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운은 속에서 들끓는 분노에 손을 들어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그를 더 화나게 만든 건 최성운 자신이었다. 그녀와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순간 그는 조금 전 왜 차 안에 침묵이 감돈다는 이유로 화제를 찾아 그녀와 얘기를 나누려 했는지 생각할수록 괴로웠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가 입구에 멈추자마자 최성운은 빠르게 차에서 내렸다. 손정아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우아하게 차에서 내려 문으로 들어갔다.
최성운은 거실 소파에 앉아 손에 물 한 잔을 들고 있었다. 손정아는 그를 지날 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천천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최성운은 컵을 쾅 하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손정아는 그 소리를 듣고도 전혀 기복 없이 계속 위층으로 올라갔다.
겨우 그 정도 우스갯소리에 이렇게 화를 내? 속이 좁아터진 남자네!
이런 사람이 최씨 그룹 대표님이라고? 집안 사업을 망칠까 두렵지도 않은 걸까?
…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를 할 때 손정아는 또 최 사모님과 최지연 두 사람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손정아는 두 사람을 공기 취급하며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예상한 효과를 얻지 못한 최 사모님과 최지연은 도리어 본인들이 더 화가 났다.
손정아는 어릿광대 구경하듯 전혀 마음에 두지 않고 아침을 먹은 뒤 바로 회사로 출근했다.
손정아의 업무능력은 아주 대단했다. 일개 비서 업무는 그녀에게 일도 아니었기에 오전 일찍 업무 처리를 마치고 점심 시간에는 잠시 쉬기도 했다.
오후 세 시, 그녀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책상 위에는 서류 한 무더기가 더 늘었다.
하여름이 옆에 서 있는 것을 본 손정아는 그녀의 걸작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게 뭐예요?”
하여름이 명령조로 말했다.
“이 서류들은 오늘 내에 전부 컴퓨터에 입력해요. 원래는 다른 동료가 정아 씨와 함께 분담했어야 하는데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휴가를 냈으니 혼자 할 수밖에 없겠네요. 기억해요! 반드시 오늘 완성해서 데이터를 정리해야 해요. 내일 써야 하니까요.”
손정아는 대충 서류를 넘겨보았다. 전부 하나하나 컴퓨터에 입력하는 자질구레한 일은 시간이 많이 들었기에 만약 오늘 그녀 혼자 완수하려면 야근을 할 것이 뻔했다.
“급한 거면 왜 나한테 일찍 주지 않았어요?”
하여름은 당당하게 말했다.
“원래 계획에 변화가 생겨서 나도 방금 지시를 받았어요. 업무에 돌발상황이 생기는 것도 정상이지, 지금 태도가 왜 그래요? 설마 불평하는 거예요? 손정아 씨, 비록 당신이 최 대표님의 약혼녀이긴 하지만 회사에 출근하러 왔으니 응당 자신의 직책을 다 하고 해야 할 일을 다 해야 하지 않겠어요?”
하여름이 속으로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지 손정아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이미 회사에 온 이상 해야 할 일은 당연히 해야 했다.
“당연하죠.”
말을 마친 손정아는 자리에 앉아 서류를 넘겼다.
하여름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녀는 일찍 위에서 하달한 통지를 받았지만 일부러 이제서야 손정아에게 얘기한 것이다. 그리고 하여름은 또 일부러 다른 직원에게 휴가까지 주었다.
이 업무량이면 10시까지 야근하지 않으면 오늘 내에 완수하지 못할 것이다. 분명 허리가 시큰거리고 삭신이 쑤시겠지.
“기억해요, 꼭 자세하게 한 번 또 한 번 체크해야 해요. 어떠한 오차도 없이 모든 숫자가 다 정확해야 해요. 아니면 나중에 어떤 숫자 하나 때문에 최종 데이터 통계에 오류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손정아는 귀찮은 듯 하여름을 흘겨보았다.
“다른 일 남았어요? 할 말 있으면 한 번에 얘기해요.”
“없어요.”
“없으면 가 봐요. 하여름 씨는 할 일이 없어요?”
하여름은 다른 직원들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손정아가 아무리 최 대표님의 약혼녀라 해도 지금은 일개 비서일 뿐이고 그녀는 비서장인데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다니.
시골에서 온 촌뜨기가 뭐가 이렇게 오만해. 그녀는 목을 빳빳하게 쳐들고 있는 손정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여름은 손정아를 매섭게 노려보고 돌아서서 떠나며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흥! 천천히 해, 이 정도로 끝날 거라 생각하지 마! 다른 것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너 같은 사람은 여기서 도와줄 사람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