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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어떻게 이런 우연이!

  • 성호 그룹 대표인 사도한은 종래로 매체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연말의 CEO 시상식 활동도 자기 대신 비서인 육지호를 보낸다. 이렇듯 사도한 같은 캐릭터는 그들과 같은 여성 트렌드 잡지는 물론이고 어떠한 인터뷰도 절대 하지 않는다.
  • 하율은 난감해하며 입을 열지 못하고 입술만 물어뜯고 있었다.
  • “왜? 못하겠어?”
  • 리사는 언성을 조금 높였고 말투에는 조롱이 섞여있었다.
  • 하율은 순간 욱해서 꼭 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해낼 수 있어요!”
  • “아주 좋아.”
  • 리사는 입꼬리를 쓱 올리더니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치며 말하였다.
  • “그럼 오늘 오후부터 바로 시작해, 이번 주 금요일까지 취재해와!”
  • 하율은 그렇게 투지가 넘쳐흐르는 채로 리사의 사무실에서 걸어 나와 자기의 자리에 앉고는 바로 한숨을 쉬었다. 사도한에 대한 기사들을 뒤져볼수록 점점 우울해졌다. 하율은 외부에 사진 한 장도 유출된 것이 없는 사도한을 생각하면서 정말 인터뷰를 하게끔 설득할 수 있을지 걱정이 가득 찼다.
  • “파이팅, 하율!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포기하면 안 되지!”
  • 하율은 주먹을 꼭 쥐고 스스로 힘을 북돋았다. 금요일이면 기사를 바쳐야 하니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음을 느끼고 바로 성호 그룹에 전화를 걸어 인터뷰 예약을 하였다. 하지만 역시나 비서한테 친절하고도 단호한 말투로 거절을 당했다.
  • 하율은 바로 가방을 챙겨 회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성호 그룹 앞에서 죽 치고 기다려 온갖 방법을 다해 그 신비로운 사도한을 만나는 게 작전이었다.
  • 하율은 사람들의 뒤를 따라 함께 직원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직원한테 물어본 끝에 대표님 사무실이 36층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36층에 도착한 후 하율은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 화장을 고쳤다. 화장실에서 나가려던 순간, 웬 열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예쁜 여자애가 통화하면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 “비연아, 오늘 같이 쇼핑 못할 것 같아, 나 지금 성호 그룹에 왔어…. 응, 네 말이 맞아. 윤진언니가 떠났으니 이 기회를 잘 잡아야겠어…. 됐어, 나중에 다시 연락해. 사도오빠도 곧 회의 끝나고 나올 것 같아서 찾으러 가야겠어, 바이.”
  • 하율은 통화를 엿듣고 문득 그 여자애가 말하는 사도오빠가 사도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여자애는 한쪽으로는 화장을 고치고 있었고 한쪽으로는 신나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하율은 그 여자애를 힐끗 보았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마치 인형과도 같았다. 옷차림도 귀여운 스타일이었고 천진난만해 보였다. 또 행동에는 고귀함이 묻어나 보아하니 어릴 적부터 부잣집에서 공주처럼 자란 아이가 틀림없었다. 그러기에 하율은 그 여자애 말속의 사도오빠도 사도한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 하율은 그 여자애의 뒤를 조심스레 밟으면서 웬 회의실 문 앞까지 걸어간 것을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키가 크고 훈훈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 하율이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할 틈도 없이 여자애는 이미 신나게 그 남자한테로 달아갔다.
  • “사도오빠, 보고 싶어서 왔어요. 저녁 먹으러 같이 가면 안 돼요?”
  • 남자는 몸을 비키더니 한쪽에 있는 비서를 보면서 언짢은 기색을 보였는데 그 언짢음은 하율도 고스란히 느낄 정도였다. 비서는 그제야 겁을 먹고 서둘러서 해명하기 시작했다.
  • “대표님, 아가씨가 아주 중요한 일이 있다고 대표님을 꼭 만나야 한다고 해서…. 그래서…. ”
  • “넌 해고야.”
  • 남자는 비서한테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 남자가 뿜어내는 강한 아우라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압도했고 다들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 “손 놔!”
  • 남자는 매정하게 여자애의 손을 뿌리쳤다.
  • “사도오빠….”
  • 여자애는 그저 억울해하면 남자를 부르고 있었다.
  • 하율도 걸음을 멈췄다. 방해받고 싶지 않은걸 느껴 무턱대고 나서면 쫓겨나진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사는 평소에도 하율을 아니꼽게 보고 괜스레 시비를 걸었기에 이번 인터뷰를 따내지 못하면 회사에서 잘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후, 한번 해보는 거야!
  • “안녕하세요, 사도한 씨, 저는….”
  • 하율은 말도 채 끝내지 못하고 화들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명함을 바닥에 떨구었다.
  • 몸을 돌려 하율을 보는 그 남자, 너무 잘생긴 얼굴, 하지만 분위기도 너무 막강한 그 남자! 그 남자가 바로 어제 하율과 하룻밤을 보낸 상대였다, 전설의 사도한이!
  • 하율은 하느님이 자기와 장난치는 줄 알았다.
  • 그녀가 말을 하다 말자 사도한도 뭔가 눈치를 채고 앞에 있는 여자를 유심히 훑어보다가 문득 낯익음을 느꼈다. 그리고 머릿속에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 순간, 하율은 몸을 돌려 미친 듯이 냅다 뛰었고 복도에는 다급한 하이힐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 뒤, 하율은 터져나오는 긴장감에 금방이라도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던 찰나, 하율은 사도한이 그녀가 떨어뜨렸던 명함을 손에 쥐고 쫓아오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