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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 “사도운 도련님, 빨리 당신의 조건을 말해주세요. 저는 지금 제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라 도련님이랑 장난칠 시간이 없어요.”
  • 하율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정색하면서 말했다.
  • 그녀는 분명히 복도 끝 쪽에 서있는 건장한 경호원을 보았다. 보아하니 사도한은 그들의 연기를 믿지 않은 것 같았다.
  • “차라리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나한테 네 이름을 알려줘, 그리고 왜 우리 형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이유를 말해줘. 그럼 이번 일 내가 눈감아 줄게, 어때?”
  • 사도운은 그녀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그의 긴 손가락으로 턱받침을 하고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말을 꺼냈다.
  • “저는 하율이라고 해요. 뷰티 잡지사의 에디터입니다. 당신 형을 인터뷰하고 싶어서 비서를 통해 말했는데 거절당했어요, 그래서 몰래 들어갔는데 들키는 바람에 경호원이 저를 끌고 나갔습니다. 그냥 이런 일이었어요.”
  • 하율은 어쩔 수 없이 사도운의 말에 대답했다.
  • 비록 그녀가 한 말을 허점 투성이였지만 사도운은 더 추궁하지 않았다.
  •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밖에 있는 경호원은 하율 씨가 알아서 따돌려요.”
  • 사도운은 밖에 있는 경호원을 한번 보고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면서 말했다.
  • “고마워요.”
  • 하율은 걸치고 있던 외투를 벗어서 사도운에게 돌려주었다.
  • “방법은 제가 한번 생각해 볼게요.”
  • “내 이름은 사도운이에요, 기억해 둬요. 나는 우리가 꼭 다시 만날 것 같거든요.”
  • 사도운은 자신의 여우 같은 눈매를 살짝 치켜올리면서 말했다.
  • 십 분 후, 하율은 청소원 아주머니한테서 산 작업복을 입고 까만색 테 안경을 쓰고 쓰레기 봉투를 어깨에 들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경호원 옆으로 지나갔다.
  • 그녀는 빌딩 뒷문으로 빠져나간 후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았더니 20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전화는 모두 예서진에게서 걸려온 것이었다.
  • 하율은 예서진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 “율아, 뭐하고 있었길래 이제 전화받아? 말할 게 있는데, 두 시간 전에 성호 그룹 대표 비서가 우리집에 찾아와서 그 소포에 대해 물었어. 내가 보기엔 그날 밤 너랑 잔 사람 호스트가 아니라….”
  • 예서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 “사도한이야.”
  • 하율은 힘 없이 말을 이었다.
  • “응? 내가 그 사람이라고 할 줄 어떻게 알았어?”
  • “불행하게도 나 아까 그 사람이랑 정면으로 마주쳤어.”
  • 하율은 괴로워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면서 말했다.
  • 예서진쪽에서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 “그럼 너 지금 어쩔 생각이야? 내가 보기엔 그 사람 만만치 않아 보이던데.”
  • 예서진은 조금 뜸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하율 보고 물었다.
  • “아까 그 사람이 내 명함을 줏는 걸 봤어. 내가 보기엔 그 사람 내 신분을 알았을 거 같아.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동안만 어디 가서 좀 피해있을 생각이야.”
  • 사도한이 하율을 공개수배까지 하겠다는 걸 보면 그날 있었던 일을 아직도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사도한이 하율을 찾아낸다면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잠잠해질 동안 잠시 피해있다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그럼 너희 이모님하고는 어떻게 말하려고 그래?”
  • “지방 출장 갔다고 하면 돼!”
  • 전화를 끊은 하율은 아랫배를 만지면서 생각했다.
  • 하느님, 저 임신이라도 하게 해주세요, 아니면 제가 너무 손해잖아요!
  • 잡지사에 돌아온 하율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편집장을 찾아가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 “율아, 마침 잘 왔어. 너한테 전해줄 좋은 소식이 있어! 성호 그룹에서 방금 연락이 왔는데, 사도한이 그 인터뷰하겠다고 했대. 대신 꼭 하율 너한테서 인터뷰를 받고싶다고 했어.”
  • 리사는 고개를 들어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하율을 보고 말했다.
  • 하율은 사도한이 이렇게 빨리 자신을 찾아낼 줄은 몰랐다.
  • “리사 언니, 죄송해요. 이번 인터뷰 저 못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저 그만두고 싶어요.”
  • 하율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리사를 보고 말했다.
  • 리사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어 하율을 보았다.
  • “계속 잘해오다가 갑자기 왜 그래? 그만두려는 이유가 뭐야?”
  • “제가 요즘 몸이 좀 많이 안 좋아요, 그래서 조금 쉬려고 그래요.”
  • 회사에 오는 길에 하율은 이미 이유를 생각해두었다.
  • 하지만 리사는 하율이 그만두는 걸 그리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 “몸 때문이라면 내가 너 대신 대표님한테 잘 말해서 한 달간 휴가를 내줄 수 있어.”
  • 하율은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리사가 한참 동안이나 설득하였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 “율아, 솔직히 말해줄게. 사도한은 네가 인터뷰를 한다는 조건으로 이번 인터뷰를 허락했어. 네가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사도한의 인터뷰는 끝내고 그만 둬. 만약 네가 끝까지 하지 않겠다고 버티면 회사에서 너한테 이천오백만 원의 위약금을 청구할 거야.”
  • 리사는 점점 얼굴빛이 어두워지고 정색해서 하율 보고 말했다.
  • 하율은 마음속으로 그동안 모아뒀던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를 한번 계산해보았다. 이천만 원밖에 없었다. 그녀가 만약 이 돈을 모두 회사에 배상한다면 그녀는 앞으로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
  • “2년 동안 네가 열심히 해온 거 나 다 알고있어. 마침 우리 회사가 유럽지사에 사무소를 설립했다고 하더라고. 네가 원한다면 네 이름을 올려줄게. 네가 그쪽으로 가면 바로 담당자로 일할 수 있게 될 거야.”
  • 리사는 난처해하는 하율의 표정을 보고는 다시 좋게 말했다.
  • 하율은 눈이 번쩍 뜨였다. 유럽으로 가면 사도한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진짜 임신이라도 했다면 여론의 압력 없이 아이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 “리사 언니, 이번 인터뷰 제가 할게요. 그리고 저 유럽지사로 가고 싶어요.”
  • 그녀는 웃으면서 리사를 보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