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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소시가 돌아오다

  • 무슨 말?
  •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머리와 잠옷은 물에 젖었고 나는 서경천의 촉촉한 품속에 갇혔다.
  • 나는 고개를 들고 시선은 그를 쫓아갔다.
  • “무슨 말이요?”
  • “네가 알아맞혀 봐.”
  • “당신 수라고 한거?”
  • 그는 고개를 저었다.
  • “당신 양성애자라고 한거?”
  • 그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 그는 나에게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기억을 되새겨봤고 그는 나의 쇄골에 키스를 남겼다.
  • 그래, 나에겐 쇄골이 있다.
  • 하지만 난 이미 이성을 잃었다, 이성의 일부분은 샤워헤드에서 쏟아지는 물에 의해 씻겨 내려갔고 나머지 일부분은 서경천의 뜨거운 키스에 녹아버렸다.
  • 어떻게 이토록 정력이 넘치는지 모르겠다, 오늘 하루만 해도 벌써 세 번째다.
  • 비록 우리 사이에 사랑이 없다는 걸 알지만 나는 딱히 거부감이 없었다.
  • 내가 어릴 적부터 무시와 경멸의 환경 속에서 자란 탓인지 서경천 같은 남자한테 총애를 받으니 이 순간만큼은 뜻밖에도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 순식간에 지나친 감정이었지만 확실히 존재했다.
  • 그래도 전체 화성 여자들이 탐을 내는 존재이니까.
  • 또한 그는 모든 화성 남자들이 탐내는 존재일 수도 있다.
  • 한 여자에게 가장 비참한 것은 다른 여자들이 자기 남자를 눈여겨 보는 것에 더해 남자들까지 눈여겨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 다행히 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 나에게도 잊지 못할 사람이 있다. 단지 그를 못 기다리고 서경천과 혼인했을 뿐이다.
  • 갑자기 그는 나의 턱을 들었다. 서경천이 안개 사이로 나를 보고 있었다.
  • “나와 관계를 가질 때 다른 남자 생각을 한 거야?”
  • 나는 온몸이 굳어서 우두커니 그를 바라보았다.
  • 투시안이라도 있는 건가? 어떻게 다른 남자 생각을 한 걸 알아챘지?
  • 그의 입가에는 흉악한 미소가 일었다.
  • “들켰어?”
  • 잠옷이 흠뻑 젖어 몸에 붙으니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한 손을 빼서는 단추를 풀었다. 그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 “예일주. 올해 24세, 너와는 이웃이었고 어릴 때부터 죽마고우였고 너의 아버지가 집에 데려온 뒤로 그는 외국으로 유학을 갔지.”
  • 그는 나의 일에 대해 손금 보듯 환히 꿰뚫고 있었다. 사전에 사람 시켜 알아본듯했다.
  • 나는 겨우 축축한 잠옷을 바닥이 던져버렸다. 그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 “그는 알아? 네가 다른 남자 앞에서 벗은 거? 그가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어? 아, 아마도 없겠지.” 그는 자문자답했다.
  • “아마 오늘이 너의 첫 경험이겠지, 우리 집 소파 더럽혔었지.”
  • 나의 첫 경험을 그에게 빼앗긴 것도 결판 내지 않았는데 이젠 적반하장이네.
  • 나는 화가 나서 그의 품에서 벗어나와 몸을 돌려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문을 열기 바쁘게 그는 내 허리를 안아 올렸다.
  • “아직 안 끝났어.”
  • “이거 놔요. 서경천씨도 사람 난처하게 하네요? 누워서 당신이 따먹길 기다리는 여자도 적지 않잖아요?”
  • “나한테 잘 보여야 하는 거 잊지 마, 내일 나랑 함께 집에 가고 싶으면.”
  •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샤워실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유난히 더 싸늘했다.
  • 그는 나쁜 놈이다. 간신히 끌어올린 나의 열정마저 식게 만들었다.
  • 하지만 그는 이내 나를 다시 품에 가두고 강약 조절을 해가며 나의 귓볼을 깨물었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날 미치게 만들었다.
  • 그는 나를 벽으로 밀치고 손으로 속옷 끈을 잡아당겼다.
  • “충고하는데 난 여자가 나랑 관계 가질 때 다른 남자 생각하는 거 별로야. 지금 바로 머리속에서 그 남자 이름을 지우는 게 좋을 거야.”
  • “내 머리가 컴퓨터도 아니고 어떻게 클릭 한 번에 삭제돼요.”
  • “뭐?”
  • 그의 미소는 안갯속에서 희미했다. 갑자기 그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 닿았다.
  • “지금 당장 잊어버리게 해줄게.”
  • 미친놈, 그는 물의 온도를 낮추고 내 몸을 차가운 물로 적셨다. 난 온몸을 부르르 떨며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는 호통하게 웃으면서 날 끌어안았다.
  • “어때? 다 잊었어?”
  • 그래, 그 순간 난 예일주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내 이름도 잊었다.
  • 오늘 나와 서경천은 처음으로 밤을 함께 보낸다. 겨우 욕실에서 걸어 나온 나는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말렸고 그는 침대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 그의 옆모습은 아주 괜찮았다. 핑크빛 조명 아래에서 여전히 외모가 빛났다. 나는 거울을 통해 그를 훔쳐보다가 그에게 들키고 말았다.
  • “오늘 한번 잤다고 우리 관계가 달라질 거라고 착각하지 마”
  • “전 그런 기대한 적 없어요.”
  • 난 바로 대답했다.
  • “입은 살아 있네.”
  • 비웃으면서 휴대폰을 내려놓은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 “아쉽지만 난 너 같은 스타일에 전혀 관심 없거든.”
  • “관심 없는데 저랑 하루에 세 번이나 했어요?”
  •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지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 그의 꿀 먹은 벙어리 같은 모습에 속이 시원했다. 갑자기 그의 귀여운 구석을 찾은 듯했다.
  • 비록 그는 비웃음으로 분위기를 전환했지만 여전히 고개 숙여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 “내일 저녁 식사에 누가 참석해?”
  • “가족들이요. 아버지, 계모, 오빠와 언니들.”
  • “언니들?”
  • 그는 또 한 번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 “소시가 돌아왔어?”
  • 소시는 계모와 우리 아버지의 둘째 딸이다.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성격이 차갑다. 나를 괴롭힌 적은 없지만 나를 응대하지도 않았다.
  • 서경천의 반응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와 소시 사이의 일이라면 나도 조금은 알고 있었다.
  • 소문에 의하면 그와 소시는 이미 혼인을 약속한 사이였고 연애도 했었다고 한다. 서경천도 그녀를 맘에 들어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반년 전에 소시가 갑자기 서경천과 파혼해 아버지와 계모를 당황시켰다.
  • 우리 집안의 비즈니스 규모가 확대 될수록 화성에서는 석씨 가문에 기대야 할 터, 갑작스러운 소시의 파혼으로 양가 모두 불안해했다. 내가 서경천이랑 혼인을 하게 된 것도 그가 홧 김에 소씨 가문의 딸이면 누구든 상관없다고 결혼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 큰 언니는 이미 결혼했으니 남은 건 나밖에 없었기에 난 어리둥절하게 서경천과 혼인하게 되었다.
  • 소시는 우리 결혼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루 전에 영국으로 간 채 반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 아버지는 전화에서 소시가 돌아왔다면서 서경천과 함께 밥 먹으러 오라고 했다.
  • 난 딱히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반대로 서경천의 반응은 꽤 큰 것 같았다.
  • 소시가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되면 그가 함께 가줄지 살짝 불안했다. 그는 앞을 주시한 채로 잠깐 멍 때리더니 대답했다.
  • “ 내일 저녁에 널 데리러 기사 보낼게.”
  • 이 말은 동의한다는 뜻인가?
  • 머리를 다 말리고 나는 침대앞으로 걸어갔다. 남자와 한 침대에 잔 적이 없어 조금 우물쭈물했다.
  • 다행히 서경천은 이미 나에게 등을 돌린 채로 누워있었고 난 침대 끝에 누웠다. 방에 보일러가 있지만 온 밤 이불을 덮지 않은 탓에 이튿날 감기에 걸렸다.
  • 서경천은 이미 출근했고 나는 휴지를 안은 채 연이어 코를 풀었다.
  • 이어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나를 보살피는 수이 이모가 상자를 안은 채 문 앞에 나타났다.
  • “석 아가씨, 도련님이 보내오신 겁니다.”
  • “네?”
  • 난 궁금증을 안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