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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내가 누구를 건드렸지?

  • 어떻게 된 일인지 잘 생각해 보자.
  • 하지만 생각할 필요가 있나? 백우가 바람을 피웠고 증거가 바로 눈앞에 있지 않나?
  • 나는 백우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볼 때까지 그의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이렇게 어두운 불빛 아래인데도 나는 그가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았다.
  • 아, 백우는 부끄러움을 잘 타는 불륜 게이였구나.
  • 내가 급히 몸을 돌리자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더니 백우가 뒤쫓아와 나의 손목을 잡았다.
  • “소아가씨”
  • “어,”
  •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의 난처한 표정을 돌아보았다.
  • “여기서 만나네요? ”
  • 내가 모르쇠를 하자 그는 얼굴이 더 빨개졌다.
  • “소아가씨…”
  • 그는 입술을 깨물고 말을 하려다가 그만 멈췄다.
  • “걱정 마세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나한테 입단속 시킬 필요가 없어요.” 
  • 나는 농담반으로 말했다..
  • “석씨한테도 말하지 말아 줘요.”
  •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 했다.
  • 당연히 말하지 말아야겠지, 배신당한 쪽은 늘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고 나서 알게 되는 법이니까.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요, 말하지 않을게요.”
  • 그제서야 그는 나의 손목을 천천히 놓았다.
  • “ 그럼, 이만 실례할게요.”.
  • “네. ”
  • 나는 그의 곁을 지나 모퉁이를 돌려다 참지 못하고 돌아보니 그와 포옹하던 그 남자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는 것 같았다.
  • 눈앞의 상황으로는 백우가 양다리를 걸친 게 분명했다. 오후에는 서경천과 다정다감하더니 저녁에는 술집에서 또 다른 남자와 껴안고 있다.
  • 하, 게이의 세계를 나는 알 수가 없다.
  • 화장실을 다녀온 후 내 마음은 많이 무거워졌다.
  • 교이의 옆에는 어느새 멋진 오빠가 하나 있었는데 얼굴이 참 잘 생겼다.
  • 그녀는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 “이쪽은 산이라고 해.”
  • 잘생긴 오빠는 나에게 미소를 지었는데 그 미소는 사람을 현혹시켰다.
  • 나는 교이에게 귓속말을 했다. 
  • “저 사람 너를 남자로 생각해 아니면 여자로 생각해?”
  • “당연히 남자로 생각하지, 그렇지 않으면 날 상대할 리가 있겠어?”
  • “너 제정신이야.”
  • 교이는  항상 이렇게 미친 듯 탈선하는 짓을 하는 바람에 그녀의 어머니는 꽤 골치가 아팠다.
  • 나는 갑자기 흥이 깨져 가방을 들고 교이에게 말했다. 
  • “나 먼저 갈게.”
  • “왜? 방금 왔잖아, 우울해서 많이 마셔야 된다더니?”
  • “됐어.”
  • 아마도 백우를 만났던 일 때문인지 문득 서경천이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니 조금 안쓰러웠다.
  • 비록 내가 그를 동정할 이유는 없지만.
  • “너는 계속 허튼짓해, 하지만 경고하는 데 정도껏 해.”
  • 나는 교이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 “너 보디가드를 데리고 왔지?”
  • “응”
  • “그럼 나는 먼저 갈게.”
  • 술집에서 나오는데 찬바람이 불어와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 바깥의 맑은 공기가 나의 정신을 맑게 하였다.
  • 예전에 나는 게이의 생활이 나와 아주 멀다고 느꼈는데 지금 내 옆에 있을 줄이야.
  •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너무 늦지 않은 10시 정도였다.
  • 서경천의 어머니와 그녀의 친구들이 거실에서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 집에 분명히 게임 룸이 있는데 그녀들은 하필이면 거실을 택했다.
  • 나는 발을 들여놓았다가 다시 뺏다.
  • 됐어, 그녀들이 흩어지면 다시 들어가자, 서경천의 어머니는 내가 출신이 좋지 않다고 나를 싫어하셨다. 혹시라도 내가 그녀의 친구들 앞에 나타나서 그녀를 망신시켜서는 안 된다.
  • 나는 정원에서 거닐다 어둡고 추워서 참다못해 몇 번이나 재채기를 했다.
  • 재채기를 한 후 정원의 깊은 곳에서 붉은 점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맡아보니 담배 냄새였다.
  • 누가 저기서 담배를 피우지?
  • 살금살금 다가가보니 한 키 큰 남자가 돌 의자에 앉아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 “너 어디 길래 이렇게 오랫동안 전화를 안 받아? 백우…”
  • 백우에게 전화하는 서경천의 애원 섞인 말투는 마치 어린 신부가 집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데자뷰 같았다.
  • 헉, 서경천 너도 오늘 같은 날 이 있구나.
  • 내가 알기로는 화성에서 그를 좋아하는 부잣집 아가씨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가 결혼해서 여러 명을 울렸다고 했을 때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는데 이제 그가 남한테 뺏긴 기분이 어떤지 느낄 차례다.
  • 나는 엿듣고 막 돌아서려던 참에 갑자기 서경천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소생아…”
  • ‘이렇게 캄캄한데 그가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지?’
  • 나는 하이힐을 신고 있어서 뛰지도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 “이런 우연이?”
  • “너 내전화를 엿듣는 저속한 취미가 있어?”
  • 그는 일어나서 담배꽁초를 버리고 내게로 걸어왔다.
  • “몰래 엿들은 게 아니라 여기 빛이 있길래 와봤어요.”
  • 나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 그는 내 앞에 서더니 갑자기 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놀라서 뒤로 나자빠졌다.
  • 그는 재빠르게 손을 내밀어 나의 허리를 안아주어서야 나는 비로소 넘어지지 않았다.
  • 그의 눈은 캄캄한 정원에서 매우 밝았다.
  • “너 술 마셨어?”
  • 그는 정말 개코였다. 나는 분명히 한 잔밖에 안 마셨는데.
  • “네.”
  • “누구랑?”
  • 왜 이렇게 자세하게 물어보는 거지? 그는 이전에 나를 상대하지도 않았다.
  •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 “교이랑 마셨어요.”
  • 그가 손을 놓자 나는 다시 뒤로 나자빠져 급히 손을 내밀어 그의 목을 껴안았다.
  • 그는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 “손 놔.”
  • 그는 내가 일부러 자기를 유혹하려는 줄 아나 본데 천만의 말씀, 발밑에 자갈이 있어 똑바로 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나는 몸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노력할수록 더욱 똑바로 서지 못하고 서경천 에게  기대어 그를 뒤로 밀치며  아까 그가 앉았던 돌 테이블 쪽으로 넘어뜨렸다.
  • 나는 마침내 똑바로 섰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내 손목을 꽉 붙잡았다.
  • “이렇게 급해?”
  • 무슨 뜻인지 나는 모르겠다.
  • 나는 그의 품에서 일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는 내 손목을 꼭 잡고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 “여기가 환경이 괜챃네.” 
  • 무슨 뜻이지? 나는 눈을 부릅뜨고 보니 서경천이 내 허리를 잡고 갑자기 뒤집어 나를 돌 테이블에 눕히고 그가 내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 조명이 그다지 밝지 않은 정원에서 나무 그림자가 서경천의 잘생긴 얼굴에 비췄는데 명암이 엇갈려 나는 그의 얼굴 표정을 똑똑히 볼 수가 없었다.
  • 그는 생긴 것은 아주 잘생겼지만 또한 매우 고민스러웠다.
  • 그의 얼굴의 음영 부분은 그를 신비롭고 음울 하게 했다.
  • 그의 얼굴의 밝은 부분은 의미심장 한 근심을 담고 있었다.
  • 그는 늘 복잡한 사람이었다. 내가 눈을 깜박이는 사이에 그의 얼굴은 이미 나를 향해 다가왔다.
  • 그의 차가운 혀끝이 내 입술에 닿았을 때 나는 방금 교이가 내게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 “어떤 사람들은 장소의 선택에 있어서 특별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 예를 들면 끝없이 넓은 평원이라든지 귀신이 나다니는 무덤이라든지…”
  • 그녀의 한마디가 적중했다. 보아하니 서경천이 진짜 장소를 선택하는 특별한 취미가 있는 것 같았다.
  • 싸늘한 밤, 정원에서 그의 손은 나의 옷깃을 더듬어 힘껏 잡아당겼다.
  • 나는 소리를 질렀다.  
  • “이거 당신 여비서 옷이에요.
  • 하루 사이에 나의 치마는 두 개나 찢겨 버렸다.
  • 서경천은 한 마리의 늑대와 같이 오직 그의 감정에 근거하여 갈증을 푼다.
  • 그는 힘이 세서 나는 당해내지 못하고 그저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 그는 인성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나를 안고 돌 테이블에 그의 옷을 깔고 나를 올려놓은 뒤 다시 나에게 덮쳤다.
  • 정원에는 자목련의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맴돌고 서경천의 열정은 내 몸에 피어올랐다.
  • 나는 그의 아내이니 그를 밀어낼 이유가 없다. 단지 왜 내가 백우의 대역이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서경천은 백우의 몸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나를 찾아와 욕구를 해소하려고 하는 건가?
  • 갑자기 귓불에 통증이 전해졌고 서경천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 “딴 생각 하지 말고 집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