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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천천히 생각해

  • 몇몇 사람이 인사를 나누었다. 외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듯이 손 어르신과 최 어르신이 오랜 신분을 유지해 왔고 두 집안은 그야말로 상업계를 제패했다고 할 수 있었다.
  • 다만 손 어르신은 몇 년 전에 회사를 팔고 상업계에서 물러났는데 그동안 다른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손녀를 데리고 세계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 하지만 손씨 가문의 지위는 여전히 전국 각지에 상당하게 퍼져 있었다.
  • 안유준은 어르신이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 세계 명화 한 폭과 가치가 수백억에 달하는 성남의 땅… 등등이 있었다.
  • 손씨 가문의 선물은 그야말로 호탕했다.
  • 손정아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쯧쯧, 멀쩡한 돈을 이렇게 최씨 가문 사람 손에 건네다니…
  • 그러나 다행인 것은 안유준이 그녀의 정체를 까발리지 않았던 것이다. 정체가 탄로나면 재미가 없을 것이 뻔했다. 재물과 권력에 눈이 먼 최 사모님은 어쩌면 3개월 뒤에도 자신을 보내지 않을 수도 있었다.
  • 최성운은 자신이 돈이 그토록 많은 걸 알면 그녀를 사랑하게 될지도 몰랐다.
  • 손정아가 속으로 궁리하고 있던 그때 서아연의 친구가 입을 열었다.
  • “손씨 가문 진짜 통이 크네. 참, 아연아. 너 전에 파리 패션위크에서 손씨 가문 손녀를 만났다고 했잖아!”
  • 서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 “맞아, 진짜 예쁘게 생겼어!”
  • “아연이 진짜 대단해, 심지어 손녀 카톡까지 추가했다니까. 그녀는 아연이에게 서울에 놀러오면 아연이를 찾겠다고 했대.”
  • 서아연의 다른 친구가 또 입을 열었다.
  • “와! 아연아, 너 진짜 대단하다!”
  • 그 말을 들은 손정아는 눈썹을 약간 치켜올리고 옆에 있는 서아연을 바라보았다.
  • 눈길을 알아챈 서아연도 고개를 돌렸다.
  • “왜 그래요, 손정아 씨?”
  • “손씨 가문 작은 손녀를 본 적 있다고요?”
  • 서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 “왜요? 아연이가 너무 부러워서 그러죠! 똑같은 손씨인데 당신 같은 촌뜨기는 그 분과 거리가 한참 멀죠.”
  • 서아연 친구의 말을 들은 손정아는 순간 웃음을 터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바보 보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 서아연은 그녀의 미소가 왠지 뜬금없다고 느껴졌다. 설마 손정아는 자신이 손씨 가문 손녀를 만난 적 없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럴 리 없잖아. 그녀가 어떻게 알겠어, 분명 쓸데없는 생각일 거야.
  • 한창 당황하고 있던 서아연은 손정아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입가에 비웃음 섞인 미소를 띤 채 탄식하며 떠나는 걸 발견했다.
  • 이성은 자신에게 손정아가 알지 못하는 것이 맞다고 했지만 서아연은 속으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분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
  • 시골 촌뜨기가 무슨 배짱으로 저런 태도야. 분명 아무 빽도 없으면서 엄청 잘난 척하네, 하!
  • 머리가 띵하며 방법 하나가 떠오른 서아연은 손정아의 뒷모습을 보며 독한 미소를 지었다.
  • 손정아는 럼주 한 잔을 들고 홀로 사람이 적은 구석으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기분에 직감적으로 바라본 손정아는 인파를 뚫고 마침 최성운과 눈이 마주쳤다.
  • 최성운은 손정아가 피아노 연주를 마친 뒤부터 그녀에게서 시선을 뗀 적이 없었다.
  • 그녀가 어떻게 피아노를 칠 줄 알고 타고난 듯한 고귀한 분위기는 절대 시골에서 온 여자가 지닌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던 최성운은 손정아가 자신을 바라보자 바로 정신을 차렸고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렸다.
  • 하지만 손정아가 바로 그를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힐끗 쳐다보고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걸 발견했다.
  • 최성운은 이유 모를 화가 치밀어서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 손정아는 럼주 한 모금 마신 뒤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고개를 숙이고 비웃었다.
  • 그녀는 최성운이 방금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 했는지 알고 있었다. 마음이 좁고 편견이 있고 오만한 그와 같은 남자는 그녀가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걸 구경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를 잘 치는 그녀를 보고 지금은 엄청나게 놀란 것이다.
  • 천천히 생각해!
  • 그녀는 자기중심적인 남자를 알고 지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 3개월 동안은 마음 수련한다고 생각하며 놀아주면 그만이었다.
  • 홀로 한참 앉아있다가 시간이 얼추 되자 손정아는 밖으로 나가 먼저 떠나려 했다.
  • 그녀가 택시를 타려는데 뒤에서 갑자기 최성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 “누가 당신더러 말도 없이 혼자 떠나라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