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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소생, 나를 축복해 주세요!

  • 남의 말을 엿듣는 것은 매우 비도덕적인 일이지만, 호기심 때문에 나는 가지 않고 문 밖에 서 있었다.
  • 소시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 “지금 당신과 소생, 사이가 꽤 괜찮아 보여요.”
  • “우린 잘 지내지.”
  • “그럼 됐어요.”
  • 소시는 여전히 냉담한 말투다.
  • 그녀는 아무에게나 다 이렇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본체만체하는 모습이 서경천으로 하여금 애정이 식지 않게 할지도 모른다.
  • “언제 결혼해요? 내가 가서 축하해 줄게요.”
  • “그 때 가서 알려줄게.”
  • 두 사람의 대화는 담담하여 듣기 싫었다.  
  • 몰래 도망치려고 하는 데 갑자기 서경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 “소생아.”
  • 나는 놀랐다. 내가 문 앞에서 엿듣는 것을 그가 어떻게 알았을까?
  • 하는 수없이 문 앞에서 벗어났다. 두 사람은 소시의 창문에 기대어 서 있는데, 미남 미녀라 정말 눈이 부신다.
  • 서경천은 나에게 손짓을 했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나의 허리를 안으며 예기치 않게 내 입술에 키스하고는 웃으면서 조롱하는 투로 말했다.
  • “어디 갔어? 네가 보이지 않아서 찾으러 왔어.”
  • “날 찾아 언니방에까지 왔군요.”
  • 나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 “마침 소시씨를 만나 몇 마디 얘기했지.”
  • 그는 내 입술에 또 한 번 키스하였다. 만약 내가 몰래 그를 꼬집지 않았다면 그는 딥 키스할 셈이었다.
  • 소시는 우리 맞은편 가까이에 서서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고 지켜만 보았다.
  • “서경천씨, 소생에게 할 말이 있으니 잠깐 자리 좀 피해주세요.”
  • 온 화성을 둘러 봐도 소시만이 이런 명령조로 서경천과 말할 수 있다.
  • 서경천을 차버리고도 그렇게 도도하니 그녀도 참말 대단한 것 같다.
  • 더욱 놀라운 것은 서경천이 정말로 내 허리를 안던 손을 놓고 물러나는 것이었다.
  • 소시는 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의 살결은 하얀 등불에 비쳐 더욱 맑고 깨끗해 보인다.  
  • 그녀는 연못 가운데 핀 백련화처럼 아름답지만 손에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만 같았다.
  • 그러나 지금 백련화라는 말도 사람을 욕하는 것이 되었다.  
  • “소생”
  • 그녀는 빨간 입술을 가볍게 열었다.
  • “네가 준 주소로 가서 찾아봤는데 그 사람을 찾지 못했어.”
  • “아.”
  • 나는 실망하여 멍하니 소시를 바라보았다.
  • “네가 말하던 그 대학교도 알아봤는데 그런 학생이 없데. 그 사람 영국에 있는 게 확실하니?”
  • “네, 그가 가기 전에 내게 알려준 거예요. 후에 편지까지 보냈었어요.”
  • “근데 그 대학교의 모든 학생들의 자료를 다 찾아봤는데 그에 대한 소식을 찾지 못했어. 그가 영국에 없다고는 확정할 수 없지만, 분명 네게 대준 학교엔 없는 것 같아.”
  • 나는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렸다.
  • “소생, 넌 이미 결혼했어. 왜 그 사람을 찾는 거야?”
  • “이혼할 거에요.”
  • 나는 낮은 목소리로 혼자 말했다. 소시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 “서경천씨와는 괜찮지?”
  • 괜찮기는. 반년 동안이나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어제 우리 둘의 관계는 탈바꿈이라고 할 수 있는 승화가 있었다.
  • 나는 잠시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 “언니, 고마워요. 전 먼저 일어날게요.”
  • 내가 돌아서는데 소시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 “소생아.”
  • “네?”
  • 나는 몸을 돌렸다.
  • “왜요?”
  • “서경천 그 사람 매우 복잡해.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야...”
  • 소시는 말하려다 멈추었다. 그녀가 이렇게 우물쭈물할 때가 매우 드물다.
  •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랐다.
  • “그가 너를 가까이 할 때는 정말 친해지고 싶은 게 아니고, 너한테 잘해줄 때도 그게 진심이 아니야.”
  • 그녀는 일어나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 나는 그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채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 난 소시와 별로 말을 섞어본 적이 없다. 그녀는 평소에 나를 보면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은 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도도했다. 지난번엔 내가 너무 급한 마음에 그녀도 영국에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었다.
  • 그래서 지금 그녀가 갑자기 내게 이런 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 그러나 나는 조금 전 서경천의 그런 행동이 작용한 것 같다는 느낌이 살며시 들었다.
  • 소시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서경천에게 전혀 무관심한 것 같지는 않았다. 실은 여전히 마음속으로 서경천을 사랑하고 있다고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 그럼 소시는 왜 그와 헤어졌을까?
  •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소시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그녀의 방에서 나왔다.
  • 그녀가 줄곧 뒤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 다만 나는 수년 동안 소식이 끊겼고 심지어 그는 영국에 있지도 않으면서 당시에 나에게 영국에 있다고 말했던 것에 상심이 컸을 뿐이다.
  • 우리가 떠날 때 소시가 내려와서 배웅을 해줬고 백우도 같이 있었다. 나는 우리 넷이 함께 있으니 되게 변태적인 사각 관계인 것 같았다.
  • 아니지, 나까지 포함시킬 수는 없지, 나는 단지 서경천에 의해 끌려들어 왔을 뿐이다.
  • 돌아가는 내내 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여전히 기운이 나지 않았다. 
  •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들어가려다 문 앞을 막고 있던 서경천의 가슴에 부딪혔다.
  • “왜 그래요?”
  • “님을 못 찾아서 속상해?” 
  • 그는 한 쪽 팔을 문에 버티고 자기의 머리를 팔에 얹은 채 기대고 얄밉게 웃고 있었다.
  • “내가 소시와 얘기하는 걸 엿 들었어요?” 
  • 나는 서경천에게 이렇게 저속한 취미가 있는지 몰랐다.
  • “너도 나와 소시의 대화를 엿 듣지 않았어?” 
  • 그는 마침내 팔을 내려 나를 들여보냈다. 나는 들어가면서 말했다.
  • “당신과는 상관없어요.”
  • 갑자기 그는 나의 팔꿈치 안쪽 인대를 잡았는데 엄청 시큰거렸다. 
  • “아, 아파요.” 
  • 나는 몸부림쳤다..
  • “소생아, 너는 아직 내 마누라니까 어떤 남자에게도 집적거리지 마.”
  • 그는 경고하는 말투였다.
  • “나는 그저 소시에게 그가 어디 있는지 찾아달라고 부탁했을 뿐이에요.”
  • “집적거리는 게 아니면 그를 왜 찾아? 찾아서 뭐 하려고?”
  • 그가 갑자기 손을 놓자 나는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 “네가 누굴 찾든 다른 남자와 관련된 모든 행동은 우리가 이혼한 뒤에 얘기하자.” 
  • 그가 문을 박차고 나가는 걸 보니 오늘 밤은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 같았다.
  • 내가 보기에 그가 화난 것은 내가 예일주를 찾아서가 아니라 소시가 그를 상대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 당시 내가 왜  아버지에게 떠밀려 이 흙탕물 속에 빠져들어왔는지 몹시 후회됐다. 
  • 교이한테서 걸려온 영상통화에서 그녀의 머리가 짧게 잘려있었다. 원래도 짧은 머리였는데 더 짧게 잘랐다.
  • 그녀는 아주 들떠 있었다. 
  • “소생아 너 그거 알아, 산이가 금방 나에게 프러포즈 했어.”
  • “뭐라고? 산이가 누군데?” 나는 아직도 예일주를 찾지 못한 슬픔 속에 잠겨 헤어 나오지 못했다.
  • “산이 말이야. 어제저녁 우리 게이바에서 만났잖아!”
  • 아, 생각났다. 그 잘 생긴 남자.
  • 하지만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 “ 프러포즈?” 
  • “그래, 나 받아들였어.” 
  • “미쳤어? 네가 대답할 때 그 사람은 너를 남자로 본 거야 아니면 여자로 본 거야?”
  • “그건 중요하지 않아. 진정한 사랑은 성별을 가리지 않아. 그가 나를 사랑하기만 한다면 내가 남자든 여자든 신경 쓰지 않을 거야.”
  • “너 미쳤구나. 교이야 내 말 좀 들어 봐...”
  • “나 축복해 줘!” 
  • 교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 그녀의 고질병이 또 도졌다. 연애만 하면 정신을 못 차린다.
  • 나는 왜 이 일이 이렇게 믿음이 안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