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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공개수배 합니다[제1부]

그녀를 공개수배 합니다[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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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2021-10-14

제1화 유언비어

  • “진짜예요? 근데 하율 씨가 노처녀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셨어요?”
  • “새로 오셨으니까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죠. 하율 씨가 노처녀인 거 이제 회사에선 비밀도 아니에요!”
  •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화끈한 화제의 대화 내용이 하율의 귀에 들어왔다.
  • “나이도 많은데 아직도 연애를 못한 거 보면 데려갈 남자가 없는 거야? 아니면 어디 문제라도 있는 거 아닌지 몰라요.”
  • 하율의 미간이 순간 확 찌푸려졌다. 24살, 그녀에겐 아직은 젊은 나이였다.
  • “요즘 빨리 시집가고 싶어서 여기저기 맞선 보고 다닌다고 그러던데요? 근데 그런 여자를 좋다고 할 남자가 어디 있을까요?”
  • 그중 한 명이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 “스토리가 있나 본데요? 뭔데요 뭔데요, 빨리 말해봐요!”
  • “하율씨 어릴 적부터 부모님 잃고 한동안 고아원에서 살다가 결국엔 이모가 집으로 데리고 갔대요. 그런 가정에서 자란 여자 중에 몇 명이나 정상이겠어요? 사이코패스 일지도 몰라요! 남자 말고 여자를 좋아하는 걸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맞선을 그렇게나 많이 봐도 결혼을 못 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루시 씨도 조심해요. 요즘 둘이 친하게 지내는 것 같던데 설마 루시 씨한테 관심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죠?”
  • “에이, 설마요! 진짜 극혐!”
  • 두 사람은 동시에 극혐이라고 외쳐댔다. 그들이 신나게 씹어대고 있는 사람이 지금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듣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 새로 입사한 동료에게 친절하게 대했을 뿐인데 여자를 좋아한다느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해대니 하율은 밥 먹고 할 짓이 그렇게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루시와 진리가 한참 하율을 비웃으며 화장실에서 걸어 나오던 찰나, 고개를 들어보니 하율이 팔짱을 끼고 얼굴에 웃음을 띤 채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 “하율 씨….”
  • 하율은 평소보다 더 활짝 웃으며 말했다.
  • “다들 여기 계셨네요?”
  • “네, 네. 저희는 볼일 다 봤으니까 먼저 가볼게요.”
  • “네, 천천히 가세요. 멀리 안 나가요.”
  • 말이 끝나기 바쁘게 ‘퍽’하는 소리가 연속 두 번이 났다. 힐을 신은 루시와 진리가 바닥에 세게 넘어진 것이다. 진리는 너무 아픈 나머지 이미지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 “누가 손 세정제를 화장실 문 앞에 쏟은 거야?”
  • “어머, 괜찮으세요? 제가 방금 천천히 가시라고 얘기드렸잖아요. 보세요, 이렇게 넘어지셨잖아요.”
  • 하율은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두 사람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 “빨리 걸으면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셔야죠. 마찬가지로 입을 잘못 놀려도 그에 따른 재앙이 있기 마련이에요!”
  • 하율은 그저 연애가 싫고 결혼이 싫을 뿐인데 도대체 이 사람들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렇게 심한 말로 그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우울하게 바에 앉아있는 하율. 그녀는 옆에 놓인 술잔을 집어 들어 술을 홀짝홀짝 몇 모금 마셨다.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해서야 그녀는 자신이 술을 조금만 마셔도 취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이모는 그녀에게 술 금지 명령을 내렸었다. 기분이 꿀꿀해서인지 그녀는 이 사실을 잊고 있었다.
  • 머리는 갈수록 어지러워져 눈앞에 사람들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하율은 친구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자신의 숄더백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문득 가방을 파티장의 룸에 두고 온 게 생각나 그녀는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비틀비틀 룸으로 걸어가다가 발을 헛디뎌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하율이 미간을 찌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손가락을 내밀어 실실 웃으며 셈을 세기 시작했다.
  • “하나, 둘, 셋….”
  • 이미 취할 대로 취해버린 그녀는 자신의 현재 모습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모른다.
  • 새까만 긴 머리는 높게 묶어 하얀 목선이 훤히 드러났다. 바닥에 주저앉은 탓에 몸이 앞으로 조금만 기울어도 끈치마에 감싸져있던 부드러운 가슴이 노출될 것 같았다. 이따금씩 보이는 가슴 골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깊은 상상에 빠지게 하였다. 길게 쭉 뻗은 다리는 핫한 공기 속에 숨김없이 그대로 노출되었고 가늘게 뜬 그녀의 두 눈과 목이 말라 무의식적으로 핥는 앵두같은 입술은 사람들을 유혹하기엔 충분한 아름다움이었다.
  • 사도한은 홀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앉아 있는 하율을 보았다.
  • 그녀는 아름답고 섹시했다. 순진하고 아련한 눈빛은 마치 천사와 악마를 동시에 품은 듯 신비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시선을 거두고 바에 자리를 잡자 바텐더는 바로 그를 맞아주며 빠른 속도로 그의 술잔에 술을 한 잔 따랐다.
  • 예술가처럼 하얗고 길게 뻗은 손으로 술잔을 들어 막 한 모금 마셨는데 그의 비어있던 옆자리에 누군가가 와서 앉았다.
  • “왜 혼자 술 마시러 왔어? 조윤진한테 청혼할 거라며.”
  • 사도한이 고개를 들어 보니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정찬성이었다. 그는 사도한의 친구이자 여기 술집의 사장이다.
  • “거절당했어.”
  • 그가 차갑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