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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최성운의 침대에 오르다

  • 손정아는 이곳이 다른 사람 방이라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욕실에 전부 남성용 생필품인 것을 보고 최씨 가문 사람들이 일부러 그런 거라 생각했다.
  • 정말 이상한 곳이야.
  • 그래도 겨우 3개월이었다. 그녀는 할아버지와 내기했는데 최씨 가문에서 지내는 3개월 동안 만약 최성운과 여전히 아무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혼약을 파기하기로 한 것이다.
  • 샤워를 마치고 도우미가 가져다 준 저녁밥을 먹은 손정아는 하루 종일 피곤했던 탓에 깊은 잠에 빠졌다.
  • 깊은 밤, 최성운이 접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열두 시였다.
  • 그는 오늘 손정아가 최씨 가문에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최 어르신이 최성운에게 손정아 마중을 가라고 했지만 그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약혼녀에게 관심도 없고 언젠가는 파기될 혼약이었기 때문이다.
  • 방으로 돌아온 최성운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 오늘 밤 술을 조금 많이 마신 탓인지 침대에 누운 뒤에야 최성운은 방 안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 잠시 멍해진 최성운은 어둠 속에서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녀가 몸을 뒤집고 그를 안으며 중얼거렸다.
  • “곰돌이, 착하지. 떠들지 말고 빨리 자.”
  • 최성운은 완전히 멍해졌다.
  • 여자의 몸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향기는 그 사람과 똑같았다.
  • 알콜이 머리를 지배한 탓인지 최성운은 아무 거부감 없이 손정아를 안고 잠이 들었다.
  • 그날 밤, 최성운은 전처럼 불면증으로 고생하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 꿈속에서 최성운은 또 10년 전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작고 어두운 방 안, 덩치가 자그마한 소녀가 그를 껴안고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
  • “두려워하지 마, 나 엄청 대단해. 내가 너를 지켜줄게.”
  • 최성운의 꿈속에서 이미 그녀를 찾은 모습은 너무 리얼했다.
  • 다음날, 방문 앞.
  • 일찍 잠들었던 최지연은 아침 일찍 일어났지만 도우미에게서 손정아가 최성운 방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사촌 오빠가 어젯밤 돌아오지 않았어? 하지만 오빠의 차가 주차장에 있는데!
  • 혹시 두 사람 같이 잔 건 아니겠지?
  • 최지연은 참지 못하고 방문을 두드렸다.
  • “오빠, 아줌마가 아침 다 차렸대. 오늘 아침 회의 있다고 하지 않았어? 빨리 일어나!”
  • 방 안에서 달게 자고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깨어났다. 손정아는 자신이 누군가의 품에 기대어있고 누군가 자신을 안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눈이 마주친 순간 깜짝 놀란 손정아는 잠이 확 깼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는 놀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당신 누구예요?”
  • 최성운의 눈빛도 똑같이 싸늘했다.
  • “손정아?”
  • 손정아도 이 사람이 바로 말로만 듣던 자신의 약혼자 최성운이라는 걸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남자가 지금 왜 자신의 침대 위에 있는지는 누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 설명을 듣기 전에 최성운이 이어 말했다.
  • “최씨 가문에 들어온 첫날부터 내 침대에 기어오르다니. 하, 당신 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네.”
  • 손정아는 멍한 표정으로 최성운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그녀가 최성운의 침대에 기어올랐다고?
  • 최씨 가문 사람들 전부 피해망상증 있는 거 아냐?
  • 하지만 어제 방 안에 있던 남성용품을 연관시켜보니 이 방이 최성운 방이라는 걸 추측할 수 있었다. 최지연이 일부러 그런 것이다.
  • 손정아는 침대에서 내려와 싸늘하게 말했다.
  • “첫째, 난 당신 침대에 기어 올라간 적 없어요. 최지연이 어제 이곳이 나의 방이라고 얘기한 거예요. 난 최 도련님 당신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요.”
  • “둘째, 어젯밤 나는 일찍 잠들었어요. 최 도련님은 돌아와서 침대 위에 사람이 있는 것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밤새 나를 안고 잔 건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 설마 진작 나한테 다른 생각 품은 건 아니죠?”
  • 최성운은 손정아의 말에 사레가 들어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어젯밤 기억이 떠오른 그는 순간 반박할 수 없었다.
  • 손정아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더욱 놀라고 말았다.
  • 한 쌍의 도화안이 그녀와 너무 닮았다.
  • 그 모습을 본 손정아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 “왜요? 왜 나를 그렇게 쳐다봐요? 설마 정말 나한테 반했어요?”
  • 정신을 차린 최성운은 굳은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 “나가, 앞으로 이 방에 들어오지 마.”
  • 손정아는 당연히 더 이상 머물지 않고 자신의 물건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 첫 만남부터 서로 미워하게 되었다.
  • 여전히 문 앞에 서 있던 최지연은 손정아가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손정아는 그녀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좋은 아침이야! 네 바람대로 너희 사촌 오빠가 어제 밤새 나를 안고 잤어. 우리 두 사람 아주 좋은 밤이었어.”
  • “허튼소리 하지 말아요.”
  • 최지연은 굳은 표정으로 어떻게 된 일일지 생각했다.
  • 정상이라면 사촌 오빠는 손정아를 좋아할 수 없었다.
  •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사실은 손정아가 어젯밤 최성운과 같이 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