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13화 손정아 어디 갔어?

  • “이미 열한 시가 다 됐는데 손정아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어디서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네.”
  • 목이 말라서 물 마시러 내려온 최성운의 귀에 최지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 최 사모님이 이어 말했다.
  • “역시 시골에서 온 것답게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런지 행동거지가 신중하지 못해. 이렇게 늦게 어디서 싸돌아 다니느라 돌아오지 않는지 모르겠어!”
  • 최성운은 들을수록 이상했다. 하지만 어제 자신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떠올리니 이상한 기분이 바로 사라졌다.
  • 어차피 그녀가 뭘 하든 크게 상관없었다.
  • 최 사모님은 일부러 최성운이 들으라는 듯 말했다.
  • “성운아, 손정아 그 여자 혼자 행동가짐이 바르지 않은 건 괜찮아. 하지만 소문이라도 나서 네 이름에까지 먹칠하면 큰일이야. 어쨌든 이제는 적지 않은 사람이 그녀를 본 적 있고 그녀가 네 약혼녀라는 거 알잖아. 내 생각엔 하루빨리 이 혼약 물리고 그녀를 우리 집에서 내보내는 게 좋겠어. 계속 이대로 이어가다가 언젠가는 무슨 일이 생길 거야. 나중에 우리 최씨 가문더러 책임지라고 하면 우리가 너무 억울하잖아.”
  • 최성운이 담담하게 말했다.
  • “할아버지께서 3개월 뒤면 혼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했어요.”
  • “3개월을 더 기다려야 해?”
  • 최 사모님이 소리를 질렀다.
  • “이제 겨우 며칠째인 것도 이미 참을 수 없단 말야. 너 할아버지랑 얘기해서 빨리 손정아 쫓아버려.”
  • “그럼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얘기하세요.”
  • 최성운은 최 사모님을 슥 훑어보았다.
  • 최 사모님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혼약 파기 얘기를 꺼내면 틀림없이 된통 혼날 것이다.
  • 최성운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 서재에 도착하자 책상 위에 놓은 휴대폰 액정이 켜지며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 메시지를 누르자 단 세 글자가 보였다.
  • “살려줘.”
  • 낯선 번호인 것을 보고 장난 문자일 거라 생각한 그는 무시하고 계속 마지막 업무를 처리했다. 하지만 계속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 어느새 새벽이 되고, 최성운은 씻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 그녀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어디 간 걸까?
  • 최성운은 눈을 감았다. 됐어, 그녀가 어디 가든 무슨 상관이야!
  • 몇 초 뒤, 그는 다시 몸을 뒤척였다. 정상적이라면 그녀는 이곳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 구조 문자를 떠올린 그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나서 최 어르신과의 문자 기록을 뒤적였다.
  • 전에 어르신이 그에게 손정아의 번호를 보냈지만 저장하지 않았다.
  • 그제야 그는 아까 구조 문자가 손정아가 보낸 것이라는 걸 발견했다.
  • 그녀가 위험에 처했다고?
  • 최성운은 벌떡 일어나서 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 그는 순간 당황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 옷을 입은 최성운은 빠르게 밖으로 나가 차에 탔다. 생각하던 그는 어쩔 수 없이 먼저 회사에 가보기로 했다. 적어도 회사에 가면 경비원에게 손정아가 언제 회사를 떠났는지 물을 수 있었다.
  • 회사에 도착한 최성운이 칠흑같이 어두운 건물을 발견하고 묻자 경비원이 답했다.
  • “전기회로에 문제가 생겼는데 새벽에 수리하는 기사가 올 테니 직원들 출근에는 영향이 없을 겁니다.”
  • 손정아의 행방을 묻자 경비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본 적이 없습니다.”
  • 최성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 “출근을 안 했어요?”
  • “아침에 출근하는 건 봤습니다만, 퇴근할 때 나오는 건 못 봤네요.”
  • 경비원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 “절대 잘못 기억했을 리 없습니다.”
  • 최근 손정아는 회사에서 핫한 인물이었기에 많은 사람이 그녀를 주시했다. 만약 손정아가 눈앞에서 지나갔다면 경비원이 못 봤을 리 없었다.
  • 그 말은 손정아가 아직도 건물 안에 있다는 말인가? 그러면 왜 그에게 구조 문자를 보냈을가?
  • 경비원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 “참, 오늘 몇몇 직원이 말하는 걸 들었는데 비서장이 손정아 씨에게 아주 많은 일을 맡겨서 오래 야근해야 할 거라고 하던데 혹시 야근하다 힘들어서 잠든 게 아닐까요?”
  • 더 짐작할 겨를 없이 최성운은 일단 올라가기로 했다. 경비원도 그를 따라 함께 올라가서 불을 비춰주었다.
  • “손정아?”
  • “손정아!”
  • 최성운이 몇 번 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손정아 책상 앞으로 걸어가자 그녀의 가방이 책상 위에 놓여있고 밑을 내려다보니 두 다리가 보였다.
  • 최성운은 다급하게 몸을 쪼그렸고 경비원의 불빛도 따라 밑을 비추었다.
  • 불빛 아래, 최성운은 손정아가 창백한 얼굴로 웅크리고 앉아 온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걸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