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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는 자극을 받은 것이다

  • 수 이모가 들어와서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열었다. 고개를 내밀어 보니 안에는 예쁜 치마, 그리고 함께 매치할 액세서리와 하이힐이 들어있었다.
  • 무슨 뜻이지? 서경천이 왜 나한테 선물을 보내지?
  • 나는 상자를 두고, 수 이모께 감사 인사를 드리자 그녀는 나갔다.
  • 나는 부드러운 치마를 만지며, 서경천에게 전화를 걸었다.
  • 바쁜지 폰을 어깨에 바친 채로 통화하는 듯했다.
  • “내가 보낸 선물은 받았어?”
  • “왜 저한테 선물을 보냈죠?”
  • “어제의 보상으로 주는 거야.”
  • “저의 처음을 옷과 액세서리로 바꿀 수 있을 거 같아요?”
  • “안 가져도 돼. 그러면 옷이랑 액세서리 따위도 없어.”  
  • 그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 “별일 없으면 끊을게.”
  • 나는 기가 막혔다. 선물 받고도 이렇게 억울하게 받다니.
  • 그래도 저녁에 나는 서경천이 선물한 옷과 신을 신었다. 내 옷장은 석씨 집안 며느리답지 않게 너무 초라해서 못 봐줄 지경이었다. 오늘은 집에 밥 먹으러 가는 날이니 나의 허영심도 약간은 작용했다.
  • 기사님이 날 먼저 픽업하고 함께 서경천한테로 갔다.
  • 백우도 자리에 함께 했다. 비서실장은 크게는 비즈니스 활동부터 작게는 가족모임까지 전부 동반해야 한다.
  • 백우는 여전히 내가 어색한 지 보고 웃을 뿐 다른 얘기는 없었다.
  • 서경천과 결혼한 뒤, 처음으로 같이 집으로 돌아온 터라 아버지는 서경천을 보고 무척이나 기뻐하시며 힘껏 안아주셨다.
  • “네가 많이 바쁘다고 소생한테서 들었어. 오늘 드디어 시간을을 냈구나.”
  • 계모의 표정은 많이 복잡했다. 서경천이 그녀의 사위가 되길 원했지만 나를 그녀의 딸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서경천이 소시랑 결혼하는 것을 바랐다.
  • 우리는 거실에서 얘기를 나눴다. 서경천과 아버지는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옆에 앉아 과일을 먹었다.
  • 서경천은 인기가 많았다. 평소에 내가 집에 돌어오면 아무도 말도 안 걸어주더니 그가 오자 큰 언니와 큰 형부까지 옆에 앉아서 분위기를 맞췄다.
  • 소시를 보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위층으로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 고개를 돌려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하는데 서경천이 갑자기 내 손목을 잡아 그의 옆으로 당겼다. 그러고는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고 고개를 돌려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 “좀 전에 아버지와 계속 얘기하느라고 당신을 깜빡 잊었네. 화 안 났지?”
  • 지금까지 줄곧 나에게 못되게 굴기만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부드럽게 대하는 건 무슨 속셈이지?
  • 이때, 발자국 소리가 벌써 소파 뒤에까지 가까워졌다. 이어 소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버지, 어머니.”
  • 머리를 들었더니 소시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긴 생머리는 어깨를 덮었고, 연보라색 실크 롱 스커트가 그녀를 더 여리여리하게 만들었다.
  • 그녀는 우리를 못 본 듯 차가운 눈빛을 한 채 스쳐 지나갔다. 나는 항상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무시를 당해서 이미 익숙했다.
  • 앗, 방금 서경천이 왜 나를 그렇게 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소시를 질투하게 만들기 위해 쇼를 한 것이다.
  • 그가 이렇게 유치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어린애 같은 수를 쓰다니.
  • 근데, 이런 짓을 하는 건 서경천이 아직도 소시를 좋아해서 일까?
  • 그는 게이가 아니였어?
  •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낮에 심심해서 인터넷에서 게이를 검색했었는데 게이는 대체로 몇 가지 원인으로 분류된다. 한 가지는 선천적인 성적 인식을 통해 동성만 사랑하는 것이다.
  • 다른 한 가지는 엽기적인 심리로 단순히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또 한 가지는 이성으로부터 몸에 상처를 받아 성적 관심을 동성으로 향한 것이다.
  • 아마도 서경천은 세 번째 원인인 것 같다.
  • 휴, 밖에서는 난폭하고 카리스마 있는 서경천이 소시 때문에 이렇게 상처받았으니 동정이라도 해야 될가?
  • 싫어, 그가 내 허리를 꼬집은 탓에 하마터면 아파서 소리 지를 뻔했다.
  • 나는 머리를 들어 그를 째려봤다. 그는 웃으면서 내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말했다.
  • “우리 자기 배고픈가 봐.”
  • “아, 그럼 식사하자. 식사하자”
  • 계모는 바로 소파에서 일어나 집사에게 말했다.
  • “육형수한테 식사 준비하라고 해”
  • 소시는 여전히 그 차가운 표정을 유지한 채 우리 앞으로 지나갔다.
  • 서경천의 눈길은 계속 그녀를 쫓는 듯했다. 나는 갑자기 뛰는 놈이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 밖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떠받드는 서경천이 차가운 미인 소시를 만나고 엉덩이 뒤에서 숨이 헐떡대도록 쫓았는데도 차였으니 막 나갈 수밖에.
  • 오늘 저녁식사는 틀림없이 매우 재밌을 것이다.
  • 나는 서경천 옆에 앉았고 소시는 우리 맞은편에 앉았다.
  • 오늘 식탁에 해산물이 아주 많다. 나는 봄만 되면 알레르기가 심하여 해산물을 먹을 수가 없다.
  • 서경천은 새우 한 마리를 집고 정열에 불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 "내가 까줄게."
  • 나는 그처럼 다정다감한 그에게 감사를 표시했고 그는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우를 까서 내 그릇에 담아 주었다.
  • 언니가 웃으면서 그를 보며 말했다.
  • "우리 소생이 봄철에 해산물을 먹지 않아요. 형부가 이렇게 살뜰한데 소생의 이 식습관을 깨버릴 수 있겠는지 모르겠어요."
  • 그들은 내가 먹지 않는 것만 알고 있지만 원인은 모르고 있다.
  • 서경천도 당연히 모르고 있다. 그는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했다.
  • 그는 느끼하게 웃더니 한 손으로 턱에 괴고는 애정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만 들을 수 있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먹어."
  • 나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척하며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
  • "알레르기가 있어요."
  • "한 마리 먹는다고 죽지 않아."
  • 나는 몹시 화가 났다. 그러나 서경천이 매우 인색한 사람이어서 그 사람 체면을 봐 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를 어떻게 괴롭힐지 몰랐다.
  • 나는 이를 악물고 새우를 입에 넣었고 그가 보는 앞에서 꼭꼭 씹었다.
  • 줄곧 말을 하지 않던 소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 "소생이 봄철에 해산물 먹지 않는 거 몰라요?"
  • 나는 서경천이 매우 난처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오히려 청산류수같이 대답했다.
  • "이젠 먹을 수 있어요."
  • 먹을 수 있어? 며칠 동안 맑게 갠 날씨가 아니길 바랐다. 햇볕을 쬐기만 하면 얼굴이 부어오르는데 알기나 해?
  • 서경천은 또 내 허리를  한번 꼬집었고 아픔을 느낀 나는 머리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의 웃는 모습은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 "소생, 그렇지?"
  • 내가 감히 말하는데 이 이름은 내가 10점의 비계를 먹듯이 듣기가 지겨웠다. 나는 허리가 몹시 아팠지만 그와 함께 연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네, 맞아요. "
  • 소시는 서경천에게 곁눈질 하나도 주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계속 음식을 먹었다. 
  • 서경천은 밥 한 끼 먹으면서도 정신은 딴 데 팔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술을 적지 않게 마셨다.
  • 나는 점점 내 판단이 옳다고 확신했다. 한편으로는 소시로부터 자극을 받아 남자를 좋아하게 됐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시를 단념하지 못하고 있는 그가 바로 양성애인 것이다.
  • 저녁식사가 끝난 후 모두가 거실에서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물건을 가지러 내방에 올라갔다. 바삐 결혼을 하여 가지고 오지 못한 물건들이 아주 많았다. 예를 들면 나의 베개. 베개닢이 낡기는 했지만 어머니가 나에게 만들어 준 것이다. 품에 안고 있으면 매우 안도감이 생긴다.
  • 나는 물건을 정리하고 방을 나섰다. 소시의 방을 지나는 순간 서경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당신의 그 약혼자는? 아직 살아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