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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언니를 위해 나서다

  • “은영 아줌마, 우리 언니 결백을 돌려주세요. 언니가 방금 저 인간들한테….”
  • 서예림의 말에 사람들은 허철이 내뱉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서예지의 더럽혀진 옷에 집중되었고 더럽혀진 옷 속에 숨겨진 비밀에 대해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 그 두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놈들이었기에 사람들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 이은영은 눈살을 찌푸리고 혼 내려 하였지만 서예지가 그녀를 보며 웃으면서 말하는 탓에 가만히 있었다.
  • “괜찮아요, 어머님. 제 몸에 상처 모두 그들의 추격을 피하다 생긴 거예요. 제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검사를 받을게요.”
  • 그녀의 그 대범한 태도에 사람들의 의심은 많이 줄어들었다. 서예림은 서예지가 연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서예림이 알고 있는 허철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서예림은 맞장구를 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아주머니, 언니의 결백을 위해서라도 번거롭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 서예림의 말을 들은 이은영은 불쾌한 표정으로 서예림를 보았지만 이윽고 들려오는 서예지의 말에 놀랐다.
  • “하지만 제가 유태오 도련님의 약혼녀로서 이런 검사는 도련님이 직접 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 서예지는 이은영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 서예지의 말에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유태오가 직접 한다고?! 유 씨 가문의 주인인 유지태의 외동아들인 유태오가?! 미래에 유 씨 그룹을 물려받을 사람이?!
  • 유태오는 회사일 때문에 바빴기에 평일에 이런 파티는 참석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예지가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을 보니 그녀는 유태오가 여기에 없을 것을 알고 일부러 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래, 그럼 내가 가서 태오를 불러올게.”
  • 이은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유태오를 데리고 오겠다고 말했다.
  • 유태오가 집에 있다니. 다들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부탁할게요, 어머니.”
  • 하지만 서예지는 담담하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 그녀는 유태오가 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은영이 있으니 그가 반드시 나설 것을 알고 있었다.
  • 이때, 하객들이 깜짝 놀라며 장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서예지가 고개를 들고 보니 유태오가 밖의 소동을 듣고 스스로 나온 것이었다.
  • 그의 등장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 정교한 홍목으로 만든 계단 위에 유태오가 점잖은 모습을 하고 서있었다. 그는 짙은 자줏빛을 머금은 깊은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모두를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 화려한 인테리어는 그의 등장에 한순간 배경이 되어버렸다. 그는 용모가 아름답고 자태가 훤칠하여 마치 궁전에서 나온 왕자처럼 도도하고 존귀해 보였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바라보는 것조차 그에 대한 존중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하였다.
  • 유태오는 서예지의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그의 외모와 태도에는 모두 공격성이 있었고 말투에는 오기가 넘쳤다.
  • “내가 네 몸을 검사하라고? 내가 왜?”
  • 그의 낮게 깔린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하였다. 그의 얼굴에는 서예지에 대한 불만과 혐오가 가득했다.
  • “그리고! 네가 왜 내 여자야?”
  • 유태오가 정말로 집에 있었다니.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유태오는 정말로 소문대로 자신의 약혼녀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 다른 사람, 특히 여자들은 유태오를 만나면 모두 감격해했다. 지금 상황이 좋았더라면 그녀들은 벌써 다가가서 말을 걸었을 것이다.
  • 유태오는 전국의 여자들이 꿈꾸는 결혼 상대였다.
  • 평소에 그를 한번 만나보는 것도 하늘에 별 따기였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주위의 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하지만 서예지는 유태오를 보는 순간 싸늘한 기운이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 그녀는 머리가 아파지며 몸이 떨려 왔다.
  • 시간을 계산해 보면 유태오를 못 만난 지 5, 6 년이 되어가고 있다. 서예지는 눈을 지그시 감았고 그녀가 눈을 다시 떴을 때에는 유태오를 처음으로 직시할 수 있었다.
  • “당신 나랑 잤잖아! 그러니까 내가 당신 여자지!”
  • 그녀의 말은 주위 사람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 하객들의 시선은 금방이라도 서예지의 등을 꿰뚫고 지나갈 듯했다.
  • 귀하신 유 씨 가문 도련님이 자신이 싫어하는 약혼녀와 하룻밤을 보냈다니. 가장 놀란 사람은 당연히 서백호였다. 그는 이 결혼이 결국 이루어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였는데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뻔뻔스러워!”
  • 유태오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몸을 돌려 올라가려고 했다.
  • “아들, 잠깐만!”
  • 다급한 이은영은 아들을 불러 세웠다.
  • “태오 도련님, 언니의 결백을 증명해 주세요!”
  • 서예림도 앞으로 한 발 나서며 말했다.
  • 과거 유태오가 약을 탄 물을 마시고 서예지와 잠자리를 가진 일을 아는 사람은 매우 적다. 게다가 유태오는 서예지가 그 약을 직접 탔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를 매우 싫어했다. 지금에 와서 서예지가 왜 유태오더러 검사해달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유태오가 서예지의 몸의 멍 자국을 보면 그녀를 더 싫어할 것을 생각하면 서예림은 다급해났다.
  • 서예지는 유태오에게 한 번만 도와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건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너무 어리석은 탓에 유태오가 그녀를 도와줄 가능성은 아예 없어 보였다.
  • 유태오는 서예림의 말을 그냥 무시했다.
  • “태오야, 엄마 한 번만 도와줘!”
  • 이은영이 유태오를 보면서 부탁했다.
  • 이은영은 서예지 몸에 진짜 흔적이 있다면 가문의 이미지를 위하여 아들더러 먼저 숨기라고 할 속셈이었다.
  • 유태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 “엄마가 이렇게 부탁해도 안되겠니?”
  • 이은영은 아픈 척 쿨럭이며 말했다. 그녀는 심장병이 있었기에 유태오는 엄마의 말을 잘 들었다.
  • 유태오는 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 그리고 계단 아래 있는 서예지를 원한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당장 올라와!”
  • 그의 말투는 매우 사나웠다. 서예지는 이은영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계단을 올라갔다.
  • 파티에 참석한 하객들도 모두 궁금해했다. 유태오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몸에 흔적이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면 되었기에 아주 빨리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서예지는 조용히 유태오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그녀는 유태오를 20년 넘게 사랑했다. 유태오는 줄곧 그녀를 싫어했었고 그녀는 그런 그를 포기하지 못했던 탓에 결국에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 서예지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유태오의 성격은 극단적이었기에 한번 내린 선택을 다시는 바꾸지 않는다는걸. 십 년, 백 년 아니 천년이 지나도 유태오는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매번 이런 생각 하면 그녀는 가슴이 아파졌다. 하지만 환생한 후 그 아픔은 일종의 쾌감으로 변하였다.
  • 아프다는 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랑… 사랑이 사람 목숨과 비교할 수 있을까.
  • 키가 큰 유태오가 방에 들어간 후 뒤돌아서자 서예지는 유태오의 몸에 막혀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 “나보고 검사해달라며, 벗어!”
  • 벗는다고?
  • 그것도 유태오 앞에서?
  • 서예지는 미소를 지었다. 유태오가 일부러 그녀를 난감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전생의 그녀는 겁이 많고 수줍음이 많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전생에 겪은 수모로 인해 그녀의 몸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망가질 때로 망가진 상태였고 그녀의 수치심은 이미 사라진지 오라다. 서예지는 과감하게 지퍼를 열었고 치마는 순식간에 떨어져 나갔다.
  • 밝은 불빛 아래 그녀의 몸에 있는 모든 상처들이 낱낱이 드러났다. 작은 흉터들에는 피가 스며들었고 멍 자국과 손톱 자국은 더없이 많았다. 그건 그녀가 깨나기 전 반항하다 생긴 상처들이다.
  • 그녀는 치마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 서예지의 아름다운 몸매와 하얀 피부에 대비되게 그녀의 상처는 더욱 눈에 거슬렸다. 상처를 입은 그녀는 한없이 가여워 보였다. 그녀의 몸은 사람을 중독하게 하는 독약과도 같았다. 남자라면 가슴이 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유태오의 눈빛은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녀의 상처를 보고 있노라니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속으로 자신의 약혼녀를 건드린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서예지의 담담함은 유태오로 하여금 더욱 화가 나게 하였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처지를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 “온몸이 흉터투성이면서 나더러 검사하라고? 내가 숨겨주길 원했어? 꿈도 꾸지 마!”
  • 유태오는 손을 뻗어 그녀를 문쪽으로 밀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