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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책임은 네가

  • 오 씨 아주머니는 하율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와 집 구조에 대해 소개를 했다.
  • “도련님 방은 바로 옆에 있어요. 조용한 편이에요. 저기 서쪽 끝은 둘째 도련님 방이에요.”
  • “네.”
  • 하율은 대답하고는 물었다.
  • “회장님과 사모님은 3층에 계시나요?”
  • 오 씨 아주머니는 웃었다.
  • “회장님과 사모님은 본가에 계셔요. 여기는 도련님 별장이에요. 가끔 셋째 아가씨께서 며칠씩 있다가 가세요. 지금은 외국에 계시다 보니 3층은 계속 비워진 상태에요.”
  • 어쩐지 사도한이 가족들 반대는 걱정 안 해도 된다더니.
  • 푹신한 침대에 이쁜 방이지만 하율은 잠자리를 가리는 버릇 때문에 밤새 뒤척이다 새벽쯤에 우유 마시러 주방으로 내려갔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들고 뒤돌아서는데 바로 뒤에 누군가 서있는 걸 보더니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 사도한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한밤중에 갑자기 소리 지르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 “안 자고 뭐해?”
  • 사도한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하율은 머쓱해서 웃었다.
  • “잠이 안 와서 따뜻한 우유 마시려고. 너도 잠이 안 오냐? 한잔 마실래?”
  • “됐어.”
  • 사도한은 딱딱하게 두 글자를 내뱉고는 금방 따른 따뜻한 물을 손에 쥐고 뒤돌아 계단 위로 올라갔다.
  • 하율은 우유를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더니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거무칙칙해졌고 시도 때도 없이 보이는 시허연 번개 줄기 때문에 하율은 무서워서 이불 안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 겉보기엔 범이 나타나도 맞서 싸울 것만 같던 하율이가 번개를 무서워할 줄이야. 끊임없는 번개 소리에 하율은 더 세게 떨었고 너무 무서워서 침대에서 내려와 커튼을 닫을 수조차 없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 “왜 그러는 건데?”
  • 사도한의 귀찮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하율은 이불 안에 숨어서 애써 괜찮은 척 말했다.
  • “괜, 괜찮아.”
  • 번개 소리를 무서워한다는 걸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다.
  • “일 없으면 빨리 자. 다른 사람 휴식에 방해하지 말고.”
  • 지적하는 목소리였다.
  • 하율은 이를 악물었다.
  • 관심이라도 해주는 줄 알았더니 자기가 잠자는 거 방해했다고 뭐라는 거잖아!
  • 정말 많이 무서웠지만 오기 때문에 그녀는 수건을 입에 물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렇게 겨우 잠들기까지 버텼다.
  • 하율이 씻고 1층으로 내려갔을 때 사도한은 우아하게 아침을 먹고 있었다.
  • “굿모닝.”
  • 하율은 인사를 건넸다.
  • “응.”
  • 대답을 바라지 않았지만 그는 담담하게 대답을 했다.
  • 하율은 오 씨 아주머니의 안내로 그의 맞은 켠에 앉았다. 둘은 묵묵히 아침을 먹고 있었다. 하율은 접시 위의 프라이에만 집중하느라 사도한이 이미 식사를 끝내고 두 번이나 시계를 봤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녀가 포크를 내려놓자마자 사도한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 “오 씨 아주머니, 왕 씨 아저씨한테 하율 씨 출근길 도와드리라고 전하세요.”
  • 오 씨 아주머니는 대답하고는 총총 뛰어나갔다.
  • “괜히 너를 번거롭게 했네.”
  • 하율은 그제서야 사도한에 대해서 조금 알아가는 것 같았다. 눈앞의 이 남자는 좋은 교육 덕에 언제나 젠틀하고 예의 바르지만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자기의 속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 그는 널 전혀 신경 쓰지도 않고 감정 따위 숨기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아.
  • 사도한은 무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 “아니야, 혼자 있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그래. 퇴근하면 왕 씨 아저씨가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십 분 내로 나타나지 않으면 도망친 거로 알고 있을게. 책임은 네가 져.”
  • “10분? 사무실에서 회사 앞까지만 해도 5분이야. 갑자기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
  • 그녀의 직업 특성상 야근은 늘 있는 일이었다. 시간제한은 일부러 트집 잡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 “그건 네 문제고, 내 알 바 아니야.”
  • 사도한은 차에 타고 쾅 하고 문을 닫았다.
  • 하율은 내키지 않아서 차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 “야, 똑바로 말해. 도망치면 무슨 후과가 있는 건데?”
  • 사도한은 그녀를 보는 체도 안 했다.
  • “출발하세요.”
  • 차는 붕하고 앞으로 달렸고 배기가스는 그녀의 얼굴에 사정없이 뿜어졌다. 화가 난 그녀는 이를 악물더니 씩씩 거리며 달리는 차를 향해 중지를 내밀었다.
  • 육지호는 백미러를 통해 그 장면을 보고서는 뒷자리에 앉아있던 대표님의 눈치를 보았다. 대표님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육지호는 대담했던 하율 씨의 행동이 걱정됐다.
  • 편집장 사무실에서 나온 하율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 그녀는 다 쓴 단독 인터뷰 원고랑 몰래 찍었던 사도한의 사진을 리사한테 넘기고 열흘 후 프랑스에 파견되기로 합의를 봤다. 그때 되면 사도한은 더 이상 그녀를 멋대로 지배할 수 없겠지.
  • 하지만 이모랑 이모부로 협박하면 어쩌지?
  •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율은 식은땀이 절로 났다.
  • 윈윈하는 방법을 생각해내야 돼. 이를테면 나도 사도한의 약점을 잡아서 협박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