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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다시 시작되는 생활

  • 퇴근하고 왕 씨 아저씨 차에 탈 때까지도 하율은 별다른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피지기 백전백승은 언제나 맞는 말이니 그녀는 왕 씨 아저씨에게 사도한에 대해 물었다.
  • 사도 가문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가문이고, 사도한의 할아버지가 밑바닥부터 맨손으로 사도 그룹이라는 거대한 가문의 왕국을 이룬 거라고 했다. 사도 그룹이 손을 뻗은 분야로는 부동산, 호텔, 요식업, 백화점 등등 족히 수십 개는 된다고 봐야 했다. 세계적 범위 내에서 계열사의 자회사까지 합한다면 수백 개는 되었다.
  • 사도한의 할아버지는 슬하에 일남 일녀를 두고 두 명의 손자, 한 명의 손녀 그리고 한 명의 외손자를 두었다. 그중 제일 아끼는 사람이 바로 장손인 사도한이었다.
  • 하지만 사도한은 그의 바람대로 가문의 사업을 이어받지 않고 성호 그룹을 창립했다. 사도한의 명성은 모두 그가 직접 이뤄낸 것이고 사도 가문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할아버지께서 그를 나무라도 사도한은 이에 떳떳했다.
  • 사도한의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할머니도 그를 제일 아꼈다. 하루 종일 그에게 결혼하고 아기를 가져야 한다고 잔소리했지만 정작 사도한 본인은 하나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에 두 분은 노하셨고 급기야 별장을 따로 구하셔서 이사를 가셨다. 하지만 사도한은 한 달에 두어 번은 꼭 두 어르신을 뵈러 찾아갔다.
  • 하율은 고민에 빠졌다. 어쩌면 회장님과 사모님 쪽을 먼저 찔러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 그녀가 별장에 도착했을 때 사도한의 차도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 “덜컥!”
  • 대문이 열리고 사도한이 굳은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 사람은 멋지게 슈트 재킷을 어깨에 휘감아 걸치고는 거들먹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그러다가 눈매를 보기 좋게 올리며 말을 걸어왔다.
  • “어, 달링, 여긴 어쩐 일이야?”
  • 노란 머리와 치근덕대는 말투, 하울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렇게 능청스러운 사람은 사도한의 동생인 사도운이 아니면 누가 더 있겠는가!
  • 하율은 한참 그를 견주어 보다가 말을 이었다.
  • “도련님, 저는 하율이고요, 혹은 하율 씨라고 부르시면 돼요.”
  • 사도운은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서운하게 해요. 제가 그쪽을 율아라고 부르면 그쪽은 운아라고 부르면 되죠!”
  • “이게 우리 두 번째 만남인데, 아직은 이름을 부르는 게 나을 듯싶어요. 저는 사도운이라고 부를게요.”
  • 하율은 그가 첫 만남 때는 그나마 정상으로 보였는데 오늘따라 참 유별나다고 느껴졌다.
  • “형, 알고 보니 집에 꿀단지를 숨겨놓았네. 그래서 나한테 들어와 살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한 거 였구나.”
  • 사도운은 흥미진진하다는 눈빛으로 사도한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장난기가 넘쳐났다.
  • 사도한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 녀석은 얼굴이 벽 보다도 두꺼워 그렇게 안된다고 말해도 기어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들어와버렸다.
  • “오늘부터 나도 이 집에서 살게 되었어. 우리 셋이 함께 하는 동거 생활, 신나지 않아, 율?”
  • 사도운은 말하면서 하율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사도한의 솥뚜껑처럼 어두워진 낯빛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 신난다고? 신이 나면 이상한 거지. 하율은 바로 뒷걸음질을 하며 이 붙임성 좋은 사람한테서 떨어졌다.
  • 사도한은 얼음처럼 쌀쌀하게 말했다.
  • “하율이 이곳에 머문다는 말이 조금이라도 새어 나간다면 너를 아프리카에 낙타 먹이로 확 보내버릴 거야.”
  • “형, 나 믿음직스럽기로 둘째라면 서러운 사람이야. 나를 믿어봐!”
  • 사도운이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하율의 어깨를 두어 번 쳤다.
  • “그리고 나와 하율이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데, 내가 왜 하율이를 곤란하게 만들겠어.”
  • 하율이 어깨에 놓인 손을 확 쳐냈다.
  • “가깝긴 뭐가 가까워요, 함부로 말하지 마요!”
  • “네네, 먼저 캐리어 안의 짐부터 풀고 다시 찾으러 갈게요, 율.”
  • 사도운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트렁크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하율은 그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며 걱정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 “사도한 씨, 그쪽 동생분 원래 이런 사람이야?”
  • 붙임성이 너무 좋다 못해 부담스러워 미칠 만큼?
  • 사도한이 부자연스럽게 마른 기침을 두어 번 했다. 식사 시간이 되자 세 사람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풍성한 저녁밥이 풍기는 냄새에 절로 군침이 돌았다.
  • 사도운이 하율을 보며 넉살 좋게 말을 건넸다.
  • “율아, 셰프는 5성급 호텔에서 스카우트해온 분이야. 이 치킨 수프 맛 좀 봐.”
  • 하율은 가만히 앉아만 있는 사도한을 바라보다 웃기만 했다. 먼저 젓가락을 들기 무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사도운이 직접 수프를 담아 하율의 앞에 놓아주었다.
  • “빨리 먹어, 빨리.”
  • 사도운이 재촉했다. 그의 눈은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 하율이 한 입 떠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 “네, 맛있네요.”
  • 사도운이 헤벌쭉 웃고 이번에는 닭다리 하나를 떼고는 아래쪽 부분에 휴지를 감아 건넸다. 하율이 고맙다고 말하며 받아먹자 그의 눈은 순식간에 하트 모양으로 접어졌다.
  • “…엄청 맛있네요.”
  • 사도운은 또 양 갈비를 그녀의 접시 위에 올렸다.
  • “이거 좀 먹어봐. 호주에서 직접 숯불로 구운 양 갈비를 구해온 거야. 말로는 갓 태어난 새끼 양의 고기라는데 뼈도 부드러워!”
  • 하율은 갈비를 맛보고 또 한 번 감탄했다.
  • “…진짜 너무너무 맛있어요.”
  • 사도운이 눈을 곱게 접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