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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절대 잊지 않다

  • 손정아는 서류를 분류대로 나눠놓았다. 기억력이 아주 좋았던 그녀는 한 번 본 내용은 절대 잊지 않았다. 속으로 서류 내용을 대충 이해한 다음 최종 필요한 데이터를 확인하고서야 입력을 시작했다.
  • 과정이 번잡하긴 했지만 그녀에게 난이도가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곧 손에 익었고 속도도 갈수록 빨라졌다.
  • 빠르게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리에 주의를 끌린 다른 직원들이 작은 소리로 의논했다.
  • “손정아 씨 타자소리가 얼마나 빠른지 봐봐요, 내 속도가 충분히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절대 비교가 안 되겠어.”
  • “시골에서 와서 이런 건 절대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을 아주 깔끔하게 할 줄을 몰랐어.”
  • “맞아, 그거 봤어? 오늘 오전에 일할 때도 아주 효율적이었어. 비록 시골에서 오긴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어. 아니면 어떻게 최 대표님의 약혼녀가 될 수 있었겠어. 게다가 이 혼약은 최 어르신이 정한 거라고 하던데 최 어르신이 바보도 아닐 거잖아.”
  • “그러면 또 어때? 최 대표님이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 못 봤어? 그녀는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 하는데 지금은 비서장한테 미움까지 샀어. 오늘도 일부러 저런 힘든 일을 맡겼으니 앞으로 절대 편히 지내지 못할 거야. 그녀가 얼마나 버티는지 봐야지.”
  • “에휴, 몰라몰라. 우리가 신경쓸 일도 아니고 부주의해서 우리한테 불똥이 튀면 안 되지…”
  • “…”
  • 사람들의 의논 소리가 나지막하게 귓속을 파고 들었지만 손정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에만 집중했다.
  • 그녀는 너무 힘들게 일할 생각하지 않고 배 고프면 간식을 먹고 목이 마르면 차를 한 잔 마시고 피곤하면 화장실에 가면서 스트레스를 완화했다.
  • 저녁 퇴근시간이 됐지만 오늘 업무량이 많았던 탓에 대부분 사람은 퇴근을 서두르지 않았다. 손정아는 먼저 저녁을 먹고 다시 천천히 돌아와 일에 몰두했다.
  • 그녀는 절대 배를 곯으면 안 되는 성격이었기에 밥은 꼭 제시간에 먹어야 했다.
  • 하여름은 그녀가 돌아오자 화가 나서 책상을 탕 쳤다.
  • “손정아 씨! 일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어디 함부로 싸돌아다녀요! 내일 필요하니까 오늘 반드시 이 데이터 통계를 마쳐야 한다고 내가 얘기했잖아요. 그런데 당신은 간식 먹고 물 마시고 또 조금 지나서는 함부로 나가고 대체 어쩌겠다는 거예요! 하기 싫으면 대놓고 얘기해요, 내가 다른 사람한테 맡길 거니까. 당신 때문에 일이 지체돼서 내일 회사에 손실을 입히면 책임질 수 있겠어요?”
  • 하여름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손정아는 손을 들어 귀를 후비적거렸다.
  • “오늘 안에 완성하면 된다고 했잖아요. 아직 7시도 되지 않았고 나도 생각이 있어요.”
  • “여기서 큰소리치지 말아요. 당신은 일을 얼마 한 것 같지도 않은데…”
  • 하여름이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손정아가 한 마디 외쳤다.
  • “그만 해요!”
  • 하여름은 바로 입을 다물었고 다른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 손정아는 평소에 시끄러운 사람을 가장 싫어했다. 그런데 하여름은 하필이면 한 번 또 한 번 성가시게 굴었다.
  • “지금 이런 말 내일 내가 완성하지 못하면 그때 다시 얘기해요. 이제 일을 시작해야겠으니 지금 당장 내 앞에서 떠나줘요. 나한테 영향 주고 있다고요, 알겠어요? 당신이 계속 여기서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마지막에 업무를 완성하지 못하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당신이 나한테 영향 줬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때문에 최종 책임은 내가 아니라 당신한테 있는 거예요.”
  • 하여름은 손정아의 카리스마에 깜짝 놀랐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린 뒤 달갑지 않은 마음에 화가 치밀어서 더욱 화가 났다.
  • “아주 잘났어… 벌써 나한테 책임을 떠넘긴다 이거예요? 그래요! 내일 완성하는지 두고 볼 거예요!”
  • 하여름은 잔뜩 화난 얼굴로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손정아에게 화풀이를 하지 못했던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 “오늘 일 다 끝내지 못하면 아무도 퇴근할 생각하지 마요!”
  • 손정아는 냉소를 지을 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일했다.
  • 다른 직원들이 하나둘 떠나고 사무실에는 손정아 혼자 남았다.
  • 저녁 9시 반이 되자 손정아는 마지막으로 키보드를 탁 누르며 모든 일을 마무리했다.
  •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아마 오늘 저녁밥도 먹지 못하고 쉴 새 없이 10시나 11시까지 서둘러야 완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효율적으로 시간을 계획했기에 홀가분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