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3화 원수여 안녕

  • 예전의 서예지라면, 유씨 가문이 언짢아 할거라는 말에 벌벌 떨고 이내 몸을 숨겼을 것이다.
  • 하지만 그녀는 지금, 제대로 해석하지 않으면 내일 퍼지게 될 유언비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 서예지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몸이 조금씩 떨리는 것을 견뎌내며 차갑게 웃었다.
  • “저도 기분이 좋지 않네요. 유가네 연회에서 누군가가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제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렇게 살아 돌아왔더니, 또 너한테서 그딴 능멸을 받다니. 나의 착한 동생아, 아주 고마워.”
  • 서예림은 어쩔 바를 몰라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죽이려고 했다는 말에 연회장은 삽시에 조용해졌다!
  • 그들은 모두 고귀하신 분들이니, 당연히 목숨도 아주 소중히 여겼다. 만약 자신의 체면을 신경 쓰지 않고 또 유가 가문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홀은 아마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 그때, 정신이 든 서백호가 황급히 다가와 급하게 물었다.
  • “뭐라고? 누가 너를 죽이려고 했다고? 누가?”
  • 그의 옆에 선 화려한 치장의 여인이 이마를 찌푸렸다가 다시 가식적인 웃음 내보이며 말했다.
  • “백호씨, 예지 말 믿지 마요. 뭐 보나 마나 어디 놀러 갔다 왔겠죠. 지금 법이 얼마나 무서운데, 또 여기 유가네 구역에서 누가 감히 사람을 죽이겠어요?”
  • 그 말의 뜻은, 서예지 자신이 어딘가에서 “놀다가” 이런 꼴을 당했고, 또 이를 감추기 위해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들었다고 헛소리한다는 것이었다.
  • 서예지의 차가운 눈빛이 그녀에게 떨어졌다. 그녀가 바로 서예지의 계모, 임은숙이었다.
  • 좋군… 또 만나게 되었다니.
  • 임은숙은 서예지의 눈빛에 기가 죽어 그녀를 깎아내리려던 말들이 목에 걸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이 죽어도 시원치 않을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기가 센 거야?
  • “어머니, 말씀 함부로 하시면 안 되죠. 오늘 저의 약혼자네 가문한테 아주 좋은 날인데, 그렇게 저를 깎아내리시면 유가가 많이 난처하지 않겠어요?”
  • 그 “유가를 난처하게 한다는” 말에 임은숙은 많이 당황하며 말을 보탰다.
  •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봐. 엄마는 너 걱정이 돼서 그러지. 네가 행실을 똑바로 못하면 유가에 누라도 끼칠까 봐. 너 지금 꼴 좀 봐, 정말 어디 미친 거 같아!”
  • 말을 들어보면 마치도 서예지가 노는 것에 환장에 어머니의 가르침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뜻 같았다.
  •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그녀는 어릴 때부터 계모의 손에서 자랐고, 계모는 그때부터 그녀의 기를 꺾어, 나이가 들고 능력이 생겨도 반항조차 못하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성격은 나약하기 그지없었고 결국 누구나 그녀를 밟으려 들었다.
  • 다시 태여도 났겠다, 그녀가 뭘 더 두려워 하겠는가?
  •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서예지는 머리를 숙여 자신을 보며 냉소했다.
  • 이른 봄 날씨는 추웠고, 그들은 관심이라는 이유를 내걸고 그녀의 옷이 젖어있든 더러워졌든 상관없이 그녀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 “관심이란 이런 거군요. 내가 이런 꼴이 되어 나타나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밝혀도, 이 모든 걸 비꼬고 동생이랑 함께 선동질해서 누명을 씌우는 게 관심이었군요. 그렇다면 이런 관심은 좀 무서운데요.”
  • 그녀는 망설임 없이 말을 뱉었고,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임은숙과 서예림의 얼굴빛은 어두워져 갔다.
  • “이놈의 계집애가, 뭐라고 헛소리 하는 거야!”
  • 임은숙은 두 눈을 부릅뜨고 참지 못하고 본성을 드러냈다.
  • 서예림은 깜짝 놀라 바로 엄마를 말렸다.
  • “엄마!”
  • 그에 임은숙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는 그녀가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 서예림은 서예지를 바라보고 마음속에는 잔뜩 의문을 품었다. 이 바보 같은 언니가 오늘은 꼭 약이라도 잘못 먹은 사람처럼 무슨 말이나 다 하네!
  • 하지만 그녀는 참아야만 했다. 허철이 오면 서예지가 또 어떻게 발뺌하나 두고 보자!
  • 그리고 그녀는 얼굴에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언니! 충격받아서 그래? 엄마도 마음이 없는 소리 한 거야. 그런데 어떻게 엄마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엄마가 언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우릴 어떻게 생각하겠어!”
  • 그 말에 서백호가 정신을 차리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그가 황급히 말했다.
  • “예림의 말이 맞아, 예지 너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빨리 사과 드려!”
  • 서예지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
  • 그녀가 어릴 때부터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불평불만 없이 지내온 탓일까? 왜 무슨 일만 생기면 그녀더러 사과하라고 하는 거지?
  • 보채는 아이에게 밥 한술 더 준다고, 그녀처럼 줄곧 울지도 보채지도 못한 아이는 한평생 저 모녀에게 당하다 죽어야만 했다!
  • 그러나 이번 생에는 참지 않기로 했다.
  • “아버지, 제가 이렇게 많이 다쳤는데, 괜찮으냐는 말 한마디 안 건네준 건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와 동생이 저에게 누명을 씌우는데도 가만히 계시다 이제 와서 저한테 사과하라고요? 제가 이 일을 자초한 건가요? 만약 동생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해 주었다면 제가 이런 꼴을 당했을까요?”
  • 서예지의 말에 서백호는 깜짝 놀랐다. 그제야 그는 이 일이 아내와 작은딸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 하지만 그는 이마를 찌푸렸다. 언제나 말 잘 듣는 큰딸이, 억울하더라도 모두에게 양보하던 그녀가 오늘에는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지?
  • 그때 집사가 달려왔다. 오늘의 연회에 사장님이 계시지 않아 사모님이 손님 마중을 가셨는데 그 방금 사이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 집사는 서예지를 보고 깜짝 놀라서 말했다.
  • “아가씨, 괜찮으세요? 제가 약 좀 가져다 드릴까요?”
  • 서예지는 그를 보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 “집사님, 저는 괜찮습니다. 두 사람이 저를 죽이려 들었어요. 경찰에 신고해주세요.”
  • “네?”
  • 집사는 얼굴을 굳히고 진지하게 말했다.
  • “그런 일이 있었다니? 저희의 불찰입니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꼭 일을 샅샅이 파헤칠게요. 모두 걱정하지 마세요. 유가가 모든 이들의 안전을 책임질 겁니다!”
  • 많은 이들은 웃으며 괜찮다고 말을 건넸다. 사실 그들을 아까 전부터 알아차렸다. 그 사람들의 목표는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 유가네 집사가 말을 마치고 또 경찰서에 전화를 거는 모습에 서예림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 허철은 왜 아직도 안 와? 그들이 먼저 경찰에게 잡힌다면 서예지의 일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 아닌가? 경찰들도 유가네 일인 만큼 꼼꼼히 조사하다 그 둘이 사실을 말하면 큰일인데!
  • 그건 안되지! 오늘 밤 무조건 서예지의 명성에 먹칠해야 해! 그래서 모두가 유 도련님의 약혼녀가 얼마나 방탕한 것에만 관심이 가게 하고 배후의 음모에 대해서는 누구도 몰라야만 해.
  • 하느님이 마치도 그녀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뒤에서 그 거들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서예지 씨, 여기로 왔네? 아까 우리 좋았잖아. 왜 갑자기 도망가서 나를 곤란하게 해?”
  • 허철이 주요문과 함께 들어서고, 주요문은 허철과 다르게 뒤가 꿀린 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 모든 사람이 이 둘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이 구역에서 유명한 양아치들이었는데, 집안을 믿고 도박에, 여자에 아주 방탕하게 지내왔었다.
  • 그 말뜻은 서예지가 마치도 그들과 함께 있다가 온 것이라는 뉘앙스였다.
  • 서예지가 차갑게 말했다.
  • “집사님, 저 사람들이에요!”
  • 집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허철이 과하게 놀란 척 큰 목소리로 말했다.
  • “에이, 그러면 재미없어. 아까 침대에서 오빠 오빠하고 말만 잘하더구먼. 그러다 누군가 지나가는 모습에 놀라서 내 뒤통수를 치려는 거야? 너 정말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거짓말 잘하네.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나 감방 가야 해! 그리고 내가 너보다 돈도 많지 집안도 좋지, 뭐하러 너를 죽이려고 했겠어? 핑계도 좀 말이 될 만한 걸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