다.
  • “오늘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온 건 어떻게 됐어?”
  • 신지수는 각질이 일어난 입술을 삐죽였다.
  • “좋아.”
  • 진호가 말했다.
  • “말하기 싫으면 됐어. 내가 직접 병원에 가서 조회해 보면 되니까. 네 건강검진 결과 정도는 나도 조회할 자격이 있어.”
  • 진호는 그 병원 외과 과장 신분이었기에 건강검진 결과 하나 조회해 보는건 그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었다.
  • ‘실수했네…’
  • “네가 직접 말할래, 아니면 내가 찾아볼까. 네가 선택해.”
  • 그가 계속해서 그녀를 몰아세웠다. 수화기 너머에서 순간 정적이 흘렀다. 너무 조용하다 못해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이에 신지수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 “암이래. 위암 말기.”
  • 진호는 아무 말이 없었다.
  • “……”
  • 무언가 꾹 참고 있는 듯 흐트러진 숨소리가 끊임없이 수화기를 통해 그녀의 귓가에 전해져왔다.
  • “어떻게 그럴 수가… 넌 아직 그렇게나 젊은데…”
  • 나직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진호의 목소리가 점차 울먹이기 시작했다. 신지수는 휴대폰 너머에서도 그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그녀를 위해 슬퍼해 주고 있었다.
  • 죽기 전 그래도 누군가 자신을 신경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이미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 “병원으로 와, 내가 다시 한번 검사해 줄게.”
  • 신지수는 거절했다.
  • “몇 번을 검사해도 결과는 똑같을 거야, 진호야.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어쩌면 이건 업보일지도 모르지…”
  •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내 말 들어, 지수야. 제대로 입원해서 치료받자. 분명 좋아질 수 있을 거야…”
  • 진호의 목소리에서 슬픔이 배어 나왔다. 자신이 바로 그 분야의 전문의였기에 그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그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신지수는 어쩌다 자기 몸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 진호는 어떻게 신지수를 설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때때로는 본인이 살고 싶은지 아닌지가 아닌 하늘이 살게 해주는지 아닌지 봐야 할 때가 있었다.
  • 그녀의 시간은 이미 제한되어 있었고 병원에서 해준 조언은 입원해서 몇 년 더 버티거나 치료를 포기하고 운명에 맡기라는 것이었다.
  • 어쨌든… 뭐가 됐든 곧 죽는다는 소리였다.
  • “지수야, 너 강우현 씨랑 이혼해. 둘이 함께한 4년 동안 그 사람이 널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라고.”
  • 이혼… 신지수는 강우현과의 이혼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그녀에게는 그가 자신의 전부였고, 평생을 들여서라도 잡고 싶은 빛이었다. 하지만 빛이 손에 잡힌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 신지수는 힘주어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 손 마디가 새하얘질 정도로 엄청난 힘을 주어서 말이다.
  • “생각해 볼게.”
  • 강우현과 이혼한다는 건, 마치 산채로 가슴에서 살 한 덩이를 도려내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진호는 그런 그녀에게 다음날 바로 병원에 다시 한번 가보라고 당부했다. 이에 신지수는 입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정말로 마음에 담아둔 것은 아니었다.
  • 강우현의 아내라는 것 말고도 그녀는 신우 그룹을 책임지고 있는 대표이사이기도 했기에 늘 이런저런 일들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인간의 인내력은 낙타와 같아서 힘든 상황에서도 엄청난 무게를 짊어진 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하지만 낙타를 죽게 만드는 건 늘 등 위에 더 올려진 지푸라기 하나, 고작 그 정도의 무게였다.
  • 통화가 끝나자, 신지수는 되는대로 침대 머리맡 탁자 위에 휴대폰을 던져놓았다.
  • 계속 아파오는 위 때문에 오늘밤은 쉽게 잠들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에, 그녀는 서랍을 열어 약을 두 병 꺼내 들었다.
  • 한 병은 진통제, 한 병은 수면제, 각각 두 알씩을 꺼내 삼킨 뒤, 그녀는 침대 위에 누웠다.
  • 약이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는 몰라도 의식이 조금씩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녀는 끊임없는 악몽에 시달렸다.
  • 마치 가위에 눌린 듯 가슴이 묵직한 무언가에 눌려 숨이 막혀와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저항했다.
  • 그렇게 몸부림치며 깨어난 그녀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건 귀신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건 분명 강우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