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이모가 들어와서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열었다. 고개를 내밀어 보니 안에는 예쁜 치마, 그리고 함께 매치할 액세서리와 하이힐이 들어있었다.
무슨 뜻이지? 서경천이 왜 나한테 선물을 보내지?
나는 상자를 두고, 수 이모께 감사 인사를 드리자 그녀는 나갔다.
나는 부드러운 치마를 만지며, 서경천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쁜지 폰을 어깨에 바친 채로 통화하는 듯했다.
“내가 보낸 선물은 받았어?”
“왜 저한테 선물을 보냈죠?”
“어제의 보상으로 주는 거야.”
“저의 처음을 옷과 액세서리로 바꿀 수 있을 거 같아요?”
“안 가져도 돼. 그러면 옷이랑 액세서리 따위도 없어.”
그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별일 없으면 끊을게.”
나는 기가 막혔다. 선물 받고도 이렇게 억울하게 받다니.
그래도 저녁에 나는 서경천이 선물한 옷과 신을 신었다. 내 옷장은 석씨 집안 며느리답지 않게 너무 초라해서 못 봐줄 지경이었다. 오늘은 집에 밥 먹으러 가는 날이니 나의 허영심도 약간은 작용했다.
기사님이 날 먼저 픽업하고 함께 서경천한테로 갔다.
백우도 자리에 함께 했다. 비서실장은 크게는 비즈니스 활동부터 작게는 가족모임까지 전부 동반해야 한다.
백우는 여전히 내가 어색한 지 보고 웃을 뿐 다른 얘기는 없었다.
서경천과 결혼한 뒤, 처음으로 같이 집으로 돌아온 터라 아버지는 서경천을 보고 무척이나 기뻐하시며 힘껏 안아주셨다.
“네가 많이 바쁘다고 소생한테서 들었어. 오늘 드디어 시간을을 냈구나.”
계모의 표정은 많이 복잡했다. 서경천이 그녀의 사위가 되길 원했지만 나를 그녀의 딸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서경천이 소시랑 결혼하는 것을 바랐다.
우리는 거실에서 얘기를 나눴다. 서경천과 아버지는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옆에 앉아 과일을 먹었다.
서경천은 인기가 많았다. 평소에 내가 집에 돌어오면 아무도 말도 안 걸어주더니 그가 오자 큰 언니와 큰 형부까지 옆에 앉아서 분위기를 맞췄다.
소시를 보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위층으로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하는데 서경천이 갑자기 내 손목을 잡아 그의 옆으로 당겼다. 그러고는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고 고개를 돌려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좀 전에 아버지와 계속 얘기하느라고 당신을 깜빡 잊었네. 화 안 났지?”
지금까지 줄곧 나에게 못되게 굴기만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부드럽게 대하는 건 무슨 속셈이지?
이때, 발자국 소리가 벌써 소파 뒤에까지 가까워졌다. 이어 소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어머니.”
머리를 들었더니 소시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긴 생머리는 어깨를 덮었고, 연보라색 실크 롱 스커트가 그녀를 더 여리여리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우리를 못 본 듯 차가운 눈빛을 한 채 스쳐 지나갔다. 나는 항상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무시를 당해서 이미 익숙했다.
앗, 방금 서경천이 왜 나를 그렇게 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소시를 질투하게 만들기 위해 쇼를 한 것이다.
그가 이렇게 유치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어린애 같은 수를 쓰다니.
근데, 이런 짓을 하는 건 서경천이 아직도 소시를 좋아해서 일까?
그는 게이가 아니였어?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낮에 심심해서 인터넷에서 게이를 검색했었는데 게이는 대체로 몇 가지 원인으로 분류된다. 한 가지는 선천적인 성적 인식을 통해 동성만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엽기적인 심리로 단순히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이성으로부터 몸에 상처를 받아 성적 관심을 동성으로 향한 것이다.
아마도 서경천은 세 번째 원인인 것 같다.
휴, 밖에서는 난폭하고 카리스마 있는 서경천이 소시 때문에 이렇게 상처받았으니 동정이라도 해야 될가?
싫어, 그가 내 허리를 꼬집은 탓에 하마터면 아파서 소리 지를 뻔했다.
나는 머리를 들어 그를 째려봤다. 그는 웃으면서 내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말했다.
“우리 자기 배고픈가 봐.”
“아, 그럼 식사하자. 식사하자”
계모는 바로 소파에서 일어나 집사에게 말했다.
“육형수한테 식사 준비하라고 해”
소시는 여전히 그 차가운 표정을 유지한 채 우리 앞으로 지나갔다.
서경천의 눈길은 계속 그녀를 쫓는 듯했다. 나는 갑자기 뛰는 놈이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밖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떠받드는 서경천이 차가운 미인 소시를 만나고 엉덩이 뒤에서 숨이 헐떡대도록 쫓았는데도 차였으니 막 나갈 수밖에.
오늘 저녁식사는 틀림없이 매우 재밌을 것이다.
나는 서경천 옆에 앉았고 소시는 우리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 식탁에 해산물이 아주 많다. 나는 봄만 되면 알레르기가 심하여 해산물을 먹을 수가 없다.
서경천은 새우 한 마리를 집고 정열에 불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까줄게."
나는 그처럼 다정다감한 그에게 감사를 표시했고 그는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우를 까서 내 그릇에 담아 주었다.
언니가 웃으면서 그를 보며 말했다.
"우리 소생이 봄철에 해산물을 먹지 않아요. 형부가 이렇게 살뜰한데 소생의 이 식습관을 깨버릴 수 있겠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은 내가 먹지 않는 것만 알고 있지만 원인은 모르고 있다.
서경천도 당연히 모르고 있다. 그는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했다.
그는 느끼하게 웃더니 한 손으로 턱에 괴고는 애정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만 들을 수 있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먹어."
나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척하며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
"알레르기가 있어요."
"한 마리 먹는다고 죽지 않아."
나는 몹시 화가 났다. 그러나 서경천이 매우 인색한 사람이어서 그 사람 체면을 봐 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를 어떻게 괴롭힐지 몰랐다.
나는 이를 악물고 새우를 입에 넣었고 그가 보는 앞에서 꼭꼭 씹었다.
줄곧 말을 하지 않던 소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소생이 봄철에 해산물 먹지 않는 거 몰라요?"
나는 서경천이 매우 난처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오히려 청산류수같이 대답했다.
"이젠 먹을 수 있어요."
먹을 수 있어? 며칠 동안 맑게 갠 날씨가 아니길 바랐다. 햇볕을 쬐기만 하면 얼굴이 부어오르는데 알기나 해?
서경천은 또 내 허리를 한번 꼬집었고 아픔을 느낀 나는 머리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의 웃는 모습은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소생, 그렇지?"
내가 감히 말하는데 이 이름은 내가 10점의 비계를 먹듯이 듣기가 지겨웠다. 나는 허리가 몹시 아팠지만 그와 함께 연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맞아요. "
소시는 서경천에게 곁눈질 하나도 주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계속 음식을 먹었다.
서경천은 밥 한 끼 먹으면서도 정신은 딴 데 팔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술을 적지 않게 마셨다.
나는 점점 내 판단이 옳다고 확신했다. 한편으로는 소시로부터 자극을 받아 남자를 좋아하게 됐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시를 단념하지 못하고 있는 그가 바로 양성애인 것이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모두가 거실에서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물건을 가지러 내방에 올라갔다. 바삐 결혼을 하여 가지고 오지 못한 물건들이 아주 많았다. 예를 들면 나의 베개. 베개닢이 낡기는 했지만 어머니가 나에게 만들어 준 것이다. 품에 안고 있으면 매우 안도감이 생긴다.