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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공평하게 처리하다

  • “백소희 씨, 나 최 대표님에게 할 얘기 있어요.”
  • 하여름은 빨간 옷을 입은 여자를 힐끗 쳐다보고 이내 만인이 주목하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 백소희?
  • 손정아는 그제야 이 여자가 최씨 그룹 산하 청아 주얼리의 디자인팀 팀장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듣기로는 백씨 가문과 최씨 가문 친분으로 인해 백소희가 어린 나이에 팀장이 된 거라고 했다.
  • “나도 대표님에게 보고드리고 있어요. 하 비서는 선착순이라는 거 몰라요?”
  • 백소희는 불만 가득하게 입을 열었다.
  • 최성운은 등을 뒤로 기대며 차가운 눈길로 손정아를 담담하게 훑어보다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 아침에 전화해서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 왜 지금은 온몸이 엉망이 돼서 화가 잔뜩 난 하여름에게 끌려온 거야?
  • 최성운은 디자인 도안을 백소희에게 건넸다.
  • “돌아가서 다시 수정해.”
  • “네, 최 대표님.”
  • 백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디자인 도안을 받고 옆에 물러날 뿐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 최성운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 “무슨 일이야?”
  • “최 대표님, 손정아 씨가 오늘 무단결근을 했습니다. 저는 절대 저희 비서팀에 이토록 회사 규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남겨둘 수 없습니다.”
  • 하여름은 적반하장으로 먼저 고자질했다.
  • 소문에 의하면 손정아는 최 어르신이 최 어르신에게 억지로 밀어붙인 약혼녀이고 최성운은 그녀에게 아무 감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싫어한다고 했다. 만약 기회를 빌려 최성운을 도와 손정아를 쫓아내면 최성운은 틀림없이 그녀를 다시 볼 것이다.
  • “그녀는 나한테 반차 신청했어.”
  • 최성운은 손에 든 펜을 만지작거리며 얇은 입술을 달싹였다.
  • 놀란 하여름은 입만 벙긋거릴 뿐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 최성운이 시골 출신 약혼녀를 엄청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어? 왜 그녀 편을 드는 거지?
  • “됐어, 다들 나가!”
  • 최성운은 넥타이를 약간 풀었다. 맑은 목소리에는 약간 짜증이 섞여있었다.
  • 하여름과 백소희가 몸을 돌려 입구로 걸어가던 그때 손정아가 목을 가다듬었다.
  • “하여름 씨, 잠시만요!”
  • 하여름은 걸음을 멈추었다.
  • “뭐예요?”
  • 손정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 “어젯밤 일에 대해 나한테 설명해야 하지 않겠어요?”
  • “어젯밤 무슨 일이요?”
  • 하여름은 부자연스럽게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 “일부러 나에게 데이터를 가져다준다고 해서 나를 회사에 남아 야근하게 했지만 사실은 추가 처리할 데이터가 아예 없었잖아요.”
  • 손정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 “나를 일부러 회사에서 밤새 기다리게 한 거 설명해야 하지 않겠어요?”
  • 손정아가 대놓고 최성운 앞에서 어젯밤 일을 언급할 줄 몰랐던 하여름은 안색이 변했지만 일부러 침착한 척했다.
  • “손정아 씨,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난 어제 그저 당신한테 일을 다 마치면 집에 돌아가라고 했잖아요, 내가 무슨 데이터를 가져다준다고 그랬어요? 잘못 들은 거 아니에요?!”
  • 하여름이 인정하지 않을 걸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손정아는 서두르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어 버튼을 눌렀다.
  • 하여름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
  • “방금 진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는데 추가해야 할 데이터가 있다고 했어요. 내가 지금 가져다줄 테니 기다려요.”
  • “당신!”
  • 손정아가 어젯밤 통화를 녹음할 줄 몰랐던 하여름은 입술을 깨물며 반박하려 했다.
  • “최 대표님, 그런 게 아니에요. 손정아 씨 말 믿지 마세요, 실은…”
  • 손정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음기를 띤 채 하여름의 말을 끊었다.
  • “하 비서님, 이 녹음이 가짜라고 말하려는 거예요? 내가 사람을 찾아 합성한 거라고요? 그건 아주 간단하죠. 전문가를 찾아 감정만 하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바로 알 수 있어요.”
  • 하여름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녀는 정말 이 녹음이 가짜이고 손정아가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는 거라 말할 속셈이었다. 그런데 손정아의 말에 그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만약 최성운이 정말 전문가를 불러 감정하면 어떻게 하지?
  • “난…”
  • 하여름이 힘겹게 입을 열려는데 최성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손정아 씨한테 사과해.”
  • 일이 이토록 순조로울 줄 몰랐던 손정아는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하여름은 최씨 그룹의 오랜 직원이었고 최성운은 손정아를 쳐다보기도 싫어했기 때문이다.
  • 어찌 보면 최성운도 사리 분별을 못하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