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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호의를 악의로 받아들이다

  • 원래 백우는 고개를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움직이는 숫자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자 그는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 “뭐요?”
  •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 “자기자 위에 있었으니 분명히 공이지요. 근데 서경천의 성격을 봐선 수 같지 않은데.”
  • 그의 얼굴은 빨갛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그는 뇌 산소가 부족한 사람처럼 입술을 빨며 말했다. 
  • “소아가씨, 사실은 아가씨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그 뜻이 아니에요.” 
  • 나는 급히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 “ 자기가 서경천관 무슨 관계이든 난 상관 없어요. 그리고 나와 서경천과의 관계도 자기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그러니 맘 푹 놔도 돼요. 난 그저 궁금해서 그랬을 뿐이에요.“
  • “소아가씨…”
  • 그는 얼굴이 빨개졌다.
  • 됐어, 얼굴이 저 정도로 빨개졌는데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백우는 중한 부담에서 해방되듯 얼른 문을 박차고 나갔다.
  • 그러나 나는 왜서인지 그의 걸음걸이가 어디 불편한 사람처럼 이상하게 느껴졌다.  
  • 병실 입구까지 걸어간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호한 운동 때문에 저 미남의 모호한 부위가 다친 게 아닌가?
  • 나는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손가락으로 그의 등허리를 쿡 찔렀다.
  • 그는 고개를 돌렸다.
  • “소아가씨.”
  • 나는 가방에서 바셀린 하나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받아 들고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 “이건...”
  • “이거 아주 좋은 거예요. 피부가 트고 갈라지고 심지어 항문 열상에도....”
  •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 “다 효과가 있어요. 하루에 몇 번만 바르면 돼요.”
  • 백우는 반응 없이 바셀린을 손에 꽉 쥐었다. 이때 서경천이 병실 문 앞에서 크게 소리쳤다.
  • "소생, 뭐 하는 거야!"
  • 나는 깜짝 놀라 백우에게 황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 “꼭 써봐요!”
  • 내가 달려가자 서경천은 눈썹을 찡 그리고 나를 노려 보며 말했다.
  • “백우에게 뭘 주었니?”
  • “바셀린.”
  • “그게 뭔데?”
  • “스킨 컨디셔너에요. 필요한 경우 윤활유로도 쓸 수 있어요.”
  • 나는 아주 진심으로 그랬는데 그의 얼굴이 음산하게 변했다.
  • “소생, 재미있어? 내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해?”
  • “내가 어떻게 감히.”
  • 나는 즉시 두 손을 들어 투항하고 병실 안으로 눈길을 돌렸다. 할머니가 안에 누워 계셨고 밖에는 사람들이 가득 서있었다.
  • 모두 서씨 가족이었다. 서경천의 형제, 자매, 형수들로 한 방에 가득했다.
  • 그는 나의 손목을 꼭 쥐고 사람들 속을 뚫고 지나갔다. 그의 큰형과 둘째 형들이 모두 그에게 말을 건넸지만 못 들은 것처럼 반응이 없다.
  • 그는 이처럼 오만하고 자기 친형제들과도 이렇게 소원했다.
  • 그는 나를 끌고 할머니의 병상 앞에 왔다. 할머니는 혈관 색전 이었으나 그렇게 엄중하지는 않았다. 최근에 크림 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어 몰래 몇 개 드시고 갑자기 현기 증으로 병원에 실려왔던 것이다. 
  • 이제는 별일 없어 보인다. 할머니는 서경천을 보자마자 눈물을 닦았다.
  • “내 착한 손주야, 왜 이제야 오냐? 한발 늦게 왔어도 할머니를 보지 못할 뻔했어.”
  • “할머니.”
  • 서경천이 침대 옆에 앉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 “함부로 말씀하지 마세요. 할머니, 앞으로 담백한 음식을 잠복하시면 200세까지 살 수 있어요!”
  • “그럼 귀신이 되잖겠냐. 게다가 담백한 음식을 먹으면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
  • 할머니는 서경천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어, 소생아, 갈 때 입은 게 이 옷이 아니잖냐! 넌 왜 또 옷을 갈아입었니?”
  • “네.”
  • 할머니의 관찰력이 이렇게 예민하실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말문이 막혀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 할머니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시더니 무언가를 깨달은 듯 무릎을 치며 기뻐하셨다.
  • “알만 해. 알만 해. 이런 일은 좀 늦게 와도 되지!”
  • 이렇게 되자 나는 오히려 얼굴이 붉어졌다.
  • 할머니가 농담도 하시는 걸 보니 큰 장애는 없을 것 같았다. 서경천이 한시름 놓은듯 하다.
  • 비록 그에게 결함은 많지만 다행히도 대단한 효자였다. 할머니는 많은 손자들 중에서도 그를 가장 좋아하신다.
  • 집사가 할머니의 저녁 식사로 흰죽과 된장 아찌를 가지고 왔다. 할머니는 그저 한 번 보시더니 고개를 돌렸다.
  • “그 돼지 먹잇감을 버려. 난 안 먹을 거야.”
  • “할머니.”
  • 큰 형수가 비집고 들어와 집사가 들고 있는 도시락통을 받으며 말했다.
  • “이번에 쓰러질 뻔하신 건 평소에 기름진 음식을 많이 드신 것 때문이라고 의사 선생이 그랬어요. 그러니 이제는 좀 담백한 음식을 드셔야 해요.”
  • “난 네가 더 느끼하다. 너만 보면 혈압이 올라가.”
  • 할머니는 줄곧 손을 흔드셨다. 
  • “나가라.”
  • 동서들 중에서 할머니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큰 형수이다.
  • 서경천은 도시락 통을 형수한테 달리고는 나에게 쥐여주었다.
  • “당신이 해결해봐. 난 밖에 나가 기다리겠어.”
  • 마치 내가 할머니한테 다른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 그러나 내가 석씨 집안에 시집온 이래 집에서 나를 가장 좋아한 사람이 바로 할머니였다. 아마도 손자가 고우니 나도 고아하는 것 같았다. 서경천이 먼저 방을 나서자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 내가 도시락 통을 열고 죽을 담으니 할머니의 얼굴이 까맣게 변했다.
  • “그거 먹을 사람 있으면 먹어. 어차피 난 안 먹어.”
  • 나는 죽을 들고 할머니 앞에 앉아 한 스푼을 떠올렸다.
  • “할머니, 저를 잃고 싶으세요?”
  • “그게 무슨 소리냐?”
  • 눈만 가로저으면 눈썹이 올라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참 재미있었다.
  • “서경천이 저를 싫어하는 것을 할머니도 알고 계시잖아요. 그 사람이 일부러 저한테 어려운 임무를 맡겼는데 할머니께서 협조해 주지 않으시면 그 사람 또 이 핑계로 저를 쫓아낼 거예요. 할머니, 그럼 앞으로 누가 할머니와 놀아 주겠나요.”
  • 할머니는 부엉이처럼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아마도 이해득실을 따져 보시는  듯싶었다.
  • 할머니는 한참 동안 생각하시다 입을 열었다.
  • “그래, 그래, 널 위해 할 수 없지. 그럼 내 먹겠다.”
  • “좋아요!”
  • 나는 죽을 건네주었다.
  • “할머니, 제가 내일 몰래 장조림을 가져다 드릴게요.그럼 죽이 이렇게 싱겁지는 않을 거예요.”
  • “정말이냐?”
  • 고기가 있다는 말에 할머니의 눈이 번쩍거렸다.
  • 노인을 달래는 데는 내가 경험이 좀 있었다. 우리 집에도 할아버지 즉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계시는데 온 가족이 다 배척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나를 매우 좋아했다.
  • 할머니도 죽을 거의 다 드셨다. 나는 도시락 통을 들고 병실에서 나왔다.
  • 갑자기 서경천의 목소리가 한쪽에서 들려왔다.
  • “소생아.”
  • 나는 깜짝 놀라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 “깜짝이야.”
  • “할머니께서 죽을 드셨어?”
  • “네, 한 통을 거의 다 드셨어요.”
  • 나는 보온 통을 들며 말했다.
  • 그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 “네가 잘 할 줄 알았어.”
  • 나는 그가 나를 칭찬한다고 생각하고 도시락통을 들고 계속 걸어갔다.
  • 그가 갑자기 내게 물건을 하나 던져 주었다. 무의식적으로 받아 보니 바로 나의 그 바셀린이었다.
  • “뭐예요?”
  • 나는 물었다.
  • 그는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며 거둘 떠 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를 바짝 뒤쫓으며 말했다.
  • “설마, 당신이 수에요?”
  • 그는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해 보니 바셀린을 다시 그에게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 “그럼, 이거 진짜 필요하겠네요. 정말 효과가 좋아요.”
  • “소생!”
  • 그는 바셀린을 휴지통으로 버리더니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 그는 항상 내 호의를 악의로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