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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꿈 아니야

  • 사도한은 그녀를 안고 몇 번이나 시도해보았지만 결국엔 모두 실패로 결말을 맺었다. 사도한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이미 그의 머리카락을 흠뻑 적셨다….
  • 하율은 잠깐 넋을 놓았다.
  • 이 남자 위치도 못 찾는 거 보면 처음 아니야?
  • 하율은 머리를 도리도리 저으며 이 눈앞의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 “윤진아, 사랑해. 내 곁 절대로 떠나지 마.”
  • 하율은 이 일이 이렇게도 힘든 일이었음을 몰랐다. 한 번도 해보지 못했으니까. 하율은 그 남자가 무엇 때문에 온밤 동안 자신을 괴롭혔는지 이해가 안 갔다. 잠깐도 아니고 밤 내내 말이다. 그렇게 새벽이 되어서야 남자는 하율을 놓아주었다.
  • 하율은 밀려오는 피곤을 억지로 참고 그가 곤히 자든 틈을 타 머리를 돌려 그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녀는 이렇게도 잘난 남자를 본 건 생애 처음이었다.
  • 굳은살 하나 없는 초콜릿 복근에 얼굴선은 더욱 예술이었다. 우뚝 솟은 코와 다문 듯 안 다문듯한 그 얇은 입술, 매력남이 아닐 수가 없었다.
  • 그의 옆모습만 봐도 심장이 이렇게 나대고 있는데 그가 눈을 뜬 후의 그 아름다움은 하율은 상상하기조차 두려웠다.
  • 하지만 그 남자가 아무리 잘생겼다고 해봤자 하율은 그와 다시 만날 일은 절대로 없었다. 하율은 오로지 그 남자를 정자 기증자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 하율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하는 고통을 가까스로 견뎌내며 땅바닥에 널린 옷들을 하나씩 줍고 샤워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을 비추어보니 몸 곳곳에 키스마크가 박혀있었다.
  • 이렇게 나가면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 바로 챌 거 같은데 어쩌지?
  • 하율은 너무도 분한 나머지 한바탕 소리를 질렀다. 그러던 중 소파 위에 대충 걸려 있는 정장 코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 남자의 옷인 것 같았다.
  • “미안한데 옷 한 번만 빌릴게. 지갑을 안 갖고 와서 비용은 오늘 지불 못 해줄 것 같으니까 두날후에 옷하고 같이 줄게.”
  • 하율은 코트로 간신히 키스마크들을 가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방으로 나가 프런트 직원한테서 자신의 가방을 돌려받고 주변 사람들의 의아한 눈길 속에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 택시에 앉는 순간까지도 하율의 다리는 계속 떨렸다. 아파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아마도 긴장한 탓이었을 것이다.
  •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자 사도한이 몸을 뒤집었다. 얼굴을 찌푸리고는 뭔가 떠오른듯 벌떡 일어나 앉더니 걷어찬 이불로 자신의 중요한 부위를 가리고 주위를 샅샅이 둘러보았다.
  • 이 모든 것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 이런!
  • 그 사람이 절대로 윤진일리는 없었다. 사도운은 윤진한테 미안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 젠장!
  • 사도한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 “정찬성, 너 일분 안에 당장 뛰여 오지 않으면 내 손에 죽는 줄 알아!”
  • 그는 전화 한편의 사람한테 큰 소리를 질렀다.
  • 정찬성은 귀를 만지작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 “아침부터 뭔 일인데 화강 이렇게도 많이 나있어?”
  • 사도한의 얼굴색은 너무도 어두웠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찬성한테 물었다.
  • “네가 한 짓이지. 나 술 좀 하는 사람인데 고작 그 몇 잔으로 취할 리는 없잖아! 그리고 네 허락 없이 아무도 이 방에 들어올 수 없잖아, 아니야?”
  • 정찬성은 코를 슥슥 만지더니 사도한한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 “일부러 너 술 안에 뭐 넣은 것도 맞고 그 여자도 내가 그 방으로 보낸 거 맞아. 내가 사람 시켜서 이 방 전원 끄게 한 것도 인정할게. 네가 이방에 있는 걸 알게 되면 그 여자가 도망갈까 봐 그랬어. 근데 일이 이렇게 잘 풀릴줄은 누가 알았겠냐.”
  • “넌 이런 식으로 네 친구한테 엿 먹이는 거냐?”
  • 사도한은 무섭게 그를 째려보았다.
  • “뭐 또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해. 난 그냥 너한테 재밌는 거 해주고 싶었을 뿐이란 말이야. 그리고 원나잇일 뿐인데 뭐 어때서? 어차피 너 뭐 잃은 것도 없잖아! 너랑 나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조윤진도 알 리가 없고.”
  • 사도한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 뭐라 해야 될까? 자신이 몸을 잃었다고 말하면 정찬성이 자신을 한평생 비웃을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 사도한의 눈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분노는 겁이 없는 정찬성도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하게 만들었다.
  • “갑자기 생각난 건데 해야 될 일 있어서 먼저 간다.”
  • 정찬성은 사도한한테 피식 웃어주고는 도망가 버렸다.
  • “거기 안 서!”
  • 사도한은 정찬성을 붙잡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
  • “그 여자 반드시 찾아야 해. 어젯밤에 콘돔 안 했단 말이야.”
  • 정찬성은 처음으로 보는 사도한의 이런 모습에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 이거 지금 부끄러워하고 있는 거 맞지?
  • 하지만 그는 사도한 앞에서 웃을 수가 없었다. 웃었다가 목숨마저 없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정찬성은 재빨리 엘리베이터로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그는 숨 돌릴 새도 없이 10분 동안 배를 잡고 낄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