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한은 넓은 책상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커다란 몸집은 하율한테 압박감을 가져다 주었다. 잘생긴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깊게 들어간 두 눈동자는 마치 그녀의 오장육부를 꿰뚫어 보려는 듯 냉랭함만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했다.
“안녕? 우리 또 만났네.”
하율은 입가에 살짝 경련이 일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는 너를 만나고 싶지 않았어! 전혀!
사도한은 냉소를 지으며 그녀를 조롱했다.
“연기력이 아주 뛰어나더군. 사도운의 여자? 게다가 청소부의 옷?”
그가 감시 카메라를 통해 그녀가 무슨 수로 회사 빌딩을 빠져나갔는지를 확인한 순간, 화도 치밀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의 잔꾀에 탄복하기도 했다.
하율은 그의 조롱에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상황에 대해 뭔가 해명이 필요한 것 같지 않아?”
하율은 헛기침을 하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딱히 해명할 것도 없어요. 그날 밤, 우리 두 사람 다 술에 많이 취했잖아요. 그래, 맞아. 취해서 그랬어요.”
사도한은 그녀의 체면을 지켜주지 않으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취했다고? 난 네가 정신이 아주 멀쩡했다고 들었는데? 처음에는 일부러 나한테 접근하고 또 밀당하고, 도대체 네 의도가 뭐야?”
하율은 일부러 모르겠다는 듯 능청스럽게 두 눈을 깜박였다.
“의도라니? 난 정말 그냥 술에 취했을 뿐이야. 난 네가 술집 안의 호스트인 줄 알고 너한테 10만 원의 팁도 줬단 말이야….”
하율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갔다. 왜냐하면 그녀가 말할수록 사도한의 낯빛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단숨에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닥쳐!”
이 일은 그의 인생의 오점으로 남을 희대의 사건이다. 그는 지금 당장 그녀를 죽이고 입막음을 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녀를 향한 살의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도한의 눈빛에 하율은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는 손에 점점 더 힘이 실렸고 그녀는 호흡이 가빠졌다. 그의 강인한 손목을 뿌리치기 위해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끊임없이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밀어내려고 했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사도한은 자신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여자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질려가는 걸 보며 불현듯 손목을 확 뿌리쳤다. 하율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어서 하마터면 바닥에 나뒹굴 뻔했고 두 손으로 차 테이블을 짚고 나서야 겨우 몸에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손바닥이 날카로운 차 테이블의 모서리에 거세게 부딪치는 바람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그녀는 허리를 숙이고 거친 숨을 내뱉으며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리고 눈물이 가득 고인 눈동자로 사도한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너 미쳤어?”
사도한은 그녀가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도록 강제로 그녀의 아랫턱을 붙잡고 말했다.
“이제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겠지?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하율은 정말로 자기가 미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왜 이렇게 사이코 같은 남자를 건드렸을까?
“난 정말 아무 의도가 없었다니까! 우리 그냥 이 일을 없었던 일로 하면 안될까? 절대 이번 일로 너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라고 맹세할게!”
사도한은 그녀의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커다란 두 눈망울에는 여전히 눈물이 마르지 않았기에 오히려 눈동자가 더욱 맑고 투명해 보였다. 길고 촘촘한 속눈썹은 마치 빗속의 나비처럼 잘게 떨리고 있었다. 왠지 사람을 매료시키는 눈빛이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놓고 입가에 힘을 주며 말했다.
“너를 놓아줄 수는 있어. 하지만 앞으로 15일 동안, 넌 반드시 우리 집에서 지내야 해. 네가 임신을 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보내줄 거야.”
하율은 다급히 말을 꺼냈다.
“안돼, 너의 집에서 살 수는 없어!”
만약 그녀가 정말로 임신이라도 해버린 다면 그에게 발각될 수도 있지 않은가!
사도한은 위험한 기세를 내뿜으며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너한테 거절할 권리 따위는 없어!”
“하지만!”
이때, 하율은 위급함 속에서 지혜를 발휘하며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너의 집에서 지낸다면 우리 가족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 남자친구도 불만이 많을 거고!”
사도한은 입가에 조롱이 잔뜩 섞인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너의 가족은 걱정할 필요 없어. 그리고 네 남자친구는…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너한테는 남자친구 따위는 없다고 들었는데? 그나마 유일한 남성 친구도 네 절친의 남편이잖아. 내 말이 맞지?”
“나를 뒷조사한 거야? 그건 내 프라이버시라고!”
하율은 눈이 째지도록 그를 노려봤다.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의 일부에 불과해. 명예가 실추되지 않고 싶으면 순순히 내 말에 복종하는 것이 좋을 거야!”
사도한은 마치 조선 시대의 폭군처럼 다른 사람이 감히 자신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도록 살벌하고 단호했다.
하율은 그가 하는 협박에 가까운 말에 절대적으로 신임이 갔다. 지금은 순순히 그의 말을 듣는 것이 제일 명지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았어, 너의 조건에 동의할게. 하지만 나도 부탁이 하나 있어.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짐이라도 챙기게 해줘.”
사도한은 그녀가 어차피 별다른 수작을 부리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 그건 문제 없어. 너의 신변을 지켜줄 경호원 두 명을 붙여줄게.”
지켜주는 건 핑계일 뿐이고 그냥 감시하기 위한 거겠지! 하율은 몰래 사도한을 힐끗 쏘아봤다.
“내가 이렇게까지 너한테 맞춰 주고 나라를 잃는 듯한 치욕스러운 계약까지 맺었으니 너도 나한테 협조해줘! 이번 단독 인터뷰는 금요일 전까지 정리해서 무조건 회사에 제출해야 해. 너 언제 시간 돼?”
그녀는 자기가 이곳으로 온 주요한 목적을 잊지 않았다.
“지금도 가능해.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 물어봐.”
사도한은 그녀한테 자리에 앉으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뒤 자기도 소파에 앉았다. 그의 앉은 자세는 여유롭고도 방자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