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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숙이 빠져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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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

Last update: 2024-04-26

제1화 최씨 가문 첫 입성

  • 서울시, KTX 역.
  • 흰 티에 청바지를 입은 여자가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 그녀는 외모가 빼어나고 웨이브 섞인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날리고 있었다. 예쁘게 휘어진 눈썹 아래 맑고 빛나는 도화안이 보였고 오뚝한 코와 앵두 같은 입술은 생얼인데도 저도 모르게 눈이 번쩍 떠지게 했다.
  • “안녕하세요, 손정아 씨 맞으십니까? 저는 최씨 가문 기사입니다.”
  • 고개를 끄덕이고 심드렁하게 기사를 따라 차에 탄 손정아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 KTX 역을 떠난 차가 달리는 중 기사는 저도 모르게 백미러를 통해 뒤에 눈을 감고 앉아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 이 사람이 바로 최 대표님 약혼녀구나.
  • 최성운이 어떤 사람인가? 최씨 그룹 대표님인 그는 겨우 21살이지만 일처리가 신속하고 수단이 뛰어나서 상업계에서 두려울 게 없는 인재였다.
  • 얘기하면 웃기지만 최 어르신은 몇 년 전에 최성운에게 혼약을 하나 맺어주었다. 그런데 상대가 뜻밖에서 아무 배경도 없고 시골에서 KTX를 타고 온 손정아라니?
  • 기사는 단순한 손정아의 얼굴을 보며 저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신데렐라가 공주님이 되려면 어렵지!
  • 그때, 뒤쪽에 앉아있던 손정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도시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을 아주 차분했다.
  • 차는 빠르게 최씨 가문에 도착했고 기사가 손정아를 도와 짐을 들어주었다.
  • 문에 들어서자마자 문 앞에 서 있던 한 귀부인이 앞길을 막았다. 그녀는 손정아를 하찮게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 “이 아줌마.”
  • “네, 사모님.”
  • 이 아줌마는 소독제 한 병을 들고 손정아의 온몸에 칙칙 뿌렸다.
  • 최 사모님이 옆에서 입을 열었다.
  • “그리고 신발, 머리 어디도 빠뜨리지 마.”
  • 코를 찌르는 자극적인 냄새에 손정아는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고 청아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당신들 미쳤어요?”
  • 그 말에 최 사모님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 “역시 시골에서 온 것답게 호칭도 모르고 교양이 없네. 네 몸에 세균이라도 달고 왔을까 걱정돼서 그러는 거잖아. 만약 우리 최씨 가문 사람들에게 옮기기라도 하면 어떡해?”
  • 평소 같았으면 진작 화를 내고 떠났을 테지만 어쩔 수 없었다.
  • “그럼 아주머니 당신 입에도 소독제 좀 뿌려야겠네요, 너무 지저분하잖아요…”
  • 말을 마친 손정아는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 “너…”
  • 화가 치민 최 사모님이 손정아의 뒷모습을 손가락질하자 이 아줌마가 빠르게 옆으로 다가가서 위로했다.
  • 집안에는 손정아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여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은 여자는 똑같이 손정아를 하찮게 쳐다보았다.
  • “당신이 사촌오빠 약혼녀 손정아 씨예요?”
  • 브랜드도 알 수 없는 손정아의 옷을 본 최지연이 무시하는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 “할아버지도 정말 나이가 드셔서 안목이 너무 별로야. 기차 타고 왔다면서요. 일찍 얘기했으면 우리 최씨 가문에서 비행기 티켓 사줬을 텐데. 하긴, 당신들 시골에는 공항도 없겠네요.”
  • 손정아는 최지연을 바보 보듯 쳐다보았다.
  • 최씨 가문 사람들은 다 이렇게 오만한 거야?
  • 그녀 집에 공항은 없어도 할아버지가 그녀를 위해 서울로 오는 KTX를 전세냈기에 아무도 KTX 전체에 혼자 탄 손정아의 기분을 느껴볼 수 없었다.
  • 그녀가 원하기만 하면 어르신은 아예 개인 전용기로 그녀를 배웅했을 것이다.
  • 그들과 해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손정아는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 무시당한 최지연은 푸르뎅뎅한 얼굴로 따라갔다.
  • “내 방 어디예요?”
  • 손정아가 뒤에 있는 도우미에게 물었다.
  • 도우미가 미처 답하기도 전에 최지연이 올라와서 먼저 얘기했다.
  • “여기예요.”
  • 최지연이 방문을 열며 말했다.
  • “아마 이렇게 크고 좋은 방에서 지내본 적 없을 거예요! 최씨 가문에서의 생활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난 성운 오빠의 사촌여동생 최지연이라고 해요. 당신은 나한테 잘 보여야 해요, 어느 날…”
  • 최지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정아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쾅 하는 문 닫히는 소리에 최지연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
  • “악! 겨우 시골에서 기어 온 게 감히 이렇게 나대? 할아버지 진짜 보는 눈 엉망이네!”
  • 도우미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 “아가씨, 여긴 최 도련님 방이잖아요?”
  • 최지연은 시답지 않은 듯 방문을 힐끗 쳐다보았다.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요, 사촌오빠는 다른 사람이 자기 물건 만지는 거 제일 싫어하니까 나중에 그녀가 스스로 여기서 지내려 했다고 말해요.”
  • 최지연의 눈이 반짝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