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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우리 또 만났네

  • 사도한은 넓은 책상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커다란 몸집은 하율한테 압박감을 가져다 주었다. 잘생긴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깊게 들어간 두 눈동자는 마치 그녀의 오장육부를 꿰뚫어 보려는 듯 냉랭함만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했다.
  • “안녕? 우리 또 만났네.”
  • 하율은 입가에 살짝 경련이 일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는 너를 만나고 싶지 않았어! 전혀!
  • 사도한은 냉소를 지으며 그녀를 조롱했다.
  • “연기력이 아주 뛰어나더군. 사도운의 여자? 게다가 청소부의 옷?”
  • 그가 감시 카메라를 통해 그녀가 무슨 수로 회사 빌딩을 빠져나갔는지를 확인한 순간, 화도 치밀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의 잔꾀에 탄복하기도 했다.
  • 하율은 그의 조롱에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 “이 상황에 대해 뭔가 해명이 필요한 것 같지 않아?”
  • 하율은 헛기침을 하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 “사실 딱히 해명할 것도 없어요. 그날 밤, 우리 두 사람 다 술에 많이 취했잖아요. 그래, 맞아. 취해서 그랬어요.”
  • 사도한은 그녀의 체면을 지켜주지 않으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 “취했다고? 난 네가 정신이 아주 멀쩡했다고 들었는데? 처음에는 일부러 나한테 접근하고 또 밀당하고, 도대체 네 의도가 뭐야?”
  • 하율은 일부러 모르겠다는 듯 능청스럽게 두 눈을 깜박였다.
  • “의도라니? 난 정말 그냥 술에 취했을 뿐이야. 난 네가 술집 안의 호스트인 줄 알고 너한테 10만 원의 팁도 줬단 말이야….”
  • 하율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갔다. 왜냐하면 그녀가 말할수록 사도한의 낯빛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단숨에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 “닥쳐!”
  • 이 일은 그의 인생의 오점으로 남을 희대의 사건이다. 그는 지금 당장 그녀를 죽이고 입막음을 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었다.
  • 그녀를 향한 살의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도한의 눈빛에 하율은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는 손에 점점 더 힘이 실렸고 그녀는 호흡이 가빠졌다. 그의 강인한 손목을 뿌리치기 위해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끊임없이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밀어내려고 했다.
  •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 사도한은 자신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여자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질려가는 걸 보며 불현듯 손목을 확 뿌리쳤다. 하율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어서 하마터면 바닥에 나뒹굴 뻔했고 두 손으로 차 테이블을 짚고 나서야 겨우 몸에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손바닥이 날카로운 차 테이블의 모서리에 거세게 부딪치는 바람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 그녀는 허리를 숙이고 거친 숨을 내뱉으며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리고 눈물이 가득 고인 눈동자로 사도한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 “너 미쳤어?”
  • 사도한은 그녀가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도록 강제로 그녀의 아랫턱을 붙잡고 말했다.
  • “이제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겠지?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 하율은 정말로 자기가 미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왜 이렇게 사이코 같은 남자를 건드렸을까?
  • “난 정말 아무 의도가 없었다니까! 우리 그냥 이 일을 없었던 일로 하면 안될까? 절대 이번 일로 너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라고 맹세할게!”
  • 사도한은 그녀의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커다란 두 눈망울에는 여전히 눈물이 마르지 않았기에 오히려 눈동자가 더욱 맑고 투명해 보였다. 길고 촘촘한 속눈썹은 마치 빗속의 나비처럼 잘게 떨리고 있었다. 왠지 사람을 매료시키는 눈빛이었다.
  • 그는 천천히 손을 놓고 입가에 힘을 주며 말했다.
  • “너를 놓아줄 수는 있어. 하지만 앞으로 15일 동안, 넌 반드시 우리 집에서 지내야 해. 네가 임신을 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보내줄 거야.”
  • 하율은 다급히 말을 꺼냈다.
  • “안돼, 너의 집에서 살 수는 없어!”
  • 만약 그녀가 정말로 임신이라도 해버린 다면 그에게 발각될 수도 있지 않은가!
  • 사도한은 위험한 기세를 내뿜으며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 “너한테 거절할 권리 따위는 없어!”
  • “하지만!”
  • 이때, 하율은 위급함 속에서 지혜를 발휘하며 말을 이었다.
  • “만약 내가 너의 집에서 지낸다면 우리 가족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 남자친구도 불만이 많을 거고!”
  • 사도한은 입가에 조롱이 잔뜩 섞인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 “너의 가족은 걱정할 필요 없어. 그리고 네 남자친구는…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너한테는 남자친구 따위는 없다고 들었는데? 그나마 유일한 남성 친구도 네 절친의 남편이잖아. 내 말이 맞지?”
  • “나를 뒷조사한 거야? 그건 내 프라이버시라고!”
  • 하율은 눈이 째지도록 그를 노려봤다.
  •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의 일부에 불과해. 명예가 실추되지 않고 싶으면 순순히 내 말에 복종하는 것이 좋을 거야!”
  • 사도한은 마치 조선 시대의 폭군처럼 다른 사람이 감히 자신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도록 살벌하고 단호했다.
  • 하율은 그가 하는 협박에 가까운 말에 절대적으로 신임이 갔다. 지금은 순순히 그의 말을 듣는 것이 제일 명지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알았어, 너의 조건에 동의할게. 하지만 나도 부탁이 하나 있어.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짐이라도 챙기게 해줘.”
  • 사도한은 그녀가 어차피 별다른 수작을 부리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 “그래, 그건 문제 없어. 너의 신변을 지켜줄 경호원 두 명을 붙여줄게.”
  • 지켜주는 건 핑계일 뿐이고 그냥 감시하기 위한 거겠지! 하율은 몰래 사도한을 힐끗 쏘아봤다.
  • “내가 이렇게까지 너한테 맞춰 주고 나라를 잃는 듯한 치욕스러운 계약까지 맺었으니 너도 나한테 협조해줘! 이번 단독 인터뷰는 금요일 전까지 정리해서 무조건 회사에 제출해야 해. 너 언제 시간 돼?”
  • 그녀는 자기가 이곳으로 온 주요한 목적을 잊지 않았다.
  • “지금도 가능해.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 물어봐.”
  • 사도한은 그녀한테 자리에 앉으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뒤 자기도 소파에 앉았다. 그의 앉은 자세는 여유롭고도 방자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