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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강한 부정은 곧 강한 긍정

  • 지금 이토록 점잖고 예절 밝아 보이는 이 남자가 그녀의 목을 조를 만한 사람처럼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 하율은 점점 그가 사이코같이 느껴졌고 속으로는 이미 그한테 ‘접근금지’라는 딱지를 붙여놨다.
  • 사도한은 하율의 인터뷰에 꽤나 협조적이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하율이가 물었다.
  • “내일 시간 돼? 촬영해야 돼.”
  • 사도한은 단칼에 거절했다.
  • “단독 인터뷰만 허락한 거지, 촬영은 안돼.”
  • 하율은 화를 꾸역꾸역 삼켰다.
  • “촬영도 단독 인터뷰의 일부야. 인터뷰를 동의했으면 촬영도 네 의무고.”
  • “이미 내 한계야.”
  • 사도한은 꿈쩍도 하지 않고는 밀렸던 서류들을 검토하면서 입을 열었다.
  • “일 끝났으면 집 가서 짐 싸고 있어. 이따가 집 밑으로 데리러 갈 거야.”
  • “그래, 알겠어.”
  • 하율은 꾸물거리며 자료를 정리하는 척하면서 핸드폰 카메라를 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갈 때 몰래 그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하율은 성호 그룹 빌딩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경호원 두 명이 붙었다.
  • 혹시라도 그녀가 도망칠까 사도한이 붙여뒀던 것이다.
  • 하율은 경호원과 함께 잡지사에 갔다가는 괜히 시끄러워질 것만 같아서 휴가를 내고 짐 싸러 집으로 향했다.
  • 저녁 8 시쯤, 하율의 핸드폰은 울렸고 모르는 번호가 표시되었다.
  • “오분 내로 내려와.”
  • 이 익숙한 목소리는 사도한이었다.
  • 하율은 어이가 없었다.
  • 뭐 이렇게 제멋대로야, 진짜 자기가 뭐 세종대왕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봐! 진짜 짜증 나!
  • 차에 타보니 사도한도 차에 앉아 있었다. 서류를 펼쳐보고 있었고 많이 바빠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차에 타서부터 시동을 걸 때까지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 그녀도 딱히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그와 멀리 떨어져 구석에 앉아있었다.
  • 사도한이 서류를 다 검토했을 때 하율은 이미 한쪽 구석에 쪼그라든 채로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버들잎같이 가늘고 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환한 조명 탓이었는지 깊게 잠들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몸은 사도한 쪽으로 점점 기울어지더니 갑자기 또 자세를 바로 잡았다. 사도한은 이미 깬 줄 알고 빤히 쳐다봤지만 그녀는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 그녀는 추웠는지 두 손으로 어깨를 감싸고 몸을 더 움츠렸다.
  • 사도한은 결국 에어컨 온도를 높이고 차 안의 조명을 낮췄다. 보고 있었던 서류도 내려놓더니 의자에 기대어 눈 감고 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더니 귓가에는 따뜻한 숨소리가 느껴졌다.
  • 사도한은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부릅 뜨고는 ‘원흉’한테 시선을 돌렸다. 곤히 잠든 하율은 무방비 상태로 그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어 있었다. 너무 가까웠던지라 그는 그녀의 긴 속눈썹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녀가 잠든 모습에 그는 부득이 그날 밤이 생각나더니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녀가 다치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힘껏 밀쳐냈다.
  • 하율은 그대로 쿵 하고 의자에 머리를 박았다. 의자는 꽤나 부드러운 재질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아팠는지 그녀는 강제 기상을 했다. 부스스해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얼굴이 일그러진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사도한이 눈에 보였다. 그의 눈빛은 어쩐지 상당히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 “다시는 가까이 붙지 마!”
  • 그 말에 하율은 자기가 모르고 의자에 부딪혔던 게 아니라 그한테 밀려서 의자에 맞았던 것을 눈치챘다.
  • 이 좀생이!
  • 그녀는 그를 흘겨보았다.
  • “내가 뭐 네 어깨가 좋아서 기댄 줄 아냐? 잠 들어서 나도 모르게 그랬던 거 아냐!”
  • 사도한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 “그날 밤도? 인격이란 게 너한테 존재하긴 하냐?”
  • “너….”
  • 하율은 씩씩 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 “됐어! 해명 따위 안 해!”
  • “강한 부정은 곧 강한 긍정이라지.”
  • 참는다, 참아!
  • 차는 교외의 별장 구역에서 좌회전하고 또 우회전하더니 호수가 근처의 럭셔리한 별장 앞에 세워졌다.
  • 들어서자마자 하율은 입이 쩍 벌어졌다.
  • 거실과 2층은 모두 모던한 느낌의 검은색 강화유리로 데코 되어 있었고 계단과 바닥은 웨이브 무늬의 검은색 대리석이었다. 검은색 가죽소파에 검은색 대리석 찻상, 홀은 럭셔리하면서도 부드러웠고 전반적으로 세련된 분위기를 뽐냈다.
  • 사도한같은 차도남 취향이긴 해.
  • 사도한은 가사도우미를 불러왔다.
  • “오 씨 아주머니야. 필요한 거 있으면 이분한테 얘기해.”
  • 오 씨 아주머니는 오십 대 중반으로 보였고 온화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 “하율 씨 방은 이층에 있어요. 따라오세요.”
  • 경호원은 그녀의 짐을 2층 동쪽 끝의 손님방으로 옮겼다. 방은 널찍했고 바닥까지 닿는 통유리까지 있었다. 개인 화장실이며 방안은 없는 게 없었다. 베이지색 벽은 고가의 딥칼라 나무 가구의 우아함을 더 했다. 그리고 핑크색 미니 소파에 흰 옷장, 전체적인 칼라는 핑크였고 침구까지 죄다 핑크색이었다.
  • 사도한의 집에도 이런 방이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