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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나는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

  • 화려한 레스토랑에 앉아 있으니 옆을 스치는 사람들은 모두 잘 차려입은 미인들뿐이었다. 내가 이렇게 코트를 입고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 정말 추하고 여기 분위기와는 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스테이크 하나 자르는데도 땀을 뻘뻘 흘렸다.
  • 소시가 금방 스테이크 하나를 자르고 나를 보며 물었다.
  • “소생아, 너 많이 더워?”
  • "아니야. 이거 식은땀이야."
  • "더우면 코트 벗어. 그 코트 비싼 거야?"
  • "물론 아니지."
  • 서경천은 싸늘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
  • "소시가 벗으라는데 좀 벗지그래. 그래도 당신을 생각해서 그러는 건데."
  • 나는 앞에 있는 포크로 그를 찔러 죽이고 싶었다. 다른 사람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도 서경천 당신은 알잖아? 내가 어떻게 벗냐고?
  • 나는 웃음며 말했다.
  •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 나는 미친 듯이 화장실로 달려가 코트를 벗어 세면대 위에 올려놓았다. 코트는 너무 두껍고 더워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 나는 코트를 내려놓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화장실에서 나와 손을 씻으려고 하는데 코트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 나는 안팎을 다 찾아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그녀는 모른다고 말했다.
  • 나는 거울 앞에서 당황한 자신을 보았다, 이 꼴로 어떻게 나가지?
  • 여비서의 깊게 파인 스웨터는 너무 타이트해 내가 조금만 가슴을 펴도 가슴라인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 다행히 휴대폰을 가지고 있어 할 수 없이 서경천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 전화를 받기는 받았는데 말투가 딱딱했다.
  • "화장실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전화를 해?”
  • "경천 씨."
  • 나는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낮은 소리로 말했다.
  • "당신 재킷 좀 가지고 여기로 와요. 내 코트는 누가 훔쳐 가서 지금 내가 나갈 상황이 못돼서 그래요."
  • "너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 “내가 왜 이렇게 됐어요? 당신이 내 옷을 찢는 바람에 이렇게 됐잖아요."
  • 내가 격동되여 목소리가 커지자 내 곁을 지나가던 아가씨가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 나는 얼굴을 가리고 구석으로 또 움츠리며 말했다.
  • "경천 씨가 만약에 옷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면 당신이 나를 구박한다고 할머니께 말하겠어요."
  • "할머니를 방패로 삼는 것 외에 또 뭘 할 줄 알아?"
  •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요. 오늘 이혼 얘기 때문에 당신 기분 나빴고 그래서 날 골탕 먹이는 거 내가 모르는 줄 알아요..."
  •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끌려 화장실 밖으로 나왔고 한 사람의 품에 안겼다.
  • 고개를 들어 보니 서경천이었다.
  • 보아하니 완전히 인간성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이미 화장실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 그의 팔에 재킷이 걸려 있었다. 내가 급히 집으려는데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 "이렇게 그냥 가져가?"
  •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 서경천이 옆으로 살짝 몸을 기울이자 나는 그의 뒤에서 소시와 강자태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
  • 내가 잠시 아무런 반응도 없이 서있자 서경천이 갑자기 한 손을 들어 내 허리를 껴안았다.
  • "남들은 결혼을 안 했는데도 저렇게 애정을 과시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해야 될 것 같아?"
  • 나도 자기를 포옹해 달라는 건가?
  • 고작 재킷 하나 부탁했을 뿐인데 안기기까지 해야 하나? 내가 팔을 뻗기도 전에 서경천이 내 허리를 끌어안고 나에게 키스를 했다.
  • 나는 그가 진심으로 나에게 키스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나를 이용해 소시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 남의 도구로 취급 당하는 것이 정말 어이가 없었다.
  • 나는 곁눈질로 소시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거리가 멀어 그의 얼굴 표정은 정확하게 볼 수가 없었다.
  • 소시는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나는 입술 사이로 한마디 내뱉었다.
  • "소시가 지금 우리를 안 보고 있으니 이제 그만 연기해요."
  • 서경천이 그제서야 나를 놓아 주었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을 닦더니 재킷을 나에게 던졌다.
  • 나는 재킷을 입고 그의 뒤를 따라가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분위기가 아까보다 더 어색해졌다.
  • 나는 서경천이 왜 나를 여기로 데려왔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바로 국면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소시가 애정을 과시할 때 자기에게도 그럴 상대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 식사 후 나는 병원에 가서 할머니를 퇴원 시켜야 했다. 서경천에게 함께 가지 않겠는가고 묻자 중요한 미팅이 있다고 하여 혼자 가기로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소시가 말했다.
  •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어? 그럼 나도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네.”
  • 서경천은 아무 대답도 없이 내 몸에 걸친 자기의 재킷을 가리켰다. 내가 옷을 쥐고 불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나에게 카드 하나를 던져 주었다.
  • "옆에 의류매장이 있으니 가서 하나 사 입어."
  • 서경천은 먼저 가고 나는 소시와 함께 의류매장에 들어갔다. 우리 둘은 어려서부터 사이가 별로여서 나는 옷을 고르면서도 그녀에게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
  • 그러나 그녀의 표정을 보니 나의 안목이 마음에 안 드는듯 했다.
  • 그래도 여비서의 옷보다는 훨씬 좋았다.
  • 내가 계산할 때 소시는 카운터 옆에서 휴대폰을 가지고 놀다가 무심코 입을 열었다.
  • "아까 너랑 서경천이 화장실 앞에서 키스하는 거 봤어."
  • 나는 그녀가 이렇게 직선적일 줄 몰랐는데 좀 의외였다.
  • 분명 나와 서경천은 합법적인 부부인데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나는 얼렁뚱땅 넘기고 싶었지만 소시는 끝까지 귀찮게 굴었다.
  • “보아하니 서경천이랑 잘 지내나 봐?”
  • "네가 본 그런 게 아니야."
  •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 "그럼 어떤 거야?"
  • "언니는 아직도 서경천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아."
  • 내가 정곡을 찌르자 소시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바로 웃으면서 말했다.
  • "나는 그저 너에게 서경천은 겉으로 보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걸 일깨워 주고 싶었을 뿐이야."
  • "그럼 어떤 모습이지?"
  •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매장을 나섰다. 나는 매장 직원이 건네준 카드를 받아 쥐고 부랴부랴 그녀의 뒤를 따랐다.
  • 소시가 차를 몰고 오자 나는 그녀의 차를 타고 병원에 할머니를 모시러 갔다.
  • 할머니의 병실 밖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큰 형님과 작은 형님도 있었는데 모두 할머니를 모시러 온 것이었다.
  • 그들은 항상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데 소시를 보더니 아주 친절하게 인사했다.
  • "어머, 오랜만이에요. 소시 아가씨 점점 더 이뻐지네요?"
  • "오랫동안 우리 집에 놀러 오지 않았는데 나중에 꼭 한번 놀러 와요. 소시 아가씨와 카드 게임하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항상 나한테 좋은 패만 주잖아."
  • 서경천의 어머니도 있었다. 다들 고부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나와 그녀의 사이도 별로였고 그녀와 할머니의 관계는 더 좋지 않았다. 할머니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집에서 할머니를 돌보는 유숙모 보다 더 친절하지 않았다.
  • 서경천의 어머니는 소시를 보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 이 집에 들어온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그녀가 나를 보며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그들은 인사를 주고받았고 나는 할머니를 보러 들어갔다. 할머니는 양반다리를 하고 침대에 앉아 불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나는 허리를 약간 숙이고 물었다.
  • "할머니, 왜 그러세요?"
  • 할머니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 "시끄러워 죽겠어. 내가 죽었니? 다들 발인하러 왔니!"
  • "퉤 퉤 퉤."
  • 나는 급히 발을 동동 굴렀다.
  • "할머니, 함부로 말씀하지 마세요. 어서 퉤 퉤 퉤 하세요!"
  • "내가 왜 퉤 하냐.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내가 뭐 무서울 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